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지인(至仁)은 친함이 없다(외편 천운)
송나라 재상 탕(蕩)이 장자를 만나서 인(仁)에 대하여 물었다.
장자 말하기를 “호랑이가 인이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이상하게 여긴 탕은 “무슨 뜻인가요?” 하고 물었다.
장자는 대답하여 말하기를 “어미와 새끼가 서로 친하니 어찌 인이라 하지 않겠소.” 하고 말하였다.
이에 탕은 다시 물어서 말하였다. “그러면 지인(至仁=지극한 인)은 어떤 것이오?”
이 물음에 장자는 말하기를 “지인은 친함이 없는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이에 탕이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친함이 없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사랑하지 않으면 효가 아니라 하였소. 그러면 지인은 효가 아니라 해도 좋다는 말인가?”
장자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소. 지인은 지극히 높아서 효는 원래 말할 것도 못되는 것이오. 그러나 이 말은 지인은 효와 비교하여 낫다는 뜻이 아니라, 효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관계가 없다는 말이오. 대개 남쪽으로 가는 사람이 영(郢)까지 가서는 북쪽을 돌이켜보지만, 명산(冥山)을 보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너무 멀리 갔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옛말에도 ‘어버이를 공경함으로써 효도하기는 쉬워도 사랑으로써 효도하기는 어렵다. 사랑으로써 효도하기는 쉬워도 어버이를 의식하지 않고 효도하기는 어렵다. 어버이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쉬워도 어버이로 하여금 나를 의식하지 않게 하기는 어렵다. 어버이로 하여금 나를 의식하지 않게 하기는 쉬워도 천하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어렵다. 천하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쉬워도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의식하지 않게 하기는 어렵다.’고 한 것이오.”(외편 천운)
인(仁)이란 유가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으로서 논어에는 “효와 제는 인의 근본이 된다.(孝弟也者其爲仁之本也)”라 하였다. 일반적으로 친함으로써 효도하는 마음이나 형제가 우애롭고 사랑하는 마음이 나타나고 또한 효도하는 마음과 형제가 우애롭고 사랑하는 마음이 곧 인의 근본이 된다고 할 수 있는데 “지인은 친함이 없는 것이다.”는 말은 유가에서 말하는 인과는 다른 모순되는 말이다.
공경함으로 효도한다는 것은 형식적인 것이니 쉬워도, 진심으로 사랑으로써 효도하기는 어려우며, 효도하는 주체인 내가 대상인 어버이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쉬워도, 효도의 대상인 어버이로 하여금 효도의 주체인 나를 의식하지 않게 하기는 어렵다. 어버이로 하여금 나를 의식하지 않게 하기는 쉬워도 한 단계 범위를 넓혀서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의식하지 않게 하기는 어렵다.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의식하지 않게 하여서만이 비로소 지인이다. 곧 효도의 주체인 내가 의식하지 않고, 또한 천하의 사람이 의식하지 않게 되어서야 비로소 지인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유가에서 말하는 인과는 다르게 사람의 감정과 의식을 배제하고 부정하여 천지자연에 동조할 때만이 지인이 된다는 말이다.
또한 노자는 “천지는 불인이다.(天地不仁)”라 했다. 천지는 곧 천지자연은 만물을 자연 상태로 돌려주는 것으로 인을 삼아 사사로운 정으로 만물을 대하지 않는다. 노자가 말하는 천지불인은 천연자연의 입장에서 볼 때 말하는 불인(不仁)이고, 인간의 세상에서 볼 때는 지인(至仁)이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대개 그 덕은 저 요순도 잊어 행하지 않았으며, 그 은혜가 만세에 미치지만 천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으니 어찌 보잘것없는 인이나 효를 칭찬하여 말할 것인가? 대개 효제(孝悌)와 인의(仁義), 충신(忠信)과 정렴(貞廉) 같은 것들은 모두 스스로 힘써 닦음으로써 저 본연의 덕을 해치는 것이니 숭상할 것이 못되는 것이오. 그러므로 옛말에도 ‘지극히 귀한 것은 온 나라의 벼슬도 버리고, 지극한 부자는 온 나라의 재물도 버리며, 지극한 소원은 온갖 명예도 버린다.’고 한 것이오. 그러므로 도(至貴, 至富, 至願)는 변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오.” (외편 천운)
유가에서 주장하는 효제, 인의, 충신 등은 인위적인 노력에 의하여 오히려 천연자연의 덕을 해치는 것으로 높이 평가할 것이 못되고, 이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초월할 때만 참 도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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