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의 가을 선물, 홍시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다. 땅에서 솟아나는 열매와 선선한 바람은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채워준다. 최근 나는 가을이 준 선물들을 여러 차례 받았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그것을 건네준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그 안에 깃든 따스한 정을 느낀다.
며칠 전, 이웃이 밤 한 봉지를 건네주었다. “조금 모자라도 나누어 드시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띠는 그의 모습이 참 푸근했다. 그 순간, 나누는 정이야말로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행복의 근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 오자, 부산과 수원에 사는 딸들도 홍시를 보내왔다. 가지에 달린 채 고운 빛으로 익은 감들은 단순한 과일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딸들이 표현한 효심의 발로였다.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것은 물질적 가치 이상의 감정이다. 선물 하나에도 담긴 정성과 사랑은 가슴 깊이 전해진다.
그 홍시를 보며 문득 옛 시조 시인 박인로의 시가 떠올랐다.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노라.
쟁반 위에 놓인 홍시를 보고 시인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딸들도 어쩌면 이런 마음을 떠올리며 홍시를 보냈으리라.
또 다른 고전 구절도 생각난다.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네.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
돌아가시면 다시 뵐 수 없는 분은 부모님이로다.
딸들은 아마도 세월의 무상함을 떠올리며, 서둘러 홍시를 보낸 것이리라.
가을의 선물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넘어선다. 그것은 <주는 기쁨과 받는 고마움>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노년은 흔히 삶의 마지막 계절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것은 풍요롭고 따뜻한 가을의 연장선임을 깨닫는다.
가을이 준 선물은 삶의 끈끈한 정과 온기를 기억하게 한다. 나이가 들며 겉모습은 달라질지라도, 받은 선물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내가 다시 나눌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가을의 선물처럼 받은 것을 나누는 마음으로, 나 또한 풍요롭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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