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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

간천(澗泉) naganchun 2024. 2. 27. 04:37

제10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불어 ; Napoléon Bonaparte, 1769-1821)는 프랑스 혁명기의 군인, 혁명가로 프랑스 제1제정의 황제로 즉위하여 나폴레옹1(불어 ; Napoléon Ier재위 ; 1804-18141815가 되었다. 1세에 이어 3세까지 존재하는데 단 나폴레옹이라고 하면 나폴레옹 1세를 말한다.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을 수습하여 군사독재정권을 확립하였다. 대육군(大陸軍)(불어 ;그란다르메,Grande Armée)이라는 이름의 군대를 구축하여 프랑스혁명에 대하여 간섭을 꾀하는 유럽 제국과의 나폴레옹전쟁을 싸워서 많은 승리를 얻고 혼인정책으로 영국, 러시아,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제외한 유럽대륙의 태반을 세력 하에 두었다. 대불대동맹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51세 에 유배지인 센트헤레나섬에서 사망했다.(위키페디아)

 

좋든 나쁘든 화려한 인물이다.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얼마 전까지 이탈리아의 일부였던 코로시카섬 출신이다.

프랑스혁명의 흐름을 타서 오스트리아전선이나 이탈리아, 이집트 등에서 싸웠다. 그럴 때마다 승전하여 이름을 높이고 마침내는 프랑스의 황제로 대관식까지 행하여 프랑스 제1제정의 창설자가 되었다.

 

민주주의로 기울어가던 프랑스를 다시 절대군주제로 해버린 그에게는 현재까지 찬부양론이 있고 전투에도 번번이 승리하였으나 러시아 원정에서의 실패나 영국의 넬슨제독과의 트라파르카해전, 원터루의 전투 등에서의 패전 등 패전의 경험도 많고 최후에는 센트헤레나 섬에 유배되어 51세에 사망했다.

 

나폴레옹 사후는 오스트리아 재상 멧데르니히에 의한 반동적인 빈체제가 구축되었는데 영웅을 기대하는 소리와 민주화를 바라는 민중에 의하여 프랑스는 7월혁명, 4월혁명이라는 혁명이 계속하여 일어나서 마침내 공화정이 탄생했다. 그러나 다시 나폴레옹의 조카를 지지하여 다시 제정으로 되돌아갔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만이 아니라 근대 유럽의 역사상 크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나폴레옹에 의하여 해체된 신성로마제국은 이윽고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독일제국으로 변모하고 양국의 싸움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나간다.

출처=f:id:myworldhistoryblog:20190527202331j:pl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