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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의 고전/장자 이야기 백 가지

제80화. 쓸모 있거나 쓸모없거나 화를 당한다(외편 산목)

간천(澗泉) naganchun 2010. 8. 5. 05:10

 

제80화. 쓸모 있거나 쓸모없거나 화를 당한다(외편 산목)

 

 

  어느 날 장자가 산 중을 지나다 보니 큰 나무가 있는데 가지와 잎이 무성했었다. 나무를 치는 사람은 그 곁에 있었지만 그 나무를 베지 않았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 나무는 쓸모가 없다고 대답했다. 장자는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하늘이 준 수명을 다할 수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장자는 산에서 내려와 어느 친구의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매우 반가이 장자를 맞이하고, 머슴을 시켜서 기러기를 잡아 삶아오라고 했다. 머슴이 주인에게 묻기를 “한 놈은 잘 울고, 한 놈은 잘 울지 않는데 어느 것을 잡을까요?‘ 하고 말하였다. 이에 주인은 ”잘 울지 않는 놈을 잡아라.“ 하고 명하였다.

  그 다음날 제자들은 장자에게 물었다.

“어제 산중의 그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하늘이 준 수명을 다할 수 있었는데, 어찌하여 이 집 주인의 기러기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죽었으니 선생님은 어느 쪽에 처하시렵니까?”

  장자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의 중간에나 처해볼까? 그러나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과의 중간은 그럴듯하지만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직 화를 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개 저 도덕에 몸을 두어 그의 가는 곳에 맡기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칭찬도 없고 비방도 없으며, 혹은 용이 되고, 뱀이 되며, 때를 따라서 변화해서 구태여 한 가지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 어느 때에는 올라가고, 어느 때에는 내려오면서 화합함으로써 도량을 삼는다. 마음을 만물의 근원인 도에 노닐게 하여 물건을 물건으로써 부리며, 물건에 사역당하지 않으면 어찌 물건에 화를 당하겠는가? 이것은 곧 신농(神農), 황제(黃帝)의 법칙이었다. 그런데 저 만물의 실정이나 인류의 습관은 그렇지 않다. 모이면 곧 떠나고, 이루면 곧 무너지고, 모나면 곧 꺾이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 곧 비평을 받으며, 하는 일이 있으면 곧 이지러지고, 현명하면 음모를 당하며, 어리석으면 남에게 속는다. 그러니 어찌 쓸모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화를 면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제자들이여 잘 기억해 두어라. 오직 도덕의 고을이 있을 뿐이다.”(외편 산목)

  물건이 쓸모가 있으면 있는 대로, 쓸모가 없으면 없는 대로, 제각각 그 나름의 이유로 화를 자초한다. 오직 시비를 초월한 자연의 대도에서 노니는 자만이 화를 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대목은 장자에게도 제자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드문 기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