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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의 고전/맹자와 맹자 이야기

2.맹자는 누구인가

간천(澗泉) naganchun 2009. 2. 8. 16:52

Ⅱ, 맹자는 누구인가

 


1) 맹자시대의 중국은 어떠했나.


  맹자가 활동할 당시는 중국 역사상 <전국시대>(BC403~BC221)라고 일컬어지는 전란의 시대였다. 왕조라고는 주왕조가 존속되기는 하였지만 이미 천하를 통일할 권위를 잃고 실제로는 낙양(洛陽) 부근을 겨우 차지하는 소제후국으로 전락되고 있었다. 제후가 바뀌어 나타났다. 본래 제후는 주(周)왕조를 지지하여 지탱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본래의 임무를 져버리고 제각기 중국의 통일을 목표로 야망의 이빨을 갈고 있었다.

  북방에 연(燕), 서방의 진(秦), 남방의 초(楚)나라는 옛날부터의 영토를 확장하여 권위를 발휘했다. 황하의 중류 곧 중원에 있던 진(晉)은 가신에 의하여 한(韓), 위(魏), 조(趙)의 삼국으로 분열되었다. 동방의 제(齊)도 다시 가신인 전(田)에 의하여 정권이 바뀌었다. 그래서 연, 진, 초의 삼국에다 한, 위, 조, 제의 신생국 네 나라, 모두 칠 개국이 <전국 칠웅>이 되어서 서로 대립 항쟁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밖에 그 이전부터 있었던 위(衛), 노(魯), 송(宋), 월(越), 등(滕) 같은 작은 나라도 있었다. 그러나 전국 칠웅인 나라에 하나씩 합병되었다.

  상대국을 정복하지 않으면 내가 정복당할 터이니 7개 강국은 한 결 같이 부국강병에 몰두하였다. 어떻게 하면 영토를 확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국민을 증가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외교를 해서 자국의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을까 하고 부심했고, 작은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면 현 상태라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종래의 시회질서가 무력화하고 신분질서가 문란해져서 오직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실력만이 패권을 잡게 되었다. 각 제후가 자신이 패권을 잡기 위하여 인재를 흡수해야 하였는데 이들 인재를 제자(諸子)라 한다. 맹자도 제자의 일인이다.

  위(魏=후에 양나라가 됨)나라 혜왕(惠王)의 초청에 응한 것인지 아니면 맹자가 유세할 나라로서 위나라를 택한 것인지 저간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어떻든 양나라 혜왕 15년(BC320), 맹자가 50세가 되는 해에 위나라의 서울인 대량으로 가서 양나라 혜왕(惠王)을 알현하게 된 것이다.

*주-춘추, 전국시대란?

 주(周)나라가 견융의 침입으로 서울인 호경(鎬京)이 함락되어 도읍을 동쪽인 낙읍(洛邑)으로 옮긴 BC770년부터 대국인 진(晉)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나라 삼국으로 분열한 BC403년까지를 공자가 편찬했다는 <춘추(春秋)>라는 이름을 따서 춘추시대라 하고, BC403년부터 진시황이 통일을 이룬 BC221년 까지를 <전국책(戰國策)>이라는 책 이름을 따서 전국시대라 한다.

 

2)  맹자는 누구인가


   맹자(孟子, BC372 ?~BC289 ?)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유교 사상가로서 성은 맹(孟)이고 이름은 가(軻)이며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주(周)나라 열왕(列王) 4년 (BC372), 추(鄒)(산동성추현/山東省鄒縣=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에 가깝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공자 사후 108년 후의 일이다. 그런데 소년 시절부터 50세가 되어서 위(魏)나라에 나타나기까지의 맹자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다. 단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에 입문하여 학업을 닦았다고 하는 것 뿐, 그 밖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자사를 존경하고 다시 그 스승인 증자(曾子)에 경도되어 자사(子思)에게서 증자(曾子)에게로 학통을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공자에 이어져“인류가 발생하여 공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없다.”고 할 만큼 공자를 존경하고 숭배하였다.“나의 소원은 공자를 배우는 것뿐이다.”고 맹세하고 있었던 듯하다.

   공자의 가르침인 유교의 정통을 이어가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견지하고 있었던 그가 50세가 되는 해에 고향인 추(鄒)를 떠나 위(魏)나라를 비롯하여 제(齊)나라, 송(宋)나라, 등(滕)나라, 노(魯)나라 등을 유세하며 왕도정치를 주장하였으나 어느 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노년에 고향인 추(鄒)나라에 돌아와서 제자의 교육과 편찬에 종사하다가 83세(BC289)에 생을 마쳤다.

  맹자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각별히 신경을 썼다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1)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맹자의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하고 처음에는 묘지 근처에서 살았다. 맹자가 노는 것을 보니 언제나 무덤을 파는 흉내만 하고 있었다. 이러고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시장 근처로 이사를 하였다. 이번에는 장사꾼 흉내만 하면서 놀았다. 이것도 도움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여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였다. 그러자 어린 맹자는 제사도구를 벌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흉내를 하게 되었다.“이런 곳이야말로 내 아들을 교육시킬 좋은 환경이다.”고 생각하여 기뻐하였다.


(2) 맹모단기지계(孟母斷機之戒)

  자란 맹자는 어머니의 슬하를 떠나서 유학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무슨 재미없는 일이 생겼는지 맹자는 졸업도 하기 전에 학교를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어머니는 베틀을 짜고 있었는데 그 때 돌아온 맹자에게 물었다.

“공부는 잘하고 있겠지. 학업은 어느 정도 나아갔느냐?”

“아니 그저 그렇습니다.”

아들의 얼굴빛을 보고서 어머니는 눈치를 챘다. 어머니는 작은 칼을 들고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는 아들 앞에서 베틀의 날을 잘랐다.

“너는 학업을 그만 둔 것이지. 모처럼 학업에 뜻을 두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중도에서 그만 두려는 것은 내가 이렇게 베틀의 날을 자르는 것과 같다.”

엄하게 꾸짖는 어머니를 보고 맹자는 마음속에서 생각이 달라져서 학업에 열심을 다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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