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위, 멧테르니히(1773년-1859년)
트레멘스 벤젤 로타르 네포무크 본 멧테르니히=베네브르그 주 바일스타인(Klemens Wenzel Lothar Nepomuk von Metternich-Winneburg zu Beilstein, 1773년 5월 15일-1859년 6월 11일)은 오스트리아제국 및 프로이센 왕국의 외교관, 정치가이다. 고프렌스 출신이다. 오스트리아 외상으로서 빈회의를 주재하고 후에 오스트리아 재상으로 취임하여 나폴레옹전쟁 후의 국제질서인 빈체제를 지지했다.(위키페디아)
오스트리아 재상으로서 빈회의를 주최하고 나폴레옹전쟁 후의 유럽을 빈체제라는 이름의 국제질서로 묶으려 한 인물이다.
명예혁명, 미국독립성언, 프랑스혁명의 세계 3대혁명에서 싹튼 자유주의에로의 싹을 반동주의에서 왕정이 발호하는 중세식 봉건주의로 억누르려 하였으나 이미 시대의 흐름에는 이기지 못하고 프랑스 7월 혁명, 2월 혁명, 그리스독립전쟁, 빈 3월혁명이라는 자유주의 커다란 흐름에 실각하여 영국으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각국에서는 자유주의의 폭풍이 거칠어져서 민주주의 정체가 차례차례로 성립하였으나 멧데르니히의 본국인 오스트리아에서는 자유주의를 억누르는 데 성공하여 권력의 자리에 눌러 앉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중세, 근세의 대국인 오스트리아는 시대의 흐름에 남겨져서 비스마르크와의 싸움이나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하여 하브스브르크체제는 붕괴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히틀러에 이끌린 나치에 병합되었다.
만일 멧데르니히가 반동주의의 근본인 자유주의의 싹을 따지 않았다면 오스트리아는 현재에도 대국이었을는지 모른다.
출처=f:id:myworldhistoryblog:20190718042630j:p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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