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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수께끼/역사의 수수께끼

<마야>의 성스러운 샘 이야기

간천(澗泉) naganchun 2010. 2. 11. 05:19

 

<마야>의 성스러운 샘 이야기

-처녀 희생의 전설-

 

 

9층피라미드 

 

 19세기 중엽 무렵 중앙아메리카 유카탄(Yucatan)반도에서 수수께끼의 마야(Maya)유적이 발견되었다.

열대우림의 정글 속에서 발견된 마야의 유적에는 어느 날 갑자기 도시가 버려지고 살던 사람은 하나도 없이 사라졌다. 갑자기 멸망한 흔적이 있어서 마야문명은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마야문명은 천체 관측에 뛰어난 문명이었다. 그에 따르면 그들 마야인들은 260일을 1년으로 하는 독자적인 달력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정글에 세워진 천문대의 원형 지붕에는 무수한 구멍이 뚫렸는데 특정한 별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 결과 19세기 중엽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해왕성이나 천왕성의 존재까지 알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들을 미루어서 마야인은 우주에서 날아온 우주인으로 정글에 숨은 것은 지구인과의 접촉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고, 또 갑자기 사라진 것은 거대한 우주선으로 우주로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하는 설마저 있었다.

 

고고학이 발달된 오늘 날에는 마야문명이 갑자기 밀림 속에서 탄생하여 갑자기 어느 날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내버려져서 밀림 속에 잠겨버린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마야문명은 기원전 5세기 무렵 열대우림 속에서 개화한 밀림 문명이라고 말한다. 고온 다습한 자연환경에서 식량 공급이 어려운 밀림에서 발흥한 마야문명은 특이한 존재라 생각되고 있다.

마야족은 와샤쿠톤(Washakutoun), 티칼(Tikal), 세이바르(Saybal)라 불리는 지방으로 신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도시를 건설하였다. 그 중에서도 마야지방의 거의 중심에 위치하는 티칼의 신전도시는 5기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모시고 200기 이상의 비석, 제단을 갖추어 마야문명을 대표할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 대신전도시였다. 티칼의 최성기에는 인구가 있었약 10만 명의 다고 생각된다.

 

티칼의 신전

 

티칼신전의 가장 큰 것은 70m에 이르고 그들 신전의 피라미드의 꼭대기는 밀림위에 솟았다. 그래서 마치 수해에 뜬 섬과 같았다.

다시 마야문명은 고대 이집트, 고대 중국처럼 한 사람의 왕이 정점에 있어서 지배하는 중앙집권 체제가 아니고 각 신전도시끼리 그때그때의 세력에 따라 종속관계가 되는 횡적인 문명이었다.

유카탄반도에는 지금까지 이러한 신전도시의 대소의 유적이 80이나 발견되고 있다.

각 도시 간에는 전쟁은 있었던 것 같으나 그것은 상대를 정복하여 그 영토를 빼앗는 성격인 것이 아니라 희생물을 얻기 위한 전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서로 일정 수의 포로를 얻은 시점에서 전쟁은 끝나는 것이다.

멕시코 내륙부에서 이들 종교도시는 건조물의 증개축을 반복하여 도시의 규모는 확대되고 그 후 1천년 동안 번영을 계속한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마야족은 9세기에 이르러 1천년 동안 살아온 이 밀림의 신전도시를 갑자기 버린 것이다. 그 후에는 마야족은 중부 멕시코 전부를 버리고 유카탄반도의 북부 저지대로 이동해간 것이다.

마야족이 최종적으로 이동해 간 유카탄반도 북부는 강도 없고 땅은 척박하여 농경에는 알맞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들은 갑자기 도시를 버리고 이런 곳으로 이동한 것일까.

역병이 만연한 때문이라든가. 돌연한 전재지변이 원인이라든가, 전쟁이 일어난 때문이라든가, 흉작 때문이라든가 하는 등등 여러 가지가 생각되지만 결정적이라고 할 만한 이유는 없다.

유카탄반도 북부는 하천이 없는 지대이기는 하여도 그 대신에 무수의 용출수가 나오는 샘이 많았다. 그들 마야인은 이것을 의지하여 새로운 도시건설에 힘쓴 것이다. 용출수가 나는 샘을 <세노테수(Senotesu)>라 불렀었다.북부 지방에는 무수한 신전도시가 건설되었으나 치첸(Chichen), 이차(Itza)는 그 중에서도 두드러졌다.

이 지방에는 큰 샘이 두 개나 있었다. 이들 샘은 직경이 60m 깊이는 20m 물이 용출하는 장소는 깊이가 20m였다. 이 두 개의 샘은 1.6Km정도 떨어져 있고 마치 운석이 충돌하여 생긴 구멍 같은 모양을 한 것도 같았다.

