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의 하루는 식사와 간식으로 이어지는 시간들로 가득하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간식 시간, 간식을 먹고 나면 점심 식사, 그리고 오후 간식이 찾아오고, 다시 저녁 식사와 간식으로 하루가 마무리된다. 어르신들에게 있어 이 먹는 시간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소소한 기쁨이고, 삶의 중요한 의식이며, 무엇보다도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요양원에 보호자가 면회를 오면, 대부분 간식이나 필요한 물품을 들고 온다. 간식은 어르신들에게 보호자가 남긴 사랑의 흔적이다. 바나나, 카스테라, 두유, 뻥과자, 홍삼 엑기스 등, 간식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먹을거리 그 이상이다. 그것은 어르신에게 보내는 가족의 마음이자,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조그마한 증거다.
간식은 보호자의 정성과 관심의 크기를 가늠하게 한다. 어떤 보호자는 작은 연두부 하나를 보내면서 “식사 때 따로 챙겨 달라”는 요청을 남기고, 또 어떤 보호자는 과일이나 간식을 1주일 치 준비해 올려보낸다. 이 간식들은 어르신들의 머리맡, 상두대 위에 가지런히 놓인다. 포장지에는 매직으로 어르신의 이름이 적혀 있다. 간식이 많고 적음은 어르신의 하루를 작게나마 다르게 만든다.
하지만 모두가 특별한 간식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요양원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이외의 맛난거는 생각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다. 보호자가 드문드문 오는 어르신이나, 면회가 거의 없는 어르신들에게 간식은 그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같은 방 어르신이 바나나를 꺼내 먹고, 뻥과자를 부스럭거리며 입에 넣을 때, 간식이 없는 어르신은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저도 주세요.”
이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런 요청을 할 줄 모르는 상황이거나, 그저 스스로를 억누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간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어르신은 차분히 바라볼 뿐이다. 그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소외감은 무겁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본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해 다른 어르신의 간식을 나누어 드리기도 했다.
“할머니, 이거 드셔 보세요.”
간식을 건네받은 어르신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고맙습니다.”
그 미소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저려온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나는 이곳이 품고 있는 빈익빈의 현실을 더 깊이 실감한다.
요양원에서의 삶은 단순하다. 침대와 휠체어, 그리고 식사와 간식이 하루를 이루는 전부다. 이 단순한 삶 속에서 먹는 행위는 어르신들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강렬한 욕망으로 드러난다. 어떤 어르신은 끊임없이 간식을 찾는다.
“뭐 좀 먹을 거 없어요?”
치아가 남아 있는 분들은 오징어포나 비스킷을 뜯고, 이가 없는 분들은 부드러운 뻥과자를 원한다. 간식이 없는 어르신조차 손가락 끝으로 상두대를 만지작거리며 작은 기대를 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가 하면 간식이 많아도 그것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어르신도 있다. 치매가 심해져 자기 간식이 자기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분들이다. 요양보호사가 간식을 건네주면 기계적으로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먹을 것을 찾는다. 허기진 것은 단순히 배가 아니라, 마음과 영혼일지도 모른다.
간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보호자가 남긴 사랑의 흔적이고, 어르신들에게는 그 사랑을 확인하는 작은 증거다. 그러나 요양원 안에서는 소외가 생겨난다. 그 사랑이 불균등하게 분배될 때, 혹은 모든 어르신에게 공평한 간식이 주어질 수는 없다. 그것은 요양원의 현실이고,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작은 나눔이 큰 위로가 된다. 간식이 없는 어르신에게 뻥과자 한 봉지를 건네주는 일, 그것은 단순한 먹을거리를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당신도 잊히지 않았다”는 조그마한 증거이기도 하다.
어르신들의 하루는 먹음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욕망은 크지 않다. 그저 허기를 달래고, 작은 기쁨을 찾으려는 욕망일 뿐이다. 요양보호사로서 나는 이 간식 배틀 속에서 나눔과 소외의 이중주를 매일 목격한다. 그 속에서 나는 어르신들의 허기진 마음을 더 많이 어루만지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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