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시대배경
1, 제갈공명이 활동한 시대배경
서기전 202년 진(秦) 나라에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세력 가운데 두드러졌던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해하(垓下)에서 결전을 벌여 유방이 승리하여 장안(長安)(현재의 서안/西安)에 도읍하고 한제국(漢帝國)을 창건하였다. 유방은 황제로 등극하고 주나라의 봉건제와 진나라의 군현제를 혼합한 군국제를 정착시켰다.
그 후 기원 2세기 후반까지 400년의 장수를 누린 한제국(漢帝國)은 쇠퇴기에 들어서 군웅이 할거하는 정세를 맞게 되었었다. 그 후 400년에 걸친 남북조(南北朝)의 대난세의 시작이었다. 이 난세를 마감한 시대가 삼국시대였다. 대개 기원 189년 <황건적의 난>에서부터 기원 280년 진(晉)나라의 통일까지 약 100년간이 그 무대이다.
한나라는 전한과 후한으로 나뉘었다. 낙양(洛陽)을 수도로 한 후한제국은 그 창시자인 광무제(光武帝)(유수/劉秀)를 필두로 하여 호족연합체로 성립하였다. 그런 때문에 그 치세가 난숙하여 말기증상을 나타내자 당연히 호족들이 권력 다툼이 생겼다. 치열한 호족들의 권력 다툼 끝에 패권을 잡은 것이 삼국의 군주인 세 사람 곧 조조(曹操(위/魏), 유비(劉備(촉한/蜀漢), 손권(孫權 오/吳)이다.
위(魏)나라의 조조(曹操)는 중앙 정계에서 활동하던 사대부 출신이다. 그는 중원(황하유역)의 우국지사 사대부들을 집결시켜 한제국의 구조개혁을 목표로 분투하였다. 그는 한제국의 헌제(獻帝)를 자기 진영에 끌어들여서 그 권위를 충분히 이용하여 정적들을 타도하였다. 그래서 최후의 정적이었던 화북(華北)의 원(袁) 일족을 207년에 멸망시키고 중원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중원의 패권을 잡은 조조는 남방으로 목표를 돌려 중국완전통일을 이루겠다는 야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야망은 남방의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에 의하여 저지되었다.
오(吳)나라의 손권(孫權)은 강남지방의 중소호족이었다. 그는 이 지방의 <호족연합체>를 구축하여 북방의 대 세력에 대치하였다.
촉한(蜀漢)의 유비는 화북 협객 출신으로 용병대장으로서 각지를 전전하며 고투를 쌓은 후 사천(四川)에 들어서 조조와 손권에 맞먹는 대세력을 구축하였다. 제갈공명은 이 유비의 막료로서 유비를 성공시킨 사대부이다.
2, 두 개의 <삼국지>
삼국지의 하나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16세기 명(明)나라 때의 나관중(羅貫中)이 쓴 대중 오락소설로서 역사서는 아니다.
또 하나는 정사인 <정사삼국지(正史三國志)>이다.
이는 삼국을 통일한 3세기에 성립된 국정 역사서이다. 그 작자는 촉한의 관료였던 진수(陳壽)로서 그는 망국 출신자로서 그 시점이 비교적 객관적이고 성실한 기술 자세로 서술된 역사서이다.
3. 인물의 이름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제갈(諸葛)은 성이고 이름은 량(亮)이며 공명(孔明)은 자이다. 원래 중국에서는 이름은 남에게 내놓지 않고 자를 부르는 관습이 있어서 제갈량이라고 부르는 일은 없었고 만일 그런 이름을 직접 불렀다면 이는 상대를 미워하는 사람이거나 적수였을 것이다. 반드시 <제갈공명>이라 부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어버이는 자신의 이름자를 절대로 자식에게 주지 않고 자식은 결코 어버이의 이름자를 그대로 받아쓰지 않는다. 그래서 유비현덕(劉備玄德)의 아들은 유선공사(劉禪公嗣)이고 제갈공명의 아들은 제갈첨사원(諸葛瞻思遠)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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