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죽음에 임하는 장자(잡편 열어구)
장자의 병이 위독하여 임종하는 자리에 모인 제자들은 후하게 장례를 치르려 하였으나 장자는 이를 거절하였다.
“나는 천지로 관곽(棺槨)을 삼고, 일월로 연벽(連璧)을 삼으며, 성신(星辰)은 주기(珠璣)를 삼으며, 만물은 재송(齎送)을 삼으니 이 이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겠는가?” 하고 말하였다. 관(棺)이란 시신을 담는 널이며, 곽(槨)이란 관을 넣은 겉 상자이다. 관과 곽 사이에는 망자의 신분에 따라 부장품이 담겨 있었던 것이 옛 매장법이다. 부장품은 해와 달로 쌍 구슬인 연벽(連璧)을 삼고, 별들은 진주 구슬이 되며, 만물은 제물이 되니 장례를 치르는 데 이 밖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굳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관이나 부장품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하늘과 땅 사이를 관을 삼고 자연 그대로의 해와 달을 별과 만물을 부장품이나 제물을 삼는다는 장자다운 착상에서 나온 웅대하고 무위자연주의의 독특한 생각이라 하겠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게 하면 선생님의 몸뚱이를 까마귀와 솔개가 먹게 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고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에 장자는 말하였다.
“땅위에 놓아두면 새에게 먹히기도 하리라. 그러나 땅속에 깊숙이 묻는다고 해도 결국은 벌레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굳이 한 쪽에서 앗아 다른 쪽에 준다는 것은 공정한 처사가 아니고, 또한 인위적으로 공정함을 꾀하는 것은 공정함이 될 수 없으며, 의식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려는 것은 참다운 순응이 아니다. 자신이 영리함을 믿고 지혜를 쓰면 도리어 사물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참다운 지혜를 가진 사람은 그저 무심히 사물에 순응할 뿐이다. 결국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영리한 사람은 참다운 지혜를 따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판단에 얽매여 재주를 부리며, 끝내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잡편 열어구)
장자는 그 아내가 죽었을 때 아내는 큰 방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죽음에 임해서는 하늘과 땅을 널을 삼는다 하여 다른 장례 도구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다함과는 생각이 일치함을 볼 수 있다. 이는 장자의 사생관을 단적으로 잘 나타내는 대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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