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쓸모없는 것이 쓸모가 있다(잡편 외물)
어느 날 혜시가 장자에게 말하기를 “자네가 하는 말은 너무나 고답적이라서 현실 생활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네.” 하고 말하자 장자는 대답하여 말하였다.
“쓸모없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 있는 것을 알 수 있네. 무릇 땅은 넓고도 크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사람이 걸을 때는 겨우 발을 디디는 자리만 있으면 되네. 그 밖에는 쓸모가 없는 것이네. 그렇다고 발을 재어서 그 밟고 있는 자리만 남겨놓고 그 나머지를 깊이 파내어 황천에까지 이르게 한다면, 사람들은 아직도 그 발밑의 땅만 쓸모 있다고 하겠는가?”
혜시가 말하였다. “그것만으로는 쓸모가 없지.”
이에 대하여 장자가 말하기를 “그러니 쓸모없는 것이 쓸모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네.”(잡편 외물)
장자는 인간 존재를 근원적으로 지탱해주는 천지우주의 절대적인 진리에 눈 뜨기 전에는 무엇이 인간에게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 쓸모가 있는 것인지를 간단하게 정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진리에 눈뜨는 것은 반드시 직접적으로 현실 생활에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눈앞의 것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나무를 보고 산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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