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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위, 옷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

간천(澗泉) naganchun 2024. 2. 26. 06:48

제11위, 옷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

 

비스마르크

 

 

오토 본 비스마르크독어 ; 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Schönhausen ,1815-1898), 1865년에는 백작(伯爵), 1871년에는 후작(侯爵), 1890년부터는 공작(公爵) 으로서 프로이센 및 독일의 정치가이다.

프로이세왕국 수상(재임 18621890), 북독일연방수강(재임1867-19871), 독일제국 재상(제임 1871-1890)했다. 독일제국의 초대 수상을 역임한 독일통일의 중심인물이고 <철혈재상>(독어 ;„Eiserne Kanzler“이라는 별명을 가진다.(위키페데아)

 

 

<독일>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언제 되었는가?

답은 19세기후반 비스마르크시대부터이다.

 

독일은 이탈리아와 함께 통일이 늦어진 국가로서 근대화 된 것도 늦다.

19세기 전반 나폴레옹에 의하여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고 몇 개의 소국으로 분열되었다. 그 중에서 급진적인 역할을 한 것이 프로이센이다.

프로이센은 단독으로 나폴레옹과 싸울 만큼의 나라였지만 빌헤름1세 때에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취임함으로써 국력을 크게 키웠다.

 

덴마크와의 싸움을 계기로 오스트리아와의 사이에서의 보환전쟁, 프랑스와의 보불전쟁에서 승리하여 영토를 확대하고 국내에서도 산업이 발전이 두드러져서 1871년에는 약 4천만 명이었던 독일 인구도 1차 대전이 시작된 1914년에는 약 6800만 명으로 증가하고 동시에 학문분야도 신장하여 19세기 후반의 물리학의 발견에서는 영국 751, 프랑스797건인데 대하여 독일은 1886건이라는 압도적인 비율이 되어서 각 분야에서 독일제국이 타국을 압도하는 모양이 되었다.

 

비스마르크 자신은 1890년에 재상 직을 사임하고 있는데 독일 근대화의 발전은 비스마르크시대에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서 군국주의 독일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곧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 및 독일을 열강의 대열에까지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보불전쟁을 통하여 프랑스와의 사이에서 화근이 깊어지고 비스마르크 사후 독일로 인하여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그 후 프랑스와 독일은 미움으로 베르사이유 조약을 낳았다.

인과관계를 본다면 후의 나치스의 대두와도 이어져서 좋건 나쁘건 비스마르크란 사람의 존재는 세계사를 크게 바꾼 것은 확실하다.

출처=www.myworldhistoryblo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