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세계의 과학자

13,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이야기 (3/5)

간천(澗泉) naganchun 2024. 8. 28. 03:16

13,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이야기 (3/5)

 

 

3, 학생 시절

 

코페르니쿠스의 후견인이었던 그의 외삼촌은 그가 사제가 되기를 원했고, 1491년 코페르니쿠스는 크라쿠프 대학에 입학하여 자유 7과목을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달의 정밀한 궤도 계산을 수행한 저명한 천문학자이자, 기존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천동설에 회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던 보이치에흐 브루제프스키(라틴어 ; Wojciech Brudzewski1445-1497, 천문학자. 근대적 교수법 확립자) 교수로부터 처음으로 천문학을 접하게 되었다.

 

또한 코페르니쿠스가 화학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당시 그가 소유했던 책들에서 엿볼 수 있다. 1495, 학위를 취득하지 않고 크라쿠프 대학에서의 학업을 마친 후, 삼촌의 주선으로 바르미아의 정규 사제직을 얻어 생활을 보장받았고, 1년 정도 발트해 연안의 프로름보르크에 머문 뒤, 1496년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 이탈리아어 : Alma mater studiorum - Università di Bologna)으로 유학하여 법률(교회법)을 공부했다.

 

교회법과 로마법을 공부하는 동안 그는 은사이자 저명한 천문학자인 도메니코 마리아 노바라(Domenico Maria Novara da Ferrara、1454-1504,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볼로냐대학 교수)를 만나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1500년에는 볼로냐 대학에서의 학업을 마친 후 로마를 관광한 뒤 프로름보르크로 잠시 돌아왔고, 바르미아의 성당 참사회에서 허락을 받아 1501년에 다시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이번에는 파도바 대학(niversità degli Studi di Padova)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당시 의료에 필수적이라고 여겨졌던 점성술도 함께 배웠다. 파도바에서의 학생 생활은 2년간 지속되었으며, 결국 1503년 페라라 대학(Uiversity of Ferrara)에서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바르미아로 돌아와 다시 정규 사제직을 맡게 되었고, 이후로는 바르미아 지역과 그 인근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