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앙투안 드 라브아지에 이야기 (4-4/5)
4) 연소의 이해(플로지스톤설의 타파)
당시에는 의사로서 화학자인 게오르그 슈타르(독어 ; Georg Ernst Stahl, 1659-1734, 독일의 화학자. 의사)가 제창한 플로지스톤설이 지지를 받고 있었다.
곧 연소는 일종의 분해 현상으로 자연물에서 플로지스톤이 튀어나오는 현상이라고 했었다.
1774년에 라브아지에는 실험으로 이 설을 물리치고 연소를 <산소의 결합>이라는 것을 내보여 1779년에는 산소를 <옥시제느(불어 ; oxygène)>라고 명명하였다.
이상의 공로로 라브아지에는 종종 <산소의 발견자>라고도 언급되는데 산소(후에 산소라고 명명된 물질) 자체의 발견은 영국의 의사인 존 마요우(John Mayow、1640-1679, 영국의 의사, 화학자, 생리학자)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라브아지에보다 이전 마요우는 혈액 중에 있는 <산소>의 존재를 제창하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1775년 3월에 영국의 자연철학자, 교육자, 신학자인 조셉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 영국의 자연철학자, 교육자, 신학자)가 단체(單體)인 <산소>의 분리 발견에 성공하였다. 단체의 발견자라는 의미로 <산소>의 발견은 프리스틀리에 우선권이 있다. 1775년에 프리스틀리는 이 발견을 논문으로 하여 왕립협회에 제출하고도 있고 오늘날 화학사의 시점으로도 산소의 발견자는 프리스틀리라 한다, 당시 진행 중이었던 과학혁명 가운데에서 프리스틀리 외에 스웨덴의 화학자, 약학자인 칼 빌헬름 셸레(Karl Wilhelm Scheele、1742-1786, 스웨덴의 화학자. 약학자)도 프리스틀리와는 달리 독립적으로 산소를 발견하고 있다.
이처럼 <산소의 발견자>를 특정하기는 곤란하나 연소에서의 산소의 역할을 해명하여 플로지스톤설을 타파한 라브아지에가 산소의 명명자로서의 영예를 얻었다.
미국의 과학사가인 토머스 쿤(Thomas Samuel Kuhn、1922-1996, 미국의 철학자, 과학자,전문은 과학사 및 과학철학)은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의 관점에서 라브아지에의 공적을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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