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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바다의 추억

간천(澗泉) naganchun 2021. 4. 30. 07:08

고향인 바다의 추억

 

제주바다 저녁놀

   바다가 그리워지는 계절이 다가온다.

어려서 늘 놀던 곳이 물때가 맞으면 바다 속에 들어가 헤엄도 치고 고기를 낚기도 하며 때로는 한 발 정도의 기다란 작살을 가지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고기를 쏘기도 했다. 물이 만조가 되었을 때는 숨북이 밭 동산에 앉아서 멀리 바다를 바라다보며 자랐다.

한여름에는 우리 집 주변이 습한 곳이라서 모기가 극성을 부리므로 저녁이 되면 돗자리와 담요를 들고 바닷가로 나가서 넓적한 바위에 잠자리를 잡고 잔잔한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 집으로 돌아온다. 바닷가에는 모기가 없어서 단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것이 인연인지 마음이 울적해지면 바다를 찾는 버릇이 몸에 밴 것 같다. 특히 긴긴 여름날의 하루하루는 시간 보내기가 무척 힘들어 오전에는 무엇인가 뒤적거리다가 오후 3시가 지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 마음이 울적해지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져서 바다로 차를 달린다.

바닷가에 앉아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소년 시절의 꿈같은 것이 떠올라 마음을 웅성거리게 한다. 외항선을 타고 멀리 외국의 항구에 들러 도시를 들러보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바다 위에는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부터 집채 같은 큰 배가 다가오기도 하고 그리던 사람의 얼굴이 수채화처럼 크게 클로즈업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고기잡이 작은 배가 떠 있는가 하면 물결을 시원스럽게 헤치며 달리는 보트도 있다. 바다는 언제나 살아 있다. 배를 띄워 나아가게 하고 물결은 쉴 새 없이 출렁거린다. 가까이 바위를 보면 물결이 밀려와 부딪쳐 하얀 물보라를 이루며 부서진다. 지자요수(知者樂水)라드니 물이 출렁이는 것을 보면 자연히 사람의 꾀가 발달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일본에서 살 때에는 오아라이(大洗) 바다를 자주 찾았고, 서울에서 살던 때에는 바다를 보러 인천 연안부두로 가거나, 강화도를 자주 찾았다. 어쩌다 썰물에 걸리면 갯벌밖에 볼 수 없지만 멀리 서해의 대해를 바라보면서 향수를 달래곤 하였었다. 바다는 바로 나의 고향이었다.

 

  25여 년 전 이야기이다. 20년 가까이 객지에서만 살다가 고향에 돌아와서 내가 놀던 곳 바다를 찾았더니 옛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변해버렸다. 여름밤에 단잠을 재워주던 넓적한 바위도 없어지고 바다로 뻗은 모래 벌도 없어지고 숨북이 밭도 사라져버렸다. 관광을 위하여 해안도로를 내는 바람에 옛날의 자취는 모두 사라지고 시멘트 옹벽으로 바다를 막아버렸다.

바다 속에 숲을 이루어 자라던 해조류로서 돼지고기 국에 넣어 끓였던 모자반, 출산한 임산부가 먹는 미역, 공업용 옥도정기를 만든다던 감태, 흙벽에 종이를 바르던 풀로서의 지껄이, 일제 강점기 쌀이 귀할 때 밥에 섞어 먹었던 넘패 등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었다.

 

  20년 만에 귀향하던 해 벌초를 마치고 해수욕을 하려고 바다에 들었더니 갯가에는 하얀 백화현상이 진행되어 파래나 넘패 같은 해초나 바위틈에 살던 따개비나 말미잘 같은 생물은 사라지고 말았다. 짠물을 헹구던 용천수도 나오지 않고 그 자리는 메워져서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인간의 욕구가 자연을 이렇게 파괴하고 말았구나!

아쉽기 한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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