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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위, 콘스탄티누스제(270년경-337년)

간천(澗泉) naganchun 2024. 2. 22. 04:22

제13위, 콘스탄티누스제(270년경-337년)

 

콘스탄티누스제의 상

 

 

가이우스 프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누스(고전 라틴어 ; Gaius 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279년대 전반-337)는 로마제국의 황제(재위 306-337)이다. 복수의 황제에 의하여 분할되었던 제국을 재통일하여 원로원에서 막시무스( Maximus위대한/대제의 칭호를 받았다.

 

로마제국의 황제로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신앙한 인물이고 그 후 기독교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 때문에 기독교사상 특히 중요한 인물의 한 사람이고 로마 가톨릭, 정교회, 동방제교회, 동방전례가톨릭교회 등 주요한 종파에서 성인으로 추대한다. 또 콘스탄티누스1세가 자신의 이름을 붙여서 건설한 도시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블)은 그 후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수도가 되고 정교회의 총본산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위키페디아)

 

로마제국에 의하여 박해당하고 있던 기독교를 공인한 최강무패의 황제이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로마교황은 힘을 가지지 못하였을 것이고 기독교가 유럽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서지 못하였을 것이다.

미루위스크교의 싸움(이탈리아어 ; Battaglia di Ponte Milvio. 31210f 28일 두 사람의 로마교황이 싸운 전투)에서 대표되듯이 압도적인 무력으로 난립하는 황제후보를 격파시키고 로마교황이 되자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여 천도하였다.

 

312년에 로마 국내에서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칙령을 발표하였다.

이로 인하여 탄압대상이었던 기독교는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

 

아마도 콘스탄티누스제의 어머니가 숨겨진 기독교인이었다고 보여서 그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밀라노칙령에 의하여 로마제국 내의 세력은 격변하고 기독교세력이 급격히 힘을 가지게 되어 후의 데오도시우스제의 대파괴로 이어졌다.

이런 면에서 콘스탄티누스제는 동로마제국의 창설자이면서 로마제국의 파괴자이고 로마제국 최후의 명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콘스탄티누스제는 성제(聖帝) 혹은 대제라 불리게 되어서 그 평가가 뒤집힌 일은 역사상에 한 번도 없었다.

출처=www.myworldhistory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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