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썼는지 모른다
루브르 미술관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의 유명 미술관, 화랑, 갤러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이나 조형작품들에는 그 작품의 한 쪽에 그것을 만든, 그린 사람의 이름이나 사인이 명기되어 있다. 사인을 통해서 아주 오래전 작품이어도 누구의 것인지를 분간해 낼 수 있다. 물론 사인을 위조할 수 있기 때문에 진품을 가리기 위한 특수 감별방법이 따로 있겠지만 누구의 것인지를 구분해내는 가장 중요한 첫 단서는 사인일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문학작품도 마찬가지다. 각종 연구논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자신의 혼신을 다해 시간과 열정을 바쳐 창출해 낸 성과물이 자신의 것임을 분명히 못 박아 두기 위해, 자랑하기 위해, 알리기 위해, 인증받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남겨두려고 한다. 그 창작의 산고의 고통 마지막에 최종 마무리로 사인을 한다. 사인을 할 때 희열을 느낄 것이다. ‘과연 이것을 내가 만들었단 말인가?’ 하고 자화자찬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겸손하게 두 손을 지긋이 모아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인을 함에는 그만큼 책임도 따르고 뒷감당도 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화룡점정. 그 화룡점정의 순간을 위해 창조의 열의를 불태우는 사람들이 차곡차곡 문화유산들을 축적해 가면서 인류가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하(Bach, Johan Sebastian ;1685.3.21~1750.7.28). 모든 음악의 물줄기는 바하로부터 흘러 나와서 다시 바하로 되돌아갈 만큼 그의 이름이 차지하는 음악사적 비중은 너무나 크고 당당하다. 주요 작품으로는 대 미사곡, 마태 수난곡, 토카타 d단조 오르간곡, 기악 독주곡, 중주곡, 합주곡, 협주곡 등 여러 방면에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으며 죽은 지 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널리 연주되고 있다. 평생 동안을 프로테스탄트적 신앙생활을 지켜 가면서 써낸 수많은 종교 음악을 비롯해서 기악곡과 관현악곡에 이르는 모든 부문에 이르기까지 바하는 엄청난 대 작업을 이루어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모든 악보 밑에 INDNJC 라는 사인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라틴어로 ‘In Normine Domini Nostri Jesu Christi ;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라고 한다.
바하는 항상 “나는 주님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이 음악을 만듭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정말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한 위대한 예술가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방대한 팔만대장경, 아니 엄격히 말해 ‘팔만사천대장경’ 어느 곳에서도 제작자의 이름을 발견해 낼 수가 없다고 한다. 그 글씨를 새긴 사람은 자신에 관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성서 저자 대부분도 자기의 이름들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하는 것은 나중에 편의상 부가된 것이고 원래는 그런 것이 없다고 한다. 누가 썼는지 모른다. 옛 사람은 그처럼 겸허했다.
우리는 피라미드를 쌓아올린 무수한 노예들의 이름도 모른다. 만리장성을 쌓아 올리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의 이름도 모른다. (사인과 저작권에 대해 생각하면서...) <ej>
'단상 > 월요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로 새로워지는 생활 (0) | 2012.05.14 |
---|---|
신록의 향훈 (0) | 2012.05.07 |
의미 부여하기 (0) | 2012.04.23 |
호기심을 긁어 주세요 (0) | 2012.04.16 |
2012년 4월 9일 오전 04:09 (0) | 2012.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