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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단상

책불환주

간천(澗泉) naganchun 2021. 5. 12. 18:34

책불환주

책이 귀한 시절의 정말 귀한 미담

 

 

   아침에 잠을 깨고 보니 아랫목 선입자가 사라졌다. 아직 채 밝기도 전인데.

나는 추위에 몸을 웅크린 채 이불 속에서 눈만 뜨고 간밤에 있었던 일을 더듬어 본다.

통금시간이 다 되어서 간신히 찾아든 여인숙이었다. 게다가 독방이 없어서 합숙하는 방을 얻어들었다. 이미 선입자는 아랫목에서 깊이 잠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지금부터 59년 전 일이다.

19615·16 군사 쿠데타가 나서 군인이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 행정마저 장악하고 있을 때이다.

마침 제주도지사로서 해군 제독이 부임하였는데 제주도 교육은 낙후되어있으므로 선진지 교육을 배워서 교육 현장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현직 교사를 선발하여 선진지인 서울 학교에서 참관 및 교단실습을 하게 되었다.

나는 도내에서 뽑힌 5명 중의 한 사람으로 서울 용산국민학교에서 1주간 실습 아닌 실습을 하게 되었다. 때는 196211월 중순 늦가을이었다.

 

   1주간 실습을 마치고 마침 내가 참가했던 3학년 동학년 선생님들이 송별회를 한다고 청요릿집으로 가서 저녁을 겸해서 일주간 동안의 일들을 회고하고 가볍게 이별주를 나누었다. 그중에 K 교감과 두 분 선생님이 술을 좋아하고 논담을 좋아해서 이차를 가기로 하였다. 대접을 받는 사람이 염치도 없이 사양했어야 할 것을 나도 논담을 좋아했기 때문에 시골 학교와 도시 학교의 교육 실상에 대한 논담에 끌리어서 이차를 가게 되었다.

거나하게 술이 오를 무렵 통행금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일행과 작별을 했다. 후암동에서 용산까지 가야 하는데 대강 방향만 짐작할 뿐 지리에 어두운 데다가 후암동에서 서울역 쪽으로 걸어가면서 차를 잡으려 했지만, 차를 잡지는 못하고 통금시간이 임박하고 말았다. 늦가을의 추위가 온몸을 에워싸서 으스스하다. 하는 수 없이 여관이나 여인숙을 찾았는데 마침 여인숙이 있어서 들어갔다. 합숙하는 방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은 오랜만에 온 길이라서 초행이나 다름이 없는데 군대에 있을 때에 합숙하는 여인숙에 들어본 일이 있어서 별로 큰 거부감 없이 하룻밤을 새우기로 하고 들었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하던 서울에서 게다가 생면부지의 사람과 하룻밤을 함께한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다.

 

   동숙자는 이미 잠이 들어있을 때라서 얼굴도 잘 모르고 물론 인사 한마디 나누지 못하였다. 그런 사람이 새벽에 먼저 잠을 깨고 이곳을 떠난 것 같았다.

그가 누었던 머리맡에는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는데 쪽지에

잠꼬대를 들으니 교원인 듯한데 인사를 못 하고 떠나오. 여기 이 책을 두고 가니 한 번 읽어보시오. 도움이 될 것이오. 옛 어른이 책불환주(冊不還主)’라 했으니 그냥 드리고 가오.” 하고 큼직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이라고 잠꼬대를 했단 말인가? 아마도 술자리에서 하던 논담이 꿈속에서 되살아났던 것일까? 그 당시에는 공무원은 누구나 일제히 골덴으로 지은 국민복을 입고 있어서 벗어둔 옷을 보고 공무원이라는 것을 짐작했을 것이고, 교육이 어쩌고저쩌고했을 터이니 교원이라고 짐작했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도 교원이 아니었을까? 2십 대 후반인 애송이 교사를 보고 선배로서의 마음이 발동되었었는지 모른다.

 

   책을 펴고 보니 류달영(柳達永)선생의 <소심록(素心錄)>이다.

류달영 선생에 대해서는 ?사상계?를 통하여 알고 있었으나 그의 책을 보기는 이것이 처음이다.

출간되어서 1년밖에 되지 않은 수필집으로서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그리고 읽고 싶었던 책이다.

과연 이 책을 두고 간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는 책불환주라 했으니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는 의문부터 풀고 싶었다.

책은 주인에게로 돌아가지 않는다.’란 뜻인가?

아니면 책은 주인에게 돌리지 않는다.’란 뜻인가?

나는 책은 마치 하늘의 무지개를 보듯 지상에 있는 것을 잊고 한없이 공상의 세계에 사람을 태워주는 것이므로 책은 주인이 없고 따라서 반드시 주인에게로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곧 책은 읽는 사람이 주인이다.’란 뜻으로 이해하고 읽었다.

 

   지금 세월이 하도 오래가서 기억이 몽롱하기는 하지만 읽기 시작하여 단번에 읽었던 책 중의 하나였음은 분명히 기억한다.

류달영 선생의 민족의식에 투철한 사상과 교육자로서의 자세와 태도를 섬세하고도 마음에 감동을 주는 표현으로 엮어낸 자전적인 수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주고 간 사람도 고맙고 훌륭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나의 삶을 새롭게 이해하고 생각을 가다듬어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의미 있게 처리하리라 하고 생각하게 하였음은 분명하다.

이 책을 주고 간 사람도 이에서 감동을 받은 것이리라. 아마도 그도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분명 나보다는 거의 10년은 장이라 보였는데 지금은 어디에 계신지 세월이 많이 갔으니 타계하셨을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낀다.

나도 좋은 책을 남에게 선선히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얼마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을 시내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에 천여 권을 기증하였고, 언젠가는 지금 가지고 있는 책도 보내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나도 번역본을 포함하여 10권의 책을 내었는데 어떤 것은 500여 권씩 책을 읽을 만한 분에게 보내드린 기억이 난다. 적어도 3여 권은 거저 드렸다. 그들이 그 책을 보람 있게 읽어주었는지는 모르나 책불환주라 하고 주고 간 그분의 뜻을 본받아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노라고 한 일인데 과연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책불환주(冊不還主)”라 했으니 책은 내가 혼자 가지고만 있을 것이 아니다. 읽을 사람 곧 그가 주인이니 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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