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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기타/반지의 제왕을 소환하다

➉ 마톰과 선물

간천(澗泉) naganchun 2020. 1. 24. 07:09

2020 ‘내가 쓰고 싶은 특집’ ‘반지의 제왕’을 소환하다

➉ 마톰과 선물




‘설’ 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사랑의 저울을 달아본다면 단연 어르신들이 약자가 된다. 즉 을(乙)이 된다. 갑(甲)은 단연 자식들이다.

갑(甲)은 단연 자식들은 마치 애써 부모님을 뵈러 가주는 것처럼 부담스러워한다. 명절 스트레스가 많다고 하도 보도를 하니 하는 말이다. 젊은이들은 명절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아이들은 그저 좋다. 손해 보는 것이 없으니까. 따라가서 얼굴 보여 드리고 세뱃돈 받고 오면 되니까 무슨 걱정이랴. 물론 그렇지 않는 자식들도 많다.


한편 위의 상황과는 반대로 지금껏 주도권을 쥐고 자식들이 부모님 보고 싶어서 안달하게 하는 경우, 그 부모님들은 진짜 잘 살고 계신 것이다. 사랑의 양방통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고 계신 것이니까 말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어른들은 고충이 많다. 가족들이 기다려지면서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많다. ‘손주들이 올 때 반갑고 갈 때 반갑다고 한다’. 줄 것을 장만하고 체재하는 데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지 마음을 쓴다. 찾아가는 사람들도 선물을 준비하고 마음준비도 한다.


최근 마트에서 하루 종일 어떤 사람의 행동을 지켜본 적이 있다. 선물 상자만을 줄기차게 조립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노동의 힘듦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고.)

평면의 두꺼운 종이를 접고 접고 접으면 입체적인 상자로 조립이 된다. 그 안에 명절 특선 상품들을 담아서 특가로 파는 것이다. 그 상자는 다시 보자기로 싸거나 손잡이가 달린 부직포 가방에 담아 내 놓는다.


선물, 그거 고민이다.

선물, 꼭 새로운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포장만 거창한 선물세트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마트에서 고향집으로 나르는 택배기사도 아니니까 말이다.


이번 설에는 가족들끼리 미니 경매게임을 해보면 어떨까? 

각자가 소장하던 물건이나 가보(?)를 꺼내서 작은 벼룩시장이라도 개최해 보면 어떨까? 

부모님이 고이 간직하던 편지나 사진들도 그냥 덥석 주지 말고 가지고 싶은 아이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이벤트를 해 보는 것이다. 고향 집에 가는 사람들도 각자가 소장하던 것이나 아끼는 것을 나누기 위해서 준비해가는 것이다.


소설 반지의 제왕에 보면 마톰이라는 것이 나온다.


그것은 호빗들이 당장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물건들을 <마톰> 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 1권 p. 17>


이것은 전체 선물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빌보의 집은 그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온갖 물건들로 어수선할 정도였다. 호빗이 사는 동굴은 금방 어수선해지게 마련인데. 그것은 주로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에 기인했다. 물론 그 생일 선물이 언제나 새 물건들인 건 아니었다. 그 중에는 마을 안을 돌고 도는 동안 아예 용도초자 잊혀진 오래된 <마톰>한두 가지씩 들어 있곤 했다. 그러나 빌보는 대개 새로운 물건을 선물로 주었으며 자신이 받은 선물은 잘 보관해 두었다. <반지의 제왕 1권 p. 59>


골동품이나 진품명품이 이렇게 해서 전해지고 전해지면서 귀한 유물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소중하게 아끼고, 거기에서 다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리고 그것이 다시 돌고 돌아 순환하는 것 같다. 자원 리싸이클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 나름대로 ‘마톰’이 있다. 그것을 이번 설에 다시 들여다보고 그 안에 잠들게 방치해 둔 금도끼 은도끼를 쥔 신을 깨워보자. 지금처럼 물자가 풍부한 시대에 들어 먹히는 이야기는 아닐 터이지만, 그런 때이기에 오히려 찾고 싶은 메르헨*이다.


* 메르헨 ([독일어]Märchen) 동화(童话) [명사][문학] 어린이를 위하여 만든, 공상적이고 신비로운 옛이야기나 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