마야인은 이들 중 하나를 관개용으로 쓰고 다른 하나는 신성한 것이라 하여 비의 신 유므차쿠(Yumuchaku)에게 바치는 것으로 하였다. 확실히 이 샘은 음울하고 짙은 녹색을 한 밑바닥에는 비의 신이 살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할 만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천문대

 

게다가 이 샘은 정글에 묻혀 뱀, 지네, 독충이 많이 서식하는 기분 나뿐 장소이기도 하였다.

많은 희생과 재보를 삼킨 성스러운 이 샘은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 성스러운 샘에서 약 400Km 떨어진 곳에 그들은 신전을 건설하였다. 이 신전은 카스틸로(Castillo)의 피라미드라든지 쿠쿨칸(Kukulcan)의 신전이라 불렀다. 높이 24m 밑바닥 한 변이 59m로 9층으로 된 계단형 피라미드였다.

쿠쿨칸이란 날개 달린 뱀이라는 의미로 이 신전에서 성스러운 샘까지는 박석을 깔아서 폭 4m 정도의 훌륭한 도로가 되어 있었다.

양측에는 날개 달린 뱀의 석상이나 심장을 먹는 독수리 상 등이 몇 백 개나 서 있고 그것은 마치 다리의 난간처럼 보였다.

날개가 달린 뱀의 전설은 마야인들 사이에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것으로 실재했던 유카탄반도의 지배자가 아니었는가 생각되고 있다.

 

한발이 계속되고 작물이 마르기시작하면 사람들은 비의 신인 유무차구의 노여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노여움을 달래기 위하여 14세의 아름다운 소녀가 선발되어 비의 신의 색시로서 성스러운 샘에 던져지는 것이다.

 

그는 실재하여 살아있는 신으로 숭상을 받고 그것을 상징한 것이 날개가 달린 뱀의 이미지가 아니었는가 한다.

그런데 이 쿠쿨칸 신전과 성스러운 샘은 한발 때의 희생의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 의식이 행해질 때에는 모든 국민은 희생이 될 소녀를 배웅하기 위하여 이 장소 치첸(Chichen)에 모여드는 것이다. 그 때 쿠쿨칸 신전에서는 소녀가 아름다운 새색시의 분장을 하고 번쩍거리는 장신구를 달고 비의 신에게 가기 위하여 기다린다.

 

이윽고 새벽이 되면 희생 의식은 시작되는 것이다. 먼저 몇 십 단이나 되는 돌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면 성스러운 샘에 이르는 400m 정도의 박석 길로 나온다. 소녀는 의자에 앉은 채로 젊은 사람들에 의하여 운반된다. 그 행렬에는 음악의 행렬도 더해져서 북 소리, 피리 소리, 비의 신을 찬양하는 노래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밀림 속에 있는 성스러운 샘으로 향하여 천천히 나아간다. 박석 길이 끝나는 곳 주변에는 울창한 정글 속으로 들어가서 아침 안개 속에 성스러운 샘이 나타나고 음산한 검푸른 수면이 넘실거리고 있다.

거기서 모든 음악이 끝나면 다시 음악이 시작되고 제사장의 신호로 소녀는 이끌려 나온다.

천년이나 전에 성스러운 샘의 비의 신에게 바쳐지는 소녀는 이 길을 걸어갔었다.

샘가로 이끌리어 간 소녀는 6명의 제사장에 의하여 전후로 흔들린다. 그러는 사이 북소리 피리소리가 절정에 달한 순간 소녀는 6명의 제사장의 손에 의하여 어두운 샘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소녀는 커다란 호를 그리며 몇 십 미터나 낙하하여 첨벙하는 물소리와 물거품과 함께 물속으로 잠겨버리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호위가 되는 젊은 청년도 소녀의 뒤를 따라서 뛰어든다. 그리고 황금, 보석 등 비의 신에게 바칠 귀중품이 차례차례로 그 물속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이 몸서리치는 전설은 16세기에 <디에고 데 란다(Diego. De. Landa 1524~1579) >사교에 의하여 기록되어서 이 이야기는 오랜 동안 수수께끼로 전해온 것이다. 마야문명에는 그림문자가 다수 존재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스페인들은 기독교를 선교하기 위하여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이들 마야의 기록들을 태우고 말았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한 사람의 미국인 <에드워드 톰프손(Edward Thompson)>에 의하여 이 성스러운 샘에 관한 무서운 전설은 실증되었다.

그는 자금을 모아 굴삭기를 이 샘가에 설치하고 몇날며칠을 계속 작업을 하여 샘 밑에 고여 있는 것을 퍼 올렸는데 오물과 썩은 나무 덩굴 뿐 다른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신전의 화병이나 구슬 조각 등이 함께 나와서 이를 계기로 반지, 목거리, 등 장신구, 황금 덩어리, 금은제의 공예품 등 여러 가지 재물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듯이 청년 남녀의 해골이 다수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