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돌봄의 시대

돌봄의 시대 16 침대에서 휠체어로, 하루가 굴러 간다

간천(澗泉) naganchun 2025. 3. 23. 04:54

요양원의 하루는 침대에서 시작해 휠체어로 이어진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어르신들은 늘 누워만 있을 수 없다. 누운 자세로 오래 지내면 몸에는 욕창이 생기고, 마음도 더욱 가라앉는다. 침대에서 한 번이라도 벗어나 휠체어에 앉아 다른 이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고, 그저 거실의 풍경을 보는 일조차 어르신들에게는 작은 변화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어르신들을 휠체어에 옮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때로는 한 사람의 힘으로, 때로는 세 사람이 합심해서. 가벼운 어르신들은 조금 수월하지만, 무거운 어르신들은 몸 자체가 움직이지 않는 커다란 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몸이 담고 있는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힘든 마음을 잠시 잊는다. 그 무게는 단순한 몸무게가 아니라 그분들이 살아온 모든 세월과 기억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이동을 해야 할 때,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항상 앞으로 나서서 어르신을 앞에서 안아 올리는 역할을 맡는다. 내 팔과 허리가 가장 먼저 그 무게를 견딘다. 몸이 무거운 분일수록 그 순간의 무게는 더 커진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하다 보니 동료들도 자연스럽게 내 역할을 당연히 여기게 되었다. 내가 힘들어도, 몸이 아파도 내색하지 않는다. 대신, 어르신이 휠체어에 무사히 앉아 허리를 펴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오늘도 잘했어.”

 

휠체어에 어르신을 앉히고 나면 나는 한 번 더 손길을 뻗는다. 옷매무새를 고쳐주고, 안전벨트를 매고, 발을 안전대 위에 올린다. 실내화를 신기고, 양말이 벗겨져 있다면 양말도 신긴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어르신이 방금까지 누워 있던 흔적을 정리한다. 헝클어진 이불을 가지런히 개고, 베개의 모양도 단정히 다듬는다.

 

그 후 어르신을 거실로 모시고 나오면 그때부터는 변신 타임이다. 헝클어진 머리를 빗질하면서 이야기를 건넨다.

“오늘도 예쁘게 변신해볼까요? 거울 보세요, 예뻐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제각각이다.

어떤 분은 웃음으로 화답하고, 어떤 분은 무표정으로 그냥 멍하니 앉아 있다. 또 어떤 분은 “뭐라는겨?” 하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괜찮다. 각양각색의 반응이 요양원의 또 다른 매력이다.머리가 헝클어진 어르신에게 빗질을 해드리고, 휠체어용 식탁 패널을 설치하며 차분히 식사 준비를 돕는다. 이런 반복되는 일상은 단조롭지만, 그 안에서 나는 매일같이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이 와중에 재미있는 순간도 찾아온다. 어떤 어르신은 휠체어에 앉자마자 실내화를 휙 던진다. 그 장난기 어린 행동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린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하고 핀잔을 주지만,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또 어떤 어르신은 가만히 내 손길을 따라주며 차분히 식사를 기다린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멍하니 앉아 계신 분도 있고, 갑자기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터뜨리는 분도 있다. 모두가 다르지만, 그 모습들은 어딘가 따뜻하다.

 

그렇게 차례차례 어르신들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며 하루가 시작된다. 비록 어르신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아니 말을 하지 못해도, 그들의 작은 반응과 표정에서 느껴지는 삶의 흔적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들은 단순히 이동되고, 앉혀지고, 식사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의 하루를 함께 열어가는 존재들이다.

 

요양원의 일상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어르신들을 향한 세심한 배려가 가득하다. 어르신들이 하루를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보낼 수 있도록 움직이고, 돌보고, 말 한마디를 건네는 그 모든 과정이 요양원에서의 삶이다.

 

하루가 끝나면 몸은 무겁고 팔과 허리가 아프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하루가 무사히 흘러갔다는 생각에 마음은 조금 가벼워진다. 나는 그들이 가진 세월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내일도 다시 침대 앞으로 나설 것이다. 그렇게 요양원의 하루는 반복되고, 그 속에서 나는 조용히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