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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을 위대한 여성

근대영국 장편소설의 정점을 낳은 <제인 오스틴>(4/6)

간천(澗泉) naganchun 2023. 10. 12. 03:31

근대영국 장편소설의 정점을 낳은 <제인 오스틴>(4/6)

 

 

4, 아버지의 사후 튜톤으로 이사하고 『분별과 다감』으로 데뷔한다.

 

1805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와 언니와 오스틴은 항구도시인 사우샘프톤(Southampton)에 있는 다섯째 오빠 프랑크의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다지 마음이 놓이는 환경은 아니었던 듯하다.

 

1809년에는 상류계급 가정에서 양자로 자란 지주인 셋째오빠 제임스의 후의로 그의 저택을 제공 받게 되었다. 그런 결과 오스틴은 조용한 시골 튜톤에서 집필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완성한 것이 수산(Susan)(출판할 때 노상가 아비( Northanger Abbey)라고 수정되었다.)이라는 작품으로 넷째오빠 헨리의 조력으로 런던에 있는 출판사 그로스비사와 계약하기에 이르렀으나 오스틴 존명 중에는 출판되지 못하였다.

 

1811 써두었던 원고에 가필한 분별과 다감(Sense and Sensibility이 이가돈사에서 출판되어 마침내 작가로서 데뷔하였다. 그러나 성직을 맡고 있는 가족의 배려로 <바이 아 레디(By a Lady>(어느 귀부인 저)라고 익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1813년에는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이 출판되고 대히트가 되기 전에 완전히 팔렸다. 그 연내에 다시 출판되었다. 이듬해에 출판된 맨스필드 파크Mansfield Park)』도 반년 만에 완전히 팔려서 오스틴은 착실하게 인기작가로서 지위를 굳혔다.

 

당시 섭정태자였다가 후의 조지4세도 오스틴의 작품의 대 팬이었고 저택으로 초대되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극히 집안에서만 알고 있던 오스틴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고 이 때에 출판예정이었던 엠마Emma)』는 조지4세에게 헌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