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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의 고전/장자 이야기 백 가지

제75화. 나중에 건어물 가게에서 나를 찾으시오(외편 외물)

간천(澗泉) naganchun 2010. 7. 23. 08:11

 

제75화. 나중에 건어물 가게에서 나를 찾으시오(외편 외물)

 

 

  장자는 부귀나 명리를 초월하여 가난한 생활에 안주하고 있었으나, 끼니를 이어나갈 수 없을 정도의 궁핍함에 하는 수 없이 감하후(監河侯)에게 쌀을 꾸러 갔다. 장자의 소원을 들은 감하후는 생각하기에 이 사람에게 쌀을 꾸어준들 언제 도로 찾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면전에서 거절할 수도 없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좋다. 그런데 나는 지금부터 백성들에게 내 영토의 세금을 받을 참이었는데, 그 세금이 걷히면 자네에게 삼 백금을 꾸어주려고 생각하네. 그래도 좋은가?”

  이 말을 들은 장자는 화가 난 듯 얼굴빛을 고치며 말하였다.

“내가 어제 여기로 오는 도중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다보았더니,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에 붕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놈에게 너는 어떤 놈이냐 하고 물었더니, 나는 동해 왕의 사자입니다. 아무쪼록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로 나를 살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래 좋다. 그런데 나는 지금부터 남쪽으로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임금에게 가서 도를 펴고 난 뒤에 저 서강의 물을 가지고 와서 너를 맞이하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좋은가? 라고 말했더니, 붕어는 화가 난 듯 얼굴빛을 고치고서는 내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꼭 있어야 할 물을 잃고 있을 곳이 없습니다. 나는 단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만 얻어서 살아나면 그만입니다. 그러데 당신은 그런 한가한 말을 하시는군요. 그러면 당신은 나중에 저 건어물 가게에서 나를 찾아주십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실례했습니다.” (잡편 외물)하고 나와 버렸다.

  정신적인 굴욕을 참아가면서까지 굶주린 배를 채우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리라 하는 기개를 보이는 대목이다. 매우 괴로운 경우에 처한 인간에게는 긴급한 대처가 필요할 뿐 어물거리다가는 구해낼 수 없는 것이다. 상대편의 입장에 서서 상대를 이해해야 할 터인데 자신의 형편만을 생각하는 세태를 비꼬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