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자랑하는 천하 제일의 미인
오이치(市)(1547~1583)(2/2)
오이치(お市)의 일화
오다니지(小谷寺)에는 오이치 가다의 넨지부쓰(念持仏=개인이 신변에 두고 사적으로 예배하는 불상)라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전국 제일의 미인이라 하고 총명했다고 전해진다.
장녀인 요도도노(淀殿)는 아버지 나가마사(長政)의 17주기와 어머니 오이치가다의 7주기에 양친의 초상을 그렸다. 이 초상화는 고노야마(高野山)의 지묘인(持明院)에 전해지고 전국시대 말기부터 야쓰지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에 걸쳐서 귀부인의 정장의 전형적인 것이다.
<아사쿠라가기(朝倉家記)>에 따르면 가네가사키(金ヶ崎) 대전 때에 노부나가(信長)에게 주머니의 양끝을 묶은 팥 주머니(小豆の袋)<「오빠는 주머니 속의 쥐입니다.>라는 뜻을 전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이 시기의 풍습으로는 다이묘(大名=지역 통치자) 간의 정략결혼에서 여성은 혼가에 보내진 외교관, 간첩 등의 양쪽의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오이치가다는 양가를 둘러싼 상황의 변화를 정보로 하여 친정에 전달하는 역할을 다했다는 것이 엿보인다.
계심원문(溪心院文=계심원이라는 사람이 쓴 글)에 의하면 37세 때에 실제 나이보다 22,3세로 젊어 보이는 몸이었다고 한다.
세 딸이 가는 길의 장래를 걱정하던 오이치가다는 기다노쇼죠(北ノ庄城=현재 후쿠이현 후쿠이시 오데에 소재하던 노부나가의 가신 가쓰다(勝田)의 성) 낙성 때에는 비호를 받는 하시바히데요시(羽柴秀吉=후의 豊臣秀吉)에게 직필한 편지를 보내어 세 딸의 신병의 보장을 요구했다. 또 혈통의 존속을 생각한 행동이기도 하였다. 후에 도쿠가와가(德川家)에 시집 간 고((江)에 의하여 그 혈통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오이치의 딸들
오이치(お市)의 세 딸 중에 장녀 차차(茶茶)는 도요도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처로서 2명의 이들을 낳았고,
삼녀 고(江)는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 제2대 장군 도쿠가와히데다다(德川秀忠)의 처로서 제3대 장군 도쿠가와이에미쓰(德川家光)을 낳았다.
고(江)의 자손이 도쿠가와막부의 장군을 계승하였다.
(위키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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