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베크 대신전
-1천 톤의 초거대석주 운반의 수수께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북동쪽으로 85킬로미터 달리면 레바논(Lebanon)산맥과 안티레바논(Anti Lebanon)산맥에 끼어있는 베카계곡이라는 장소가 있다. 그 장소는 발베크(Baalbek)라 불리고 로마제국시대의 일대성지가 있었던 장소이다.
그 중심에는 일찍이 엄청난 거대신전이 솟아있어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안게 했다고 한다.
그 대신전은 고대세계의 불가사의로 셀 정도로 위대한 건조물로서 1천 개 이상의 거석을 써서 건설되었다.
이 대신전은 주피터, 박카스, 비너스라 불리는 3개의 신전으로 되어 있다.
주피터신전은 엄청나게 큰 거대한 건물로 경악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여기는 로마신들 중 주신이라 일컬어지는 주피터가 모셔져있다.
이 대신전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로마가 제정으로 정치를 바꾸게 된 무렵 로마인에 의하여 건설되었다고 한다.
6개의 석주
그런데 아쉽게도 몇 차례의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지금은 6개의 석주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가 직경이 2.2미터, 높이가 20미터가 넘는 장대한 석주를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거대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당시는 이런 석주가 54개나 임립하여 거대한 신전의 지붕을 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규모의 방대함은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을 훨씬 능가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충격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마치 세계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려는 듯한 로마인의 자세를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로마인의 기질은 진지하고 끈질기며 중후한 것이 특색이라고 한다.
그들은 섬세하기보다 힘세고 아름다움보다 거대한 것을 다시 장식적인 것보다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었다.
또 로마인은 상상력이 결핍된 민족이라고 한다.
그런 때문에 종교나 신에 대해서도 정복한 나라에서 흡수하여 자신들 것으로 했던 것이다.
건축면에서는 로마인은 그리스의 원주나 에트루리아(Etruria)의 아치에 다대한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이 대신전의 기초가 되는 기단부분은 로마인에 의한 것이 아니다.
확실히 신전의 석주부분과 기단부분에는 그 규모로 보아서도 구조상 분명히 큰 거리감이 있는 듯하다.
그 기단부분은 그보다 아득히 이전에 셈족에 의하여 구축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셈족이란 바빌로니아, 아랍, 아라비아 등 여러 민족의 조상이라고 하는 민족으로서 그들은 그 옛날 자연신 바루를 모시기 위하여 신전을 건설하려고 하여 이 기단부분을 건설한 것이다.
기단
그런데 종교상의 중요성에서 이 성지는 여러 정복자들이 노리는 바가 되었고, 격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소유자가 변천함에 따라 새로운 지배자의 야망과 권력의 상징으로서 독자적인 신전이 건축된 것이다.
알렉산더대왕에 의하여 정복당한 때는 그리스신 제우스를 모시기 위하여 신전이 건축되었다 한다.
그러나 그 후 시대가 흘러서 350년 정도 지난 무렵 이번에는 로마 제국이 이 땅을 지배하게 되었다.
당시의 권력자 시저는 로마제국의 주신 주피터를 모시기 위하여 그에 부합하는 거대신전의 건설을 명하였다.
건설은 시저의 사후에도 몇 사람의 로마 황제에게 계승되어서 박카스나 비너스 등의 신전이 차례차례로 건설되어 완성되었다.
이처럼 알렉산더 대왕이나 로마제국에 정복당할 때마다 이전 것은 파괴되고 그때마다 새로운 신전이 건축되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대신전을 받치는 기단만은 아득히 이전의 곧 셈족이 건설한 것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기단부분은 약 10미터 정도의 높이가 있고 어느 것이나 거석을 쌓아 만들어졌다.
이 기단부의 거석에 섞이어 한 개의 무게가 750톤이라는 믿기 어려운 거대석주가 3개 쌓아진 것이 있다.
이 거대한 화강암 석주는 각각 줄지어 쌓아져있고 지금도 바늘 하나 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되어있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트릴리톤(trilithon)>이라고 일컬어지고 <3개의 경이로운 돌>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거석은 남서로 700미터 정도 떨어진 채석장에서 잘리어 운반된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고대의 기술로 이렇게 엄청나게 무거운 것을 어떻게 운반하고 어떻게 하여 올려놓은 것인지 하는 점이다.
이들 거석은 고대인의 손에 의하여 운반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에 그런 운반기술이 있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버려진 석재
현대에 있어서도 보통의 크레인으로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석을 들 수 있는 특수 중크레인이 있기는 있다.
그러나 들 수는 있어도 운반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이 거석을 들고 이동시키고 신전 기단 위에 붙일 수가 있었을까?
현대의 기술이라면 초대형 트레일러를 만들어서 이 750톤의 거석을 조금씩 운반하면 운반하지 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양자의 방법은 모두 시간과 비용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길을 평탄하게 하는 일 등 아마도 손이 많이 들고 시간도 걸릴 것이다.
어떻든 셈족이 발베크 건설을 시작할 당시에는 이런 기술 등이 있을 이가 없고 철제의 도구마저 없는 시대이다.
피라미드 건설처럼 나무 원목을 배열하여 롤러로 하는 수도 불가능하다. 이런 정도의 중량이라면 나무 원목은 곧 부서지고 말 것이다.
고고학적 데이터를 인용하면 1톤의 돌을 1600미터를 이동시키는 데에는 16명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생각한다면 1개의 트릴리톤을 운반하는 데에 1만 5천 명 정도의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견딜만한 강도의 로프나 1만 5천명이라는 경이적인 인수를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방법 등을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깝다.
가령 목적지까지 끌고 갈 수가 있다고 해도 어떻든 10미터의 공중에 들어 올려서 실을 수가 있을 것인가?
아마도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주위에는 그런 공사의 흔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방법으로 운반하였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이들 거석을 운반하고 들어 올릴 수가 있었을까?
현재로서도 납득할 수 있는 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채석장에는 이 수수께끼를 더 복잡하게 하는 존재가 있다.
<트릴리톤>보다도 더 크고 더 무거운 석주가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의 주라고 할 수 있는 거석은 <남쪽 돌>이라고 일컬어져서 거석 중에도 발군의 초거대석이라고 해야 할 존재이다.
길이는 21미터, 높이가 4.1미터, 폭이 4.9미터의 거의 각주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중량은 1천 톤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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