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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전기/제갈공명 이야기

제12화 제2차 북벌(2)

간천(澗泉) naganchun 2020. 7. 3. 09:01

제12화 제2차 북벌(2)

 

2, 제2차 북벌

 

공명이 제2차 북벌을 발하는 결의를 한 배경에는 강남 전장에서 오나라의 우세함이 있었다. 손권(孫權)은 주방(周魴)이라는 부하에게 <투항할 터이니 마중 와주시오.>라고 하는 거짓 편지를 써서 위나라의 방면군사령 조휴(曺休)를 영내로 유인하여 이를 포위 섬멸한 것이다. 목숨을 간신히 건진 조휴(曹休)는 이 패전을 부끄럽게 여겨 병사하였다.

이 동맹군의 승리는 공명에게 크게 용기를 붙여주었다. 어쩌면 위나라는 오나라의 국경을 굳게 하기 위하여 섬서성(陝西省)의 병력을 빼어서 허술하게 할는지 모른다. 그래서 다시 원정에 나설 기분이 났다고 한다.

이번의 공명은 저번의 실패를 반성하여 전투서열을 대폭 개선하였다. 쓸 데 없는 파벌 인사나 엘리트 지향을 멈추고 입신출세하는 위연(魏延)과 왕평(王平)을 군의 중심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번은 위나라도 공명의 침입을 경계하여 충분한 방위 체제를 갖추어 있었다.

() 나라의 대장군 조진(曹真)은 공명(孔明)이 정공법으로 진창도(陳倉道)를 통과할 것으로 예측하여 그 출구가 되는 진창성(陳倉城)을 확장강화하고 거기에 명장 학소(郝昭)를 넣었다.

공명의 원정군은 갑자기 이 굳은 성에 걸린 것이다. 공명은 아무튼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않아서 이 성을 치는 데에 오래 끌고 말았다.

그러나 낙양(洛陽)에서는 위나라 황제 조예(曹叡)가 전황을 걱정하여 대규모의 원군을 파견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때 장합(張郃) 장군이 말하였다. <공명은 아마도 거의 식료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10일쯤이면 단념하여 철퇴할 것이다. 원군을 보낼 것까지는 필요 없다.>

10일이란 지나친 말이지만 공명은 20일분의 식료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의 원정군은 결국 진창성(陳倉城)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슬슬 총퇴각하였다. 낙양(洛陽)의 위나라 황제는 지원군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 촉군의 유일한 전과는 추격해온 왕쌍(王双) 장군을 복병으로 잡은 것뿐이다. 그리하여 제2차 북벌은 대실패로 끝났다.

사실(史實)에는 왕쌍(王双)은 한 부대장이었던 것 같고 진창성은 최후까지 함락하지 못한 듯하다. 단지 촉한(蜀漢) 국내에서는 왕쌍(王双)을 눕힌 것을 과대 광고하여 실패를 호도하고 국민을 납득시키는 일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거듭되는 실패로 공명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어떻든 만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제3차 북벌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