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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닐스 보어 이야기 (2-1/5)

간천(澗泉) naganchun 2024. 10. 1. 03:08

닐스 보어 이야기 (2-1/5)

==양자가설과 연결된 새로운 원자모델을 고안했다.==

 

 

2,생애

1) 유럽 시절

 

코펜하겐에서 태어나 1903년에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했다. 1911년에는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조지프 존 톰슨Sir Joseph John Thomson, 1856-1940, 영국의 물리학자)의 지도하에 연구를 한 후, 1911년에 맨체스터 대학교의 어니스트 러더퍼드(영어: Ernest Rutherford, 1st Baron Rutherford of Nelson, OM, FRS, 1871-1937, 뉴질랜드 출싱신 영국 물리학자. 화학자) 밑에서 원자 모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후, 코펜하겐 대학교로 돌아와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의 결점을 막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858-1947, 독일의 물리학자)의 양자 가설을 사용해 해결하고, 1913년에 보어의 원자 모형을 확립했다.

1921년에는 코펜하겐에 이론물리학 연구소(니엘스 보어 연구소)를 세우고, 외국에서 많은 물리학자를 초청해 코펜하겐 학파를 형성하게 된다. 원자물리학에 대한 공로로 192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 독일의 이론물리학자)등의 후진들과 함께 양자역학(행렬역학)의 형성을 추진했다. 1926년에 에르빈 슈뢰딩거독일어: Erwin Rudolf Josef Alexander Schrödinge,1887-1961, 오스트리이 출신의 이론물리학자)가 파동역학을 발표했을 때, 코펜하겐으로 초청해 토론에 지쳐 쓰러진 슈뢰딩거의 병상에서도 논의를 계속한 것으로 유명하다. 논의의 자리에서 결코 손을 놓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 독일의 이론물리학자)와는 의견이 대립하게 되어, 지친 보어는 노르웨이로 스키 여행을 떠났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에 반대하기 시작하자, 보어는 존경하는 아인슈타인과 논쟁을 계속하며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유명한 일화로는 아인슈타인이 막스 보른(Max Born, 1882- 1970,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1954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Gott würfelt nicht.)"고 쓴 것에 대해, 보어가 "신에게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를 당신이 지시하지 마라(Schreiben Sie Gott nicht vor, was er tun und lassen soll.)"고 반박한 명언이 있다. 보어는 사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물리학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양자역학의 형성에 지도적인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