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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13,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이야기 (4/5)

간천(澗泉) naganchun 2024. 8. 29. 03:22

13,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이야기 (4/5)

 

 

4, 지동설의 완성

 

코페르니쿠스가 돌아왔을 때, 그는 성직자였으나 발미아 영지에서가 아닌 그의 외삼촌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리즈발크(리즈발크-발미니스키)에 있는 주교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여기서 그는 성직자로서, 또 의사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천체 관측을 하였고,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정리해 나갔다.

본격적으로 지동설에 대한 착상을 얻은 시기는 1508년에서 1510년경으로 추정되며, 천동설에서는 주전원을 통해 설명되었던 천체의 역행 운동을 지구의 공전 속도 차이에 따른 겉보기 현상으로 설명하는 등의 이론적 뒷받침을 해나갔다.

이 무렵 그는 그리스어도 독학하고 있었으며, 1509년에는 그리스어로 된 편지 모음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1510, 코페르니쿠스는 외삼촌의 곁을 떠나 다시 발미아 영지의 성직자로 복귀하여 프롬보르크에서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그는 동인지를 통해 "코멘타리올루스" (Comentariolus)를 출판하여 처음으로 태양중심설(지동설)을 공표했다.

다만, 이는 몇몇 친구 수학자들에게만 보내진 것이었고, 일반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