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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수께끼/역사의 수수께끼

제국의 멸망에서 500년, 아스데카인은 누구였나? (2)

간천(澗泉) naganchun 2021. 11. 30. 03:39

제국의 멸망에서 500년, 아스데카인은 누구였나? (2)

 

 

 

멕시코인 화가 호세 마리아 하라가 1889년에 그린 그림. 메시카의 신관이 도시를 세워야 할 장소를 말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우치와 선인장이 그려져 있는 것은, 테노티티 트란이 나와톨어로 「우치와 선인장에 둘러싸인 장소」를 의미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멕시코 국립 미술관 (멕시코 시티) 소장. (PHOTOGRAPH BY DAGLI ORTI/AURIMAGES)

 

권력의 중심

 

멕시카는 유목민으로 이주를 여러 차례 반복한 후 도시국가 *아즈카포찰코(Azcapotzalco)가 지배하는 멕시코분지인 텍스코코호의 섬들에 정주하였다. 메시카는 용병으로 활약하여 격한 전투력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들은 10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이 지역을 지배하고 강대한 문명을 구축한 톨데카(Tolteca)인과 같은 나우와틀어(Nahuatl language)를 썼다.

 

===*아즈카포찰코(Azcapotzalco)

영어에서 번역됨-Azcapotzalco는 멕시코시티가 분할된 16개 지방 자치 단체 중 하나입니다. Azcapotzalco는 멕시코시티의 북서쪽에 있습니다. 위키백과(영어)===

 

1325년경 멕시카는 테노치티틀란을 건설하여 수도로 하였는데 그 후 오랜 동안 아즈카포찰코의 지배하에 있었다. 15세기 초두에 아즈카포찰코의 군주가 서거하여 후계자를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나 국력이 쇠퇴하자 1428년에 테노치티틀란, 텍스코코, 틀라코판의 3도시에 의한 새로운 세력 <삼국동맹>이 탄생하였다.

삼국동맹이 성립된 당초는 텍스코코와 테노치티틀란의 2개 도시가 우세했으나 이윽고 테노치티틀란이 단독으로 큰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삼국동맹은 아즈카포찰코를 비롯한 근린 나라들을 지배하에 두었는데 영토 확대에 열심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1450년에서 1454년에 걸쳐 대기근이 멕시코분지를 휩쓸어 상황은 변하였다. 삼국동맹은 식료를 생산하는 토지가 필요하여 다른 도시국가의 정복이 시작되었다.

영토의 확대는 삼국동맹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테노치티틀란의 제6대 통치자 악사야카틀(Axayacatl1450? - 1481하에서 가속하였다.

 

제국의 확대와 붕괴의 배경

 

1481년 악샤야카틀의 아우인 티조크(Tizoc? - 1486)가 제7대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의 치세는 짧고 반란이 일어나 영토도 확대시키지 못하였지만 그의 권력을 과시하는 <티조크의 돌>이라는 원반상의 석비가 남아있다.

다음으로 권력을 잡은 것은 아스데카에서 가장 위대한 통치자라 하는 아우잇조틀(Ahuitzotl? - 1502)이다. 그는 오늘의 과테말라(Guatemala)까지 국경을 넓혀 마야의 땅에 다가갔다. 1502년에 아우잇조틀이 사거하자 모크테주마Moctezuma II, 1466-15202세가 제9대 통치자가 되어 태평양측의 자포테크(Zapotec)인의 토지까지로 삼국동맹의 영향력이 크게 넓혔다. 에르난 코르테스가 운명의 상륙을 성취하여 1519422일에 베라쿠르즈(Veracruz)에 식민지를 설립하였을 때의 통치자도 모크테주마2세였다.

제국을 확대하는 수단은 전쟁만이 아니었다. 도시국가나 그 토지는 외교나 상속에 의하여 획득되었다. 동맹의 영토내의 영주의 죽음은 기회이고 권력승계의 과정은 종종 긴장한 것이 되었다. 후계자 후보가 동맹의 힘에 저항하면 멕시카에 순종하는 근친자로 교대되는 일도 있었다. 지방을 강력하게 지배함으로써 아스데카는 보다 많은 힘을 축적하였다.

이 시스템에 의하여 동맹 내에는 복잡한 권력구조가 형성되어 갔다. 어느 지방의 영주는 테노치티틀란의 대영주에 따라서 다른 지방의 영주와 텍스코코나 틀라코판의 대영주에 순종한다는 구조이다. 이 복잡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삼국동맹은 수십 년 간에 급속히 발전하였는데 복잡함에 따라 생긴 다툼이 테노치티틀란을 멸망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후계자 선택이 복잡해지는 것은 복수의 후계자 후보가 대영주와의 사이에서 같은 관계에 있고 대영주가 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였다. 코르테스가 도착하는 조금 전에 텍스코코의 통치자 네자와루필리Nezahualcóyotl, 1402-1472)가 사거했을 때 마치 이 상황이었다. 그런 때문에 모크테즈마는 2개의 파벌을 거절하는 위험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거절당한 후계자 후보의 한 사람인 이슈트릴쇼치틀(Ixtlilxochitl Ometochtli, 1390-1418)은 후에 스페인과 동맹을 맺게 된다.

권력의 소외와 지방의 대립이 테노치티틀란의 붕괴의 요인이 되었다. 스페인의 침공을 앞에 두고 메조아메리카의 도시국가는 각각 살 길을 선택했다. 틀락스칼라(Tlaxcala)처럼 스페인과 동맹을 맺는 것을 택한 자도 있고, 멕시카처럼 싸움을 선택한 자도 있었다. 스페인이 아스데카를 멸망시킨 1521년의 사건에 대하여 재검증이 시작된 지금 멕시카의 이야기와 그 운명에 대해서는 다시 수많은 수수께끼가 해명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JOSE LUIS DE ROJAS번역미에사야코(三枝小夜子)

일본어원문=帝国滅亡から500アステカとは何者だったのか

출처=https://news.yahoo.co.jp ›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