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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세계의 과학자 32, 로버트 보일(Robert Boyle,1627-1691)이야기.(4)

간천(澗泉) naganchun 2025. 3. 7. 02:44

32, 로버트 보일(Robert Boyle,1627-1691)이야기.(4)

=영국 과학혁명에서 실험주의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험주의의 제도화에 대한 기여: 왕립학회

 

보일의 공헌은 실험주의의 방법을 제도화하는 것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보일과 다른 사람들은 실험가 그룹을 형성했다. 또한 그는 과학 기관으로 왕립 학회를 설립했다.

 

이 조직은 실험주의 방법의 보급과 계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도화에 대한 그러한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실험주의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것이고 Boyle et al의 죽음과 함께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 협회를 설립한 선례가 있었다. 17 세기 전반기 로마에 린치 아카데미 (Lynchei Academy)가 있다. 이것은 갈릴레오의 소유였다. 피렌체에는 Chimento Academy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50년을 버티지 못했다.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 of Great Britain)의 경우, 수학자, 의사, 천문학자들이 런던의 그레셤 대학(Gresham College)에서 매주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이것은 공식적으로 민간단체로 운영되었다.

 

1662년 찰스 2 세 왕에 의해 왕실 헌장을 받았으며 자연 과학의 진흥을 위한 런던 왕립 학회가 되었다. 그리하여 실험주의의 제도화가 시도되었다.

 

제도화와 실험주의의 타당성

 

이러한 제도화는 또한 보일의 실험주의 자체의 타당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일의 실험이 당시의 신사 계급의 문화에서 행해졌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보일은 다양한 실험을 했다. 각 실험은 여러 번 반복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한 번만 수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 결과가 이론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어떻게든?

이것은 그 실험이 왕립 학회 방의 준 공공 공간에서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존경받는 것으로 간주되는 신사들에 의해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적 주장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