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단상/월요단상

‘무하유無何有의 향鄕’을 찾아서

간천(澗泉) naganchun 2024. 12. 9. 04:20

‘무하유無何有의 향鄕’을 찾아서

 

 

 

우리가 외모를 갖추어 옷을 입을 때, 대체로 공적인 생활을 위하여 밖으로 나갈 때는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나가지만, 일단 집안에 들어가면 이 정장을 벗어버리고 편안한 차림으로 지내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공적 사회적 생활을 규제하고 본으로 삼아 온 것이 공자,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의 도덕률이며, 격식에 맞는 복장인 정장을 해야 하도록 하였다면, 사적이고 개인적으로 인생과 자연의 무한하고 영원한 세계를 철학적 종교적으로 자유로이 사유하게 하여 인생의 길잡이가 되고, 자유로운 복장을 하게 한 것이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의 사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당시 장자와 맞먹는 변론가로서 혜시惠施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혜시는 장자에게 말하기를

"우리 집에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개똥나무라 부른다네. 그 밑동은 혹투성이라서 먹줄을 칠 수가 없고, 작은 가지들도 꼬불꼬불해서 자를 댈 수가 없다네. 그러므로 이 나무는 목수조차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네. 지금 그대의 말도 이 나무와 같아 크다 할 뿐 무용의 물건이라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일세."라 하며 장자를 비판하였다 한다.

곧 자네의 사상은 너무나 초세속적(먹줄을 치지 못하고, 자를 댈 수 없음)이어서 현실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장자는 지금 자네는 모처럼 큰 나무를 가졌음에도 그것이 쓸모없음을 걱정하고 계신 모양이네만, 왜 그것을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아무 것도 없는 고을)인 광막한 들에다 심어 놓고, 그 주위에서 무위로 날을 보내며 소요하다가, 나무 그늘에서 유유히 낮잠이나 자려 하지 않는가? 그러면 그 나무는 도끼에 베어지지도 않을 것이고, 아무에게도 해를 입을 염려가 없으니, 비록 그것이 무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무슨 괴로움이 있겠는가?”(내편 소요유)

세속에 얽매인 곧 먹줄이나 자라는 규범에 인간의 눈은 고정화되고 습관화되어 기성의 가치체계에 못 박혀 있으므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자유로운 가치, 참 유용함을 모르고 있다. 세속의 인간들이 모르는 자유로운 가치와 참 유용함을 세속의 인간들이 무용하다는 데서 찾는다. 이것이 무용無用의 용곧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음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미개척의 세계를 찾아 자유분방하게 사고를 펼친다면 무엇이든지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처럼 정치적사회적경제적으로 개인의 부침이 격심하여 생의 불안을 절감하면서 안정을 갈구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자기의 존재를 새삼스러이 사유함으로써 낙망하여 침몰하지 않고, 낭만적으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힘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개인의 존재 양상을 재정립함에 있어서는 공적 사회적으로 본이 되어온 유가적 도덕률과 가치체계를 재평가하고, 도가적인 무한한 상상력과 자연과의 친화 속에서 새로운 양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인위적인 도덕률과 제도의 고정 관념에서 탈출하여 자연 친화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정립해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1세기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의력이 필요하며, 자연을 보다 더 중시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한다. 더욱이 노자와 장자가 인기를 얻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학자도 있다. 근래에 자연환경의 파괴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고, 또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 정복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자연 친화의 입장을 견지하여 대처하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맞아 고대 중국 사상의 2대 조류의 하나인 자연 사상을 중시한 노자,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의 사상을 담은 장자(莊子)’에 새로운 관심을 기울여 재음미해 봄으로써 쓸모없는 것이 쓸모가 있게 되는 무하유無何有의 향을 찾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단상 > 월요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기되는 경구, 세 가지  (3) 2024.12.23
노년의 마지막 투쟁  (3) 2024.12.16
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새 사냥>  (1) 2024.12.02
효심의 가을 선물, 홍시  (1) 2024.11.25
가을 끝자락 새벽에 드리는 기도  (0) 2024.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