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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의 고전/장자 이야기 백 가지

제87화. 성인(聖人)에게는 정이 없다(내편 덕충부)

간천(澗泉) naganchun 2010. 8. 22. 04:52

 

제87화. 성인(聖人)에게는 정이 없다(내편 덕충부)

 

 

  평소에도 혜시는 장자가 항상 성인에게는 사람으로서의 정이 없으니까 시비의 문제에 구애받을 이는 없다는 주장을 했으므로 이에 대하여 따지고 싶었다.

  그래서 혜시는 장자에게 물었다.

“성인은 본래 정(情)이 없는 것인가?”

  장자는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혜시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정이 없다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했다.

  그러자 장자는

“도가 그 모양을 만들어 주었고, 하늘이 그 형체를 만들어 주었는데 어떻게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고 반론을 폈다.

혜시는 사람이라면 정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인데 왜 이러나 하고 반문 하였다.

“이미 사람이라고 일컬을 바에야 어떻게 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

장자가 말하였다.

“아니 자네가 말하는 정은 내가 말하는 정이 아닐세. 내가 말하는 것은 성인에게는 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정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말일세. 좋아하고 미워하는 감정으로써 안으로 그 몸을 해치지 않고, 항상 자연에 맡겨 둘 뿐 감정이나 욕심에 지배당하지 않고 삶에 더 보탬이 없어야 한다는 뜻일세.”

  혜시가 말하였다.

“삶에 보탬이 없다면 어떻게 그 몸을 보존할 수 있겠는가?”

  장자가 말하였다.

“도가 그 모양을 만들어주었고, 하늘이 그 형체를 만들어 주었네. 그러니 다만 좋아하고 미워하는 감정으로써 안으로 그 몸을 해치지 않으면 그만일세. 이제 자네는 정신을 밖으로 부려서 자네의 정력을 괴롭히고 있네. 혹은 나무에 기대어 높은 노래를 읊조리고 혹은 거문고를 잡아 눈을 감기도 하네. 곧 도를 버리고 기예를 일삼고 있네. 하늘은 자네를 사람의 형체로 뽑아 만들었는데, 자네는 그저 견백(堅白)의 궤변만을 지껄이고 있군그래.”(내편 덕충부)

  여기서 혜시가 말하는 정이란 상식적인 기쁨, 성냄, 슬퍼함, 즐거움, 미워함, 좋아함 등의 감정으로 사람은 이런 감정과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정이 없을 수 없다는 주장인데 반하여, 장자가 말하는 정은 혜시가 말하는 정이란 것이 있어도 자연의 도에 따라서 감정이나 욕심의 지배를 받지 않는 완전한 자유의 상태에 있다면 정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혜시에게 자연의 도에 따르는 정의 자유로운 독립을 하지 못하고서 기예나 견백의 궤변에만 몰두하고 있음을 힐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견백(堅白)의 궤변이란 장자 당시에 공손룡(公孫龍)과 혜시(惠施=혜자) 등 논리학파가 주장한 견백동이설(堅白同異說)을 말한다. 이들은 사물의 실체성과 속성과의 관계를 분석하여 “굳고 흰 돌은 하나의 돌이 아니고, 굳은돌과 흰 돌 두 개이다.”라고 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