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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수께끼/역사의 수수께끼

헬리오스 거상 이야기

간천(澗泉) naganchun 2011. 6. 19. 18:59

 

 

 

헬리오스 거상 이야기

 

-로도스 섬에 솟은 청동 거인상-

 

 

 

 

로도스 섬의 변천사

 

로도스(Rhodes)섬은 에게(Aegean)해의 동남에 있는 섬으로 크레타(Crete)섬에 다음 가는 크기이다. 로도스 섬은 기원전 10세기 그리스계의 도리스인이 식민하여 3개의 도시국가를 세워 역사가 시작되고 기원전 408년 세 개의 식민도시를 통합하여 로도스가 건설되었다.

이 섬은 보스포라스(Bosporus)해협과 지중해 오리엔트를 맺는 해상무역의 요지에 위치하여 예부터 여러 민족에게 중요한 중계지로서 매우 번영한 섬이다.

 

 

로도스 섬 위치도(적색 표시가 로도스 섬임)

 

 

현재의 로도스 섬

 

 

 

그러나 소아시아와 겨우 18킬로미터의 거리밖에 없기 때문에 대륙으로부터의 영향도 받기 쉽고 이 섬의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기원전 5세기에 시작된 페르시아전쟁 때는 페르시아 진영에 들었고 페르시아가 패한 후에는 그리스 진영으로서 테로스동맹에 가담했다. 테로스동맹이란 금후 페르시아의 위협에 대하여 각 폴리스가 자금을 내어서 해군력을 가지고 대비하자는 것으로 일종의 군사동맹이었다. 아테네가 이것을 주도하고 최성기에는 300남짓한 폴리스가 참가하였다.

이윽고 북방의 마게토니아가 강대해져서 그리스 전역을 정복한 때에는 로도스 섬은 알렉산더대왕의 지배하에 들어서 소아시아의 병력, 물자를 수송하는 중계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처럼 로도스도 섬은 그 지리적 위치에서 전략상 중요 거점으로서 항상 그때의 세력이 변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운명이었다고 보아서 좋을 것이다.

그 후 마게토니아가 이집트와 전쟁할 때에는 이해관계 상 이집트 편이 되어서 선박 다수를 프토레마이오스1세(Ptoremaios 1)에게 제공하였다. 그에 화가 난 마게토니아는 기원전 305년에 4만의 군세와 400척의 군함으로 공격해 와서 로도스 섬을 포위하였다. 마게토니아군은 당세에 가장 강력하다는 청동제의 공성포, 파성퇴(破城槌/성을 부수는 망치)라는 것까지 가지고 와서 용서 없이 공격하였다.

당시 로도스 섬에는 남녀노소 합해서 4만 명 정도밖에 없었는데, 전후의 자유를 약속하여 노예에까지 무기를 지급하여 방어하였다고 한다. 도내의 신전은 파괴되고 성벽을 보완하는 자료로서 사용되었다. 여성들은 활시위의 재료로서 스스로 자진하여 머리카락을 잘라내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1년 남짓 필사의 저항이 계속되는 속에 이집트에서 대함대의 원군이 달려와서 로도스 섬은 함락 직전에 구원을 받은 것이다. 불의에 당한 마게토니아군은 많은 무기를 그대로 두고 본국으로 도망쳤다.

 

청동상 건립

 

로도스 섬 사람들은 프토레마이오스1세를 구세주로 우러르고 왕에 대한 감사와 전승 기념으로서 마게토니아군이 남기고 간 대량의 청동기 무기를 녹여서 자기네가 숭상하는 태양신인 헬리오스(Helios)의 기념상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헬리오스는 태양신을 말하며 후의 그리스 신화의 아폴론이다.

장소로서는 로도스 섬 항구의 돌출된 곳이 선택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 거상은 조각가 카레스(Caress)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기원전 304년에 착공하여 12년의 세월을 들여 만들었다고 한다.

 

 

헬리오스 거상 상상도

 

완성된 거상은 청동제로서 높이 33미터, 동체 둘레는 18미터. 허벅지의 둘레는 3.3미터이고 대좌까지 합하면 높이는 실로 50미터에 이른 것으로 생각된다. 거대한 대좌는 백대리석으로 만들어지고 15미터 이상의 높이였다고 한다.거상의 머리에는 상징인 태양광선을 나타내는 방사상 관으로 장식하였다. 또 이 거상에는 발에서 머리까지 나선상의 계단이 설치되어서 머리에는 몇 개의 방이 있고 거기서 눈 아래 넓은 로도스 항구가 한 눈에 보인다.

아마도 새파란 에게해와 소아시아의 맑은 산들을 배경으로 수 백 척의 배들이 드나드는 파노라마를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밤이 되면 이 거대한 청동 거인의 두 눈에는 불이 붉게 타고 등대의 역할을 다 하였다. 그 빛은 멀리 연안을 여행하는 배에서도 확실히 보였다고 한다.

고대의 수학자이면서 여행가인 피로(Philo BC260~180)는 이 거상을 세계의 7대불가사의의 하나라고 하고 거상이 가진 장대함과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것 중에 가장 균형 잡힌 조각상이라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 거상은 항구의 돌출된 둑의 양 끝에 소아시아를 향하여 두 다리를 뻗고 서 있었다.

항구의 입구에 두 다리를 벌려 서서 그 아래를 배가 드나들었다고 하는 상상도도 있다. 그렇다면 폭이 60미터나 되는 항구의 입구를 채워야 했다.

그런 경우 상의 신장은 120미터 이상이 필요하고 이론상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청동상의 운명

 

이 위대한 거상은 만들어져서 겨우 반세기 못되어 지상에서 모습을 감추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기원전 227년 에게해 일대를 엄습한 대지진 때문에 거대한 두 다리 부분만 남겨두고 바위 위에 떨어져 부서지고 만 것이다.

그 후 한 참 뒤에 이곳을 여행한 로마인은 지상에 흩어진 잔해를 보고 그 거대함에 아연실색하였다 한다. 부서진 청동상의 엄지손가락을 두 손으로 구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손가락의 길이는 보통 사람의 입상만큼 하였다 한다.

쓰러진 거상은 800년 이상 눕혀진 채로 있었는데 7세기에 로도스 섬이 이슬람교도에게 점령되자 폐기물로 해서 유태인 상인들에게 매각되었다 한다. 그 때 청동 파편을 운반하는 데에 900두의 낙타가 필요했다고 한다.

오늘 날 헤리오스 거상의 단편은 남아 있지 않고 일찍이 이 자리에 거상이 섰을 것으로 생각되는 항구의 돌출된 둑에는 사슴 동상이 서있을 뿐이다.

그러니 2300년 전 그 옛날 고대 로도스항구에 솟아 있었을 거대한 헤리오스 상을 생각할 때 일찍이 이 거상을 만든 사람들이 태양신에게 바치는 낭만과 정렬이 전해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