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의 침대 옆에는 각자에게 주어진 작은 수납장이 있다. 흔히 "상두대"라 불리는 이 나무 수납장은 높이 약 1미터, 폭 40센티미터, 깊이 45센티미터 남짓. 작은 공간이지만, 이곳에 할머니들의 모든 것이 담긴다. 서랍에는 팬티, 양말, 손수건 같은 소품이, 아래 칸에는 계절마다 바뀌는 옷들이 가지런히 정리된다.
가을과 겨울에는 두꺼운 외투 두 벌과 기모 바지 몇 개, 봄과 여름에는 얇은 상의와 시원한 바지가 그 자리를 채운다. 옷의 숫자는 항상 한정적이다. 가족들이 면회 올 때마다 새로운 옷을 가져오고, 낡아진 옷은 처분되지만, 모든 것은 상두대 하나에 다 들어간다.
요양원의 할머니들에게 옷은 필요 이상으로 많지 않다. 기저귀를 자주 갈아야 하니 바지가 조금 더 많을 뿐, 소유는 최소한으로 제한된다. 할머니들 중 몇몇은 상두대를 하나 더 쓰거나, 행거를 들여 외투를 걸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아주 작은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이 상두대 하나는 할머니들의 지금을 상징한다. 과거의 화려한 장식장, 가득 찬 옷장, 빼곡히 놓인 장신구들은 모두 사라졌다. 필요한 것만 남은 이 작은 공간은 누군가의 현재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암시한다.
우리 대부분은 요양원의 상두대보다 훨씬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살아간다. 장식된 선반, 끝도 없이 쌓이는 옷, 평생을 모아둔 장신구들. 그러나 이 물건들은 결국 어디로 갈까? 우리는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
요양원 할머니들은 무소유로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빨래가 돌아와 상두대에 옷이 가지런히 정리될 때면, 할머니들은 조용히 서랍을 열어본다.
“이거 내 거 맞아?”
자신의 옷이 어디 갔는지 묻는 분도 있다. 어떤 분은 남의 옷을 자기 상두대에 넣기도 한다. 모든 소지품에는 매직으로 이름이 적혀 있다. 빨아도 지워지지 않도록. 소유와 무소유의 경계에서, 그들은 여전히 자신이 가진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상두대를 열고 하나하나 살펴보는 할머니의 손길은 조심스럽다. 옷 하나에도, 양말 한 켤레에도 자기의 흔적을 확인하려는 그 마음. 그 작은 확인 작업이 그녀들에게는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것들은 얼마나 많을까. 옷장 가득한 옷들, 여기저기 쌓인 물건들. 내가 죽고 나면 이 물건들은 어떻게 될까. 나는 자식이 없기에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이 물건들을 치우게 될 것이다.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뜬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물건들을 떠올린다.
내가 살아온 흔적들이 쓰레기처럼 치워질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지고 있는 것 중 정말 필요한 것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게 된다.
요양원의 삶은 최소한의 물건으로 이루어진다. 상두대 하나가 모든 것을 담아낸다. 하지만 그 작은 공간 안에서도 할머니들은 여전히 자기 것을 찾고, 확인하며 소유의 의미를 되새긴다.
우리 삶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죽음을 앞두고도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은 결국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걸까?
할머니들의 상두대를 정리하면서, 나는 무소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삶을 가볍게 살아가는 법. 그것이 결국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 할 과정이 아닐까.
요양원 상두대에 정리된 몇 벌의 옷을 보며 나는 다짐한다. 나도 내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겠다고. 불필요한 소유를 줄이고, 정말 중요한 것들만을 품겠다고.
그리고 언젠가, 나의 짐보따리가 상두대만큼 작아질 때, 나는 그 안에 진짜 나의 삶을 담고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삶
물건과 소유, 그리고 무소유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은?필요와 불필요의 경계 이런 심각한 듯하면서도 꼭 생각해야 할 과제가 내 앞에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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