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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단상

땅 도는 대로 돈다

간천(澗泉) naganchun 2021. 5. 5. 06:34

땅 도는 대로 돈다

 

앞으로 앞으로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모두 만나겠네!!

 

  20여 년간 내가 운동 삼아 다니는 길이 있다. 이곳은 한 바퀴를 도는데 700미터 쯤 되고 시간은 8분 정도 걸린다. 내가 5시 반에서 한 시간 정도를 걷는 곳으로 영산홍 아파트 단지와 혜성 아파트 단지 사이의 산지천 천변이다. 강변 양쪽으로는 이른 봄에는 벚꽃이 피고 겨울에는 동백꽃이 핀다. 5월에는 신록이 피어나 연두색 꽃밭을 이루며 6월이 되면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강변으로 가지를 늘어뜨린다. 물이 흐르는 강변이라면 강물 위에 멋진 그림자를 낳으리라. 그러나 물은 흐르지 않는 강이라 아쉬움이 한이 없다. 이곳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으므로 소음이 없으며 또한 매연도 없어 산책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시청에서 산책로로 고무판 블록을 깔아서 걷기 운동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것이다.

 

  10여 년 전 내가 걷기 시작한 때는 걷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4, 5년 전부터는 5월이 되면 아침저녁으로 많은 사람들이 걷고 뛰고 하여 북적거린다. 젊은 20대 여성에서부터 80대 노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걷는다. 모두들 건강을 위하여 혹은 몸매를 가꾸기 위하여 운동하는 것이다. 이곳을 우리 집에서는 그냥 강변이라고 부른다.

 

  이 강변을 처음 돌 때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출발하여 강변에 이르는 곳 입구에서 돌아들어 가서 걸었다. 그리고서 아래쪽 다리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돌아서 걷게 된다. 그러니까 원형을 그리며 돌게 되는데 나는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 것이다. 그런데 걷는 사람 중에 남자들 몇 사람을 빼고는 모두가 나하고는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다. 돌다 보면 반드시 한 번씩은 만나게 되는데 만나는 족족 안녕하세요. 몇 번째 도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 그러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는 사이에 어떤 주부에게 어찌하여 여러분들은 나하고는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 것일까요?” 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땅 도는 대로 도는 겁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얼마 동안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의 습관대로 오른쪽으로 돌아 걸었다. 곧 시곗바늘이 도는 방향으로 걸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거듭하게 되는 번거로움이 있고 서로 마주칠 때마다 길을 서로 피해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어서 남들이 걷는 대로 왼쪽으로 돌아 걷기 시작하였다. 곧 시곗바늘이 도는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한 것이다.

땅 도는 대로 돈다.”는 말은 지구가 도는 방향으로 돈다는 말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어떻게 지구가 자전하는 방향을 잘 알고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지구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다는 것은 생각한 바 없이 자기 습관에 따라 걸었다. 생각해보면 남자는 오른쪽으로 도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수건을 빨아서 물을 짤 때 나는 오른쪽으로 비틀어 물을 짠다. 대체로 남자들은 이렇게 오른쪽으로 비틀지 않을까. 그런데 여자는 왼쪽으로 비틀어 물을 짠다. 그 아주머니는 자기의 습관대로 왼쪽으로 도는 것을 택한 것이 아닐까.

 

  중국의 음양론에는 천좌선, 지우동(天左旋, 地右動)”이라는 말이 있다. 천좌선(天左旋)’이란 말을 주희(朱喜)가 풀이한 내용을 보면 항성이 하늘에 있는데 비교적 빠른 속도로 동에서 서로 향하여 운전된다.[恒星在天以較快的速度自東向西運轉(天左旋)]”고 하고 있으니 음양론에서는 북쪽을 등지고 왼쪽이 동이고, 오른쪽이 서이므로 천좌선(天左旋)’이란 하늘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돈다,(自東向西運轉)”는 뜻으로서 마치 왼팔을 들어서 오른쪽으로 두르는 형국을 말하고, ‘지우동(地右動)’이란 땅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인다.(自西向東運轉)”는 뜻으로 마치 오른팔을 들어서 왼쪽으로 두르는 형국을 말한다. 그리고 하늘은 양()이고 동시에 남자는 양이므로 하늘이 돌듯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고 땅은 음()이고 여자는 음이므로 땅이 돌듯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것이라고 본 모양이다. 그래서 남좌여우(男左女右)라는 말이 생기고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고 했던 것인 듯하다. 우리가 사는 북반구에서 볼 때 지구 곧 땅은 시곗바늘이 도는 반대 방향인 왼쪽으로 돌고 있다. 모든 운동의 힘은 오른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곗바늘이 도는 방향으로 도는 것이 힘이 덜 드는 동작이 된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생활에서 이런 것은 느끼지 못한다.

 

  일본 신화를 기록한 ?고사기(古事記)?에는 일본을 개국한 남신과 여신의 결혼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남신이 말하기를 당신의 몸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하고 여신에게 묻자 여신이 대답하기를

나의 몸은 덜 만들어졌는지 빈 곳이 하나 있습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러자 남신이 말하기를

나의 몸은 다 만들고 남은 부분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고 다시 이어서 말하기를

이 하늘 기둥을 중심으로 나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고 당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모자란 부분과 남는 부분을 끼워 넣어 나라를 만들어냅시다.” 하고는 결혼을 하고 합궁하여 일본이라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신화가 있다.

여기서도 남자 신은 왼쪽으로 돌고 여자 신은 오른쪽으로 돈다고 했다.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하나의 행습의 기준이 되기도 하였는데 우리는 흔히 남좌여우(男左女右)라 하여 평상시 인사의 절하는 법에서 공수는 이 법을 따른다. 곧 남자는 왼손을 위로 하고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하여 공수를 한다. 결혼식장에서는 주례를 중심으로 하여 신랑은 남자라서 왼편에 서고 신부는 여자라서 오른편에 선다. 주례가 볼 때 남좌여우의 배치가 된다.

 

  그런데 <예기(禮記)>의 내칙(內則)에는 도로에 남자는 우측을 통행하고, 여자는 좌측을 통행한다.”(道路, 男子由右, 女子由左)고 했는데, 이는 남녀가 마주하여 지나갈 때에도 남자는 여자의 좌측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생겨난 통행 규칙이 아닐까 싶다. 이는 남자는 하늘이라서 좌측에 서야 하고 여자는 땅이라서 우측에 서야 한다는 관념에서 생겨난 음양론에 의한 법이라 생각한다.

 

  운동할 때에도 땅이 도는 대로 돈다는 생각은 마치 자연 상태대로 돈다, 곧 지구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따른다는 말이 되지만 실제로 운동의 힘은 반대로 작용하여 시곗바늘이 도는 방향으로 힘이 미치게 된다. 그러니 땅 도는 대로 돈다.”는 말은 자연이 작용하는 운동의 반대로 움직인다는 말이 된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힘을 키우려면 약간의 도를 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강물에서 강물을 따라 내려가기보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효과적인 운동이 된다는 말이다.

 

  자연을 거스르는 것은 안 되는 일이지만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일이라면 자연을 거슬러 도전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바야흐로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온난화로 인하여 여러 가지 재앙이 우려되고 있는데 이런 재앙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나 힘은 자연에 도전하는 데서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대 과학의 성과는 자연을 거스르는 도전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땅 도는 대로 돈다.”란 말은 자연에 도전한다.”란 말이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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