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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전기/제갈공명 이야기

제13화 제3차 북벌과 외교전(1) 

간천(澗泉) naganchun 2020. 7. 4. 15:45

제13화 제3차 북벌과 외교전(1)

 

1, 제3차 북벌과 위나라의 맹반격

 

3차 북벌은 공명의 명예 만회를 위한 싸움이었다.

공명이 노린 것은 한중(漢中) 서방에 인접하는 무도군(武都郡)과 음평군(陰平郡)이다. 이것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위나라의 옹주(雍州)에 속해 있는데 주민의 90%가 이민족이라고 하는 정치적으로 중요성이 매우 낮은 지역이다. 당연히 수비병도 거의 없다. 공명은 이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나도 승리하는 일이 있다.>고 국민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공명은 고생을 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듯 장군 진식(陳式)(『정사(正史)의 작자 진수(陳壽)의 아버지)의 군세만을 이 2()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위나라의 옹주(雍州) 장관 곽회(郭淮)는 대군을 이끌고 북방에서 참여하여 영격(迎擊) 체제에 들어간 것이다.

놀란 공명은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진식(陳式)을 구원하였다. 협공당하는 것을 두려워한 곽회(郭淮)는 서둘러서 군을 철퇴한다.

이리하여 무도(武都)와 음평(陰平)은 촉한(蜀漢)의 손안에 들어왔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도 거의 의미가 없지만 공명은 처음으로 위나라의 영토를 빼앗을 수 있었다.

이 성과를 기뻐하여 황제 유선(劉禅)은 공명을 원 자리인 승상(丞相)으로 복직시켰다.

그런데 이 모습에 위나라는 초조해졌다. 당시 위나라도 영토를 잃어서 면목이 없어했다. 그래서 대규모의 원정군을 파견하여 촉한(蜀漢)을 한꺼번에 멸망시키려고 획책했다.

대장군 조진(曹真)이 이끄는 관중방면군(關中方面軍)3개의 루트에서 <()의 잔도(棧道)>를 남쪽으로 돌파하고 사마의(司馬懿)의 형주방면군(荊州方面軍)은 상용(上庸)에서 한수(漢水)를 거슬러 올라가서 동쪽에서 한중(漢中)으로 돌입한다는 대규모 작전이었다. 소위 한중을 뭇매질하려는 것이었다.

공명은 명장 왕평(王平)에게 요지의 수비를 맡겨 한중(漢中) 분지에 몇 개의 성채를 구축하여 이 거대한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일찍이 유비(劉備)가 조조(曹操)를 격파한 그 일전을 재현하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천후(天候)가 위나라의 원정군을 무력화시키고 말았다. 마침 장마로 잔도가 붕괴하고 한수도 물이 불어서 선단의 역행을 방해하였다. 이 정세를 앞에 두고 내로라하는 조진(曹真)과 사마의(司馬懿)도 마침내 단념하여 하는 수 없이 철군하였다. 혹시 이 장마가 없었다면 촉군(蜀軍)은 어떻게 되었을까? 압도적 물량의 위나라 군대를 앞에 두고 언제까지나 지탱할 수 있었을는지 의문이다. 공명은 목숨을 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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