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가정인으로서의 공명(孔明)
1, 제갈공명의 아내
그는 20대 전반에 결혼하였다. 상대는 형주(荊州)의 명사 황승원(黄承元)의 딸이다. 이 사람은 얼굴이 못생기기로 유명한 추녀로서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 처녀였다. 당시에 <공명의 장가드는 것만은 본보지 마라.>라는 유행가가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어째서 공명 같은 미남이 그런 얼굴이 못생긴 여자와 결혼했는가 하면 아마도 정치였을 것이다. 공명은 <명사(名士)>이기는 하였으나 이향(異鄕) 출신인데다가 <양양학파(襄陽學派)> 중에서는 이단자였기 때문에 좋은 벼슬자리를 얻기가 어려웠다. 그는 명사인 황승원과 연척관계를 이룸으로써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단 이 아내는 매우 총명한 여성으로 여러 가지로 <내조의 공>이 있었고 두 부부의 사이도 매우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출세한 공명은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는 인간은 아니었다.
2, 자식
다음은 자식 이야기이다.
공명(孔明) 부부는 자식 복이 없었다. 그것을 불민(不憫)히 여긴 형 제갈근(諸葛瑾)은 자기의 차남을 공명의 양자로 입양시켰다. 이가 제갈교(諸葛喬)이다.
공명의 양자 제갈교(諸葛喬)는 친 아버지를 닮아서 어질고 착실한 성격이어서 공명은 그 양자를 매우 사랑하였다. 단지 아쉬운 것은 제1차 북벌에 전후하여 약관 25세에 병사하고 말았다.
그 전에 공명의 그 형에게 쓴 편지가 남아있다.
<교(喬)>는 본래는 성도(成都)에 두어야 하는 데 지금 제장의 자제는 모두 수송의 임무를 맡고 있으므로 그들과 노고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병 500을 이끌고 곡(谷)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교는 몸이 약해서 제1차 북벌에서 수송대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공명은 <타인에게 노고를 끼칠 것이라면 먼저 자기 자신의 가족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양자 교(喬)를 단명하게 한 것이리라.
교(喬)의 죽음을 전후해서 공명 부부에게 대망의 실자(實子)가 태어났다. 그것이 제갈첨(諸葛瞻)이다. 그 때 공명의 부인은 나이가 많았으므로 아마도 첩에서 얻은 자식일 것이다.
공명은 형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첨(瞻)은 이제 8세입니다. 매우 영리하고 귀여운 자식입니다. 그러나 너무 조숙해서 만성(晩成)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걱정입니다.> 이 편지를 낸 후 공명은 최후의 싸움인 제5차 북벌에 출진하였다.
3, 가족의 미래
그리고 자식의 미래가 걱정이 되었는지 공명은 황제유선(皇帝劉禪)에게로 다음과 같이 상주(上奏)하고 있다.
<성도(成都)에는 뽕나무 800주, 척박한 땅 15경(傾)이 있어서 가족의 생활은 그것으로 여유가 있습니다. 신(臣)이 출정하면 특별한 준비도 없이 제 자신의 몸에 필요한 것들은 폐하께서 주실 것이므로 그 외에 재산을 만들어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혹시 신이 죽더라도 안에 여분의 포(布=화폐)가 있고 밖에 남은 재산이 있기도 하여 폐하의 마음을 쓰시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공명은 자신이 죽을 때를 깨닫고 있었던 것일까?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재산은 상주문 내용처럼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의 가족은 승상이었지만 참으로 최저한의 경제생활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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