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칠현인(七賢人) 이야기
고대 그리스의 칠현인이란 BC620년부터 BC550년 사이에 훌륭하다고 일컬어진 고대 그리스 인물 7명 곧 탈레스(Thales), 솔론(Solon), 페리안드로스(Perriand dross), 케르베로스(Kerberos), 키론(Chiron), 비어스(Bierce), 피타쿠스(Pittacus) 등을 말한다.
1, 철학의 비조 탈레스 이야기
탈레스상
학구 일변도의 탈레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Thales BC624년 -546년)는 철학의 비조라고 일컬어진다. 그리스 칠현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이오니아학파(미레토스학파)의 창시자로서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생각했다. 일식의 예언이나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 했다. 탈레스는 BC624년 경 그리스의 일 학파인 이오니아인이 개척한 식민지 미레토스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에구사뮤아스, 어머니는 그레오부리네로 페니키아의 명문 데리다이 일족에 속했다. 탈레스는 명문 출시이어서 처음에는 정치가로서의 뜻을 세웠으나 소년시대부터 청년시대까지는 상인으로서 배를 타고 장사하기 위하여 이집트에 가서 이집트에서 몇 년을 살았다. 그리고 이집트의 신관들과 교류하고 측량학을 배우고 이집트의 지식과 기술을 익혔다. 탈레스는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뛰어난 학자가 되어 있었다.
이리하여 탈레스는 천문학 등 자연학의 연구에 열의를 불태워 만물의 근원(아루게)을 탐구하는 자연철학의 비조로서 사색하였다. 페니키아인은 알파벳 문자를 고안한 것으로 유명한데 무역 민족으로서 풍부한 경제력을 자랑하고 배를 조종하는 기술에도 뛰어났었다.
그런 때문에 무역과 해운으로 융성한 페니키아인은 별의 움직임에 규칙성이 있음을 발견하는 천문학을 연구하게 되어 탈레스도 천체의 운동이나 규칙을 연구하는 천문학에 강한 흥미를 나타내었다.
어느 날 상용으로 이집트에 갔을 때 태양이 만드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하여 당시 이집트의 왕을 놀라게 하였다 한다. BC 585년 5월 28일 미레토스에서 일어난 개기일식을 예언한 때문에 탈레스는 미레토스에서 일약 대예언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세속에 무관한 탈레스
탈레스는 중년에는 우수한 정치가로서의 경력을 쌓고 이재를 위한 경역에도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후년에 이르러서는 정치나 가족 등 세속적인 일들에 너무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탈레스는 결혼을 권하는 어머니에 대하여 결혼을 거부하고 청년으로서의 적령기에 결혼을 권하면 “아직 결혼할 시기가 아니다.”하고 연령이 더 들어서 결혼을 권하자 “아직 결혼할 시기가 아니다.”하고 말하였다. 또 가난하니까 철학은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 한다고 비난하자 다음 올리브 수확은 풍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천문학을 통하여 알고 다시 겨울 동안 밀레토스에서 기오스(밀레토스의 섬)의 올리브 압착기계를 모두 빌렸다. 그러자 수확기가 왔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기계를 빌려줄 것을 요구하였으므로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었다.
이리하여 탈레스는 그가 요구한다면 부자가 되는 것은 가능했으나 그런 일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한 때 밀레토스의 어항에서 세발 달린 솥을 인양하였다. 이 진기한 가치가 있는 솥의 소유권을 놓고 젊은이들이 다투는데 아폴론신을 모시는 델포이신전에서 “누구든 지혜로서 만인을 이길 수 있는 제1인자 그 사람에게 그 솥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현자들 중에 가장 쓸모가 있는 자에게 그 솥을 주어라.” 하는 신탁이 내려지자 탈레스에게로 그 솥이 보내졌다고 한다.
탈레스의 일화
탈레스는 어느 별빛이 아름다운 밤 하녀를 데리고 별을 관측하기 위하여 하늘을 보면서 걷다가 우물에 빠졌다. 그러나 그 하녀는 “당신께서는 열심히 하늘의 일을 알려고 하지만 자신의 눈앞의 일이나 발밑의 일에는 일체 마음을 쓰지 않는군요.” 농담을 하였다. 탈레스는 곧바로 “우주는 물로 되어있다.”고 소리 질렀다 한다.
