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단상/월요단상

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새 사냥>

간천(澗泉) naganchun 2024. 12. 2. 05:37

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새 사냥>

 

 

아마도 어린이와 강아지가 아니더라도 겨울이 되어 첫눈이 내리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쩌다 우리의 주변에 중대한 경사라도 있을 경우 눈이 내리면, 서설(瑞雪)이라 하여 더욱 좋아하고, 덕담의 소재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것이 상례일 것이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밤의 고요함은 신비로운 동화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하늘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며 내리는 함박눈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환희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며 신비의 세계로 끌려 들어가도록 한다.

도대체 하늘은 무슨 조화로 하얀 눈을 내리게 하여 저토록 온 누리를 아름답게 만든단 말인가.

나는 눈 덮인 설경의 정밀도 좋아하지만 눈이 내린다면 가벼운 서풍을 타고 함박눈으로 내렸으면 한다. 그러면 외투 깃을 높이 올리고 터벅터벅 눈에 취하여 이 세상의 오욕 칠정에 찌든 내 마음을 정화시키며 한없이 들길을 거닐어 무념무상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직 단풍이 지지않은 가을 끝자락인 11월에 한파와 대설로 전국이 설국이 되다니. 보도는 117년 만의 이른 한파 대설이라고 한다.

눈은 내려도 살포시 대지를 덮어, 온 누리를 하얗게 하는 정도면 좋을 텐데, 이렇게 한파와 함께 미터로 헤아릴 정도의 눈이 온다는 것은 낭만과 경이와 환희를 가져오기는커녕 암울하고 참담함으로 위협을 줄뿐이다. 과연 기상 이변이 아닌가.

 

눈이 내리면 좋아하는 것이 강아지요 어린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좋아하는 사람은 어린이일 것이다.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고 추위도 잊은 채로 해지는 줄을 모른다. 어린이는 추위를 견디는 힘을 타고났는지 모른다.

 

눈이 내리면 어릴 때의 생각이 난다.

팔십 년 가까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옛날의 일이다. 그 때는 산업사회가 오기 전의 농경 위주의 전통사회의 일이라 자연은 그대로 보존되고, 생태계에도 변화가 별로 없는 때의 일이다. 그 때는 눈이 자주 내렸다.

눈이 내려 하얗게 들판을 덮으면 들판으로 새를 잡으러 나갔었다. 새를 잡으려면 <생이치>(새를 잡는 올가미 덫)라는 것을 만든다. 치는 날일()자 모양이나 활 모양으로 만드는데 말의 갈기나 꼬리의 털 곧 말총을 꼬아 만든 올가미를 치 틀에 맨 줄에 한 치 정도의 간격으로 달아 새가 덤벼들면 걸리게 만든다. 그리고 일자 모양의 치 틀에는 네 귀에 말뚝을 박을 수 있게 만들고 활 모양의 치 틀에는 세 곳에 말뚝을 만든다.

 

눈이 내려 온 들판을 덮어버리면 땅에서 주로 사는 종달새들은 먹이를 구하지 못하여 떼를 지어 먹이를 찾아 몰려다니게 된다. 눈 덮인 보리밭 한가운데에 덮인 눈을 긁어내고 검은흙이 드러나게 하여 그 자리에 <생이치>를 박아두고 새 미끼로 좁쌀을 뿌려 두고서 멀리 바람을 피하여 망을 보다가 새떼가 한 번 날아와 앉아 먹이를 먹고 날아가 버리면 올가미로 만들어진 치에 새들이 걸려 파닥거리는 것을 달려가 한 마리씩 붙잡는다.

 

많이 잡힐 때는 예닐곱 마리씩이나 잡힌다. 그 밖에도 새를 잡는 방법으로는 조 이삭에 말총으로 만든 올가미를 매어 섶 가지에 매달아두면 주로 나무나 섶 가지에서 서식하는 <총달기>는 먹이를 좇다가 조 이삭을 뜯어 먹으려다가 잡히기도 하였다.

잡아 온 새는 털을 벗기고 내장을 빼낸 다음에 소금을 뿌려 숯불에 구우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다. 어려운 농촌이라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아기의 영양 보충 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눈 속에 꿩이 집안에 날아들어 잡아먹었는데, 그 해 겨울이 지나기도 전에 그 집안에 불상사가 생겼다는 둥, 노루가 외양간에 달려들어서 잡아먹었는데, 그 집에도 또한 흉한 일이 생겼다는 둥 하여 어려움에 처한 짐승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말을 듣기도 하였었다. 요즘 말로 하면 자연을 보호하여 생태계를 보존해야 한다는 선인들의 교훈이었지 않은가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조물주가 삼라만상을 창조하실 때에는 종은 종마다 제각기 자연의 하나로서 제 구실을 맡기고 자연 속에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한 섭리가 있는데, 탐욕스럽고도 무지몽매한 인간들이 몸에 좋다고 하면 야생의 짐승을 마구 잡아내는 일은 얼마나 조물주의 섭리를 어기는 일인가.

이렇게 자연 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결국 자연의 하나인 인간마저도 자멸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이라는 걸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부득이한 필요에 의하여 사냥을 하더라도 자연의 먹이사슬의 법칙에 따라 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부족이 없도록 사냥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조물주의 섭리에 따르는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눈이 쌓이면 생이치를 들고 새를 잡으러 들로 나아갈 것이 아니라, 모이 부대를 짊어지고 들로 나아가서 새들에게 모이를 뿌려주고 오리라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