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시의 개척자 <실비아 플래스>(4/5)
4, 플래스의 죽음
1963년 1월에 플래스는 늘 치료를 받는 의사 존 호다(Dr John Horder) 에게 상담했다.
호다는 그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이좋은 친구이기도 하였다. 플래스는 그에게 우울상태가 6, 7개월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호다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기간에도 거의 시간을 안정시키지 못한 채로 끊이지 않는 초조감, 죽고 싶은 생각,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특징을 수반한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 또 플래스는 불면의 고민, 밤에 수면 유도제를 썼으나 새벽에 깨는 날이 종종 있었다. 또 체중도 약 7.4Kg 감소하였으나 그녀는 외견을 도로 감추어서 우울증 특유의 죄악감이나 무력감을 말하지 않았다.
호다는 플래스가 자살하는 수일 전에 항우울약으로서 모노아민산화효소저해약을 처방하고 있다.
또 그녀가 어린 2명의 자녀와 고립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그녀의 집을 매일 방문하고 있었다. 그 위에 입원에 동의하게 하려고 상당히 노력하였으나 설득에 실패했다.
그런 때문에 입주 간호사를 수배하고 있었다. 호다에 의하여 처방된 약은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설이 있다.
1963년 2월 11일 아침 아이를 도와주는 간호사가 플래스의 자택에 오전 9시에 도착하도록 되어 있었다. 간호사는 일찍이 도착했는데 자택 안이 들어가지 못한 때문에 작업원의 손을 빌어서 안에 들어간 즉 플래스는 오븐 안에 머리를 들여 넣고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두 아이가 자고 있는 방과 플래스의 유체가 있던 방과의 사이의 문은 젖은 수건과 천으로 막아 있었다. 플래스가 오븐 안에 머리를 박아서 가스의 마개를 튼 것은 조조의 4시 30분경이라고 추정되었다. 사망 당시 30세였다.
5, 친자관계
플래스는 부친 옷토의 죽음은 일종의 자살이라고 생각하여 부친에게서 버려졌다고 느끼고 격한 쇼크를 받았다. 많은 비평가가 그녀의 작품과 인생의 축으로 하여 간직하고 있었다.
한편 플래스와 모친은 이상할 정도로 친밀하여 모친 오레리아는 딸을 통하여 살고 플래스는 모친을 생각하여 서로 응하여 모친과 자신의 의지의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 <어디서 모친이 끝나고, 어디서부터 자신이 시작되는지를 모른다.>고 하는 공생관계에 빠졌다.
이 모녀의 공생관계야말로 플래스의 자기상실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도 있다.
https://ja.wikipedia.org/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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