어느 날 브리에네의 왕은 탈레스의 가르침을 받고서 그 보수는 얼마를 드리면 되겠는가 하고 물었다.
그에 답하여
“만일 당신이 저한테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남에게 알리고자 할 때에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 하지 않고 이 저를 발견자라고 해서 칭찬해주신다면 보수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고 답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탈레스가 나귀의 등에 소금을 싣고 시장으로 팔러 가는 도중 강을 건널 때에 나귀가 넘어져서 소금은 물에 녹아버렸다. 이튿날도 소금을 싣고 시장을 향하여 가는데 강을 건널 때에 나귀는 넘어졌다. 나귀는 강으로 넘어지면 짐이 가벼워진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넘어진 것이었다.
한 꾀를 생각해낸 탈레스는 이튿날은 나귀의 등에 해면을 싣고 시장으로 갔다. 이번에도 강을 건널 때에 나귀는 다시 넘어졌다. 그런데 해면은 물을 흡수하여 짐은 더 무거워졌다. 그 후로 나귀가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한다.
탈레스의 학문적 사색 영역
탈레스의 철학적 사색은 정치적 문제나 사회적 현상보다 자연세계의 성립이나 구조에 향했다. 이오니아학파의 창시자인 탈레스는 이 생성 유전하는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지고 무엇에서 발생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 물질이나 기본 원리를 아르케(만물의 근원)라 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생성하고 그것으로 돌아가는 것으로서 만물의 근원(아르케)을 물이라고 생각하여 대지는 물 위에 떠있다고 했다. 그리고 “세계는 물로써 되고 그리고 물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모든 생명은 물을 함유하고 있고 모두 물로 인해서 살아있다. 물이 없어지면 말라서 부스러기가 되어 사라진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농작물도 모두 물로 인하여 살아있다. 따라서 만물의 근본적인 존재는 물이다.”고 주장하였다.
탈레스는 청년시절 이집트에서 살아서 그는 거기서 나일강이 범람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범람한 후에는 식물이 일제히 싹을 틔우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의 눈에는 나일강의 물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비쳤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 근원은 물이다.”고 결론을 유도했다.
탈레스는 달리 <혼>에 대해서도 고찰하여 자석이 철을 움직이는 것은 자석이 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탈레스는 혼은 무엇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물은 신(神)들로 차 있다고 생각하였다고 추측했다고 한다.
BC546년 무렵 탈레스는 체육 경기를 관전하다가 열렬과 노쇠함으로 78세에 사망하였다.
탈레스가 남긴 격언
1) "인간은 나쁜 일을 하고도 신이 눈치 채지 않게 할 수가 있을까요?
--“아니요. 나쁜 일을 꾀하고 있어도 신은 그것을 눈치 챌 것이다.” 하고 답하였다.
2) 불륜을 저지르고 간통죄를 범한 남자가
“나는 간통하지 않았다고 거짓으로 맹세해도 좋습니까?” 하는 질문에
--“거짓 맹세는 간통보다 나쁘지 않다.”(불륜을 저질러도 거짓 맹세하여 숨기는 것이 좋다는 뜻)고 답했다.
3) “인생에서 곤란한 일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나라는 존재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자신에 대한 근원적 문제)라 답했다.
4) “신성한 것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라 답했다.
5) “지금까지 본 것으로 가장 진기한 것은 무엇인가?”
--“늙은 독재자”라 답했다.
6) “인생이란 어떻게 하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가?”에 대하여
--“적이 더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하고 답했다.
7) “어떻게 하면 우리들은 더 좋은 인생, 가장 바른 인생을 걸어갈 수 있는가?”에 대하여
--“타인에 대하여 비난하는 일을 내가 행하지 않도록 하면 바르고 착하게 인생을 걸어갈 수가 있다.”
8) “행복한 인간이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하여
==“신체가 건강하고 정신은 기지에 차고 성질이 순수한 사람이 항복하다. 나를 소중히 해주는 친구는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 잊지 않도록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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