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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을 위대한 여성

고백시의 개척자 <실비아 플래스>(2/5)

간천(澗泉) naganchun 2023. 9. 19. 03:19

고백시의 개척자 <실비아 플래스>(2/5)

 

 

2. 작가의 생애

 

초기 생애

실비아 플래스는 19321027일 미국 보스턴 대학교의 생물학 교수이자 땅벌 연구가였던 독일 그나보프(Grabow) 출신의 아버지 오토 플래스(Otto Plath)와 오스트리아계 미국인인 어머니 아우렐리아 쇼보 플래스(Aurelia Schober Plath)의 딸로 태어났다. 1934년 그녀의 동생 워렌 플래스(Warren Plath)가 태어난 뒤 메사추세츠 윈스럽(Winthrop)에서 자랐다.

 

실비아 플래스는 8살 때 처음 Boston Herald에 시를 발표하였고, The Scholastic Art & Writing Awards에서 상을 받으면서 뛰어난 문학·예술적 재능으로 주목 받았다. 1940년에 아버지가 당뇨와 합병증으로 사망했으며, 1942년 보스턴 서쪽 교외의 메사추세츠 웰즐리(Wellesley)로 이사했다. 당시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에게 커다란 심리적 충격을 주었고, 이는 그녀의 삶과 예술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플래스는 아버지가 죽은 이듬해인 9살 때 첫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대학생활

1950년 장학금을 받으며 스미스 여자대학(Smith College)에 입학한 실비아 플래스는 이미 400편이 넘는 시를 썼으며, 19528월 마드모아젤(Madmoiselle) 공모전에 단편 민튼 씨네 집에서 보낸 일요일이 입상하면서 마드모아젤의 인턴기자로 활동하였다. 이후 그녀는 하버드 여름학교의 프랭크 오코너 창작수업을 신청했으나 입교를 거절당하고, 학위 논문에서의 부진은 물론 학업에서의 연이은 실패가 계속된다. 이는 그녀를 극단적인 초조함과 불안으로 몰고 가 결국 19538월 대학 3학년 때 지하실에 들어가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이틀 뒤 의식을 회복한 직후에 가족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때의 경험은 1963년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 The Bell Jar(종 항아리)에 묘사되어 있다. 가까스로 살아난 후, 끊임없는 노력으로 다음해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게 된 후 1955년부터 2년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뉴넘 칼리지(Newnham College)에서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