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齊)나라에서
1) 직하(稷下)의 선비 대우
약 3년 동안 위(魏)나라에 체재하면서 왕도정치를 설명하던 맹자는 양혜왕이 죽고 그 아들 양왕에게는 실망하여 위나라를 떠나 제(齊)나라로 갔다. BC318년의 일로 추정된다.
당시 제나라는 일세의 영웅 위왕(威王)이 죽고 그 아들 선왕(宣王)이 막 즉위한 때이다. 선왕도 아버지의 피를 받아서 결코 범상한 군주는 아니었다. 위왕과 선왕은 말을 정중히 하고 손님을 후대하여 천하의 학식이 있는 선비를 초빙하였다. 이 직하에 모인 명사들은 황로(黃老)의 학을 배운 신도(愼到), 전병(田騈), 접자(接子), 환연(環淵), 순우곤(淳于髡) 등과 음양가인 추연(騶衍), 추석(騶奭), 종횡가인 소진(蘇秦) 등 70명이 넘는 선비가 제나라에 모였다고 한다. 물론 맹자도 <직하의 선비> 대우를 받았다. 두 왕은 국도 임치(臨淄=山東省臨淄縣)의 남문 쪽에 훌륭한 저택을 짓고 그들 선비에게 대부의 직위를 주고 거기서 살게 하였다. 결국 선비들은 실제 국정에 참가하는 일 없이 대부의 반열에서 대단한 우대를 받았다. 따라서 그 후대에 감동하여 그들은 각기 제나라를 위하여 재능을 다하였을 것임은 쉽게 상상이 된다. 그래서인지 이들 두 왕의 치세 50년간에 제나라는 가장 번성한 시대였다. 그런데 임치의 남문은 치수(淄水)를 사이에 두고 직산(稷山)에 마주하고 있었으므로 직문(稷門)이라고 통칭되었다. 거기서 이들 선비를 이 직문 근처에 사는 학자라 하여 후세에 <직하(稷下)의 선비(士)>라 칭하고 그 학설을 통칭하여 <직하의 학>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2) 선왕(宣王)과의 초대면
위(魏)나라에서 제나라로 간 맹자는 당연히 직하의 저택을 받고 즉시 대부의 반열에 들었다. 선왕이 막 즉위한 때인 만큼 그 환영은 한층 화려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직하의 선비>의 일원이 된 맹자는 선왕을 알현하여 신선한 변론을 전개하였다.
“제나라의 환공(桓公)과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에 대하여 말해 주시겠어요.”
이것이 초대면의 인사를 마치자마자 선왕이 맹자에게 한 질문이다.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은 말할 것도 없이 다 춘추전국시대의 패자였다. 무력을 가지고 제후의 패자가 된 사람이다. 그 패업에 대하여 선왕은 듣고 싶었던 것이다. 곧 선왕은 자신도 언젠가는 패자가 되어서 제후에게 호령을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강대한 제나라의 군주로서 해야 할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패자는 위대하다. 제후에게 호령하여 맹약을 맺고 천하의 질서를 유지한 공적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무력을 가지고 제패하는 것인 한 아무래도 무리가 수반되고 천하를 기쁘게 복종시킬 수는 없었다. 덕화에 의하여 자연히 천하를 통일하여 저절로 되는 평화를 가져오려는 유가의 눈으로 볼 때 당연히 이상으로 우러러볼 존재는 아니다. 유가의 이상으로 하는 정치의 형태는 덕을 근저로 하는 왕도정치이고 덕을 가지고 군림하는 왕자(王者)라야 우러러볼만 한 것이다.
“시조인 공자는 물론이지만 그 학통을 이은 유가로서 환공(桓公)이나 문공(文公)에 대하여 운운하는 자는 없습니다. 따라서 나도 들어서 아는 바가 없으므로 할 말이 없습니다. 어떻든 정치에 대한 의견을 말하라는 뜻이라면 왕도정치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양혜왕장구상7)
3)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곧 왕자의 소질
“하하. 그래요. 그러면 들을 터이니 도대체 어떤 덕을 갖추고 있으면 왕자가 될 수 있는 거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서 민생의 안정에 마음을 쓰는 군주라면 누구든지 왕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출현한다면 그 사람이 왕자가 되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 과인과 같은 사람도 왕자가 될 수 있는 소질이 있는 것일까요?”
“있습니다.”
딱 부러지게 맹자는 단언했다. 그 명쾌한 논조에 선왕은 모르는 새에 끌리어 들었다.
“아니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오. 그런데 선생은 어떤 이유로 과인에게 그 소질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오.”
“이 곳에 와서 나에게는 이미 몇 사람의 친구가 생겼습니다. 임금님의 측근으로서 호흘(胡齕)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그 호흘이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일찍이 임금님이 이궁의 한 방에 계실 때에 그 방 밖을 소를 끌고 가는 자가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그것을 보시고“저 소는 어디로 끌려가는 것인가?”하고 물으셨습니다. “나라에서 새로 주조한 종이 완성되어서 준공식을 거행하게 되는데 그때 그 종에 희생의 피를 쏟는 의식이 거행됩니다. 저 소는 그 희생으로 식장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하고 말하자“불쌍하게 그 소를 끌고 가는 것을 멈추게 하시오. 아무 죄도 없는데 죽임을 당하러 가는 그 무서워서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볼 수 없소.”하는 영이었습니다. 그래서 측근이“그러면 종에 희생의 피를 쏟는 의식을 폐지하는 것입니까?”하고 묻자“의식은 신성한 행사이니 폐지할 수는 없소. 저 불쌍한 소 대신에 양을 쓰시오.”하고 임금님은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오오. 그리 듣고 보니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소.”
“그렇습니까. 임금님이 소를 불쌍하다고 하여 동정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천하의 왕자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소질입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일반 백성은 임금님이 인색해서 소를 죽여야 할 것을 아까워하고 있다고 한 것 같으나, 나는 이 말을 들은 시초부터 임금님이 소를 불쌍히 여겨 동정한 나머지 그것을 죽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양혜왕장구상7)
“오. 그래요. 백성들이 그 일로 과인을 인색하다 한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소. 제나라는 작은 나라이지만 일국의 군주인 과인이 어찌하여 소 한 마리를 아까워하겠소. 그 소가 죽음으로 가는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알고 무서워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양으로 바꾸라고 명한 것이었소,”
“임금님 백성들이 임금님을 인색하다고 판단한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양이 큰 소 대신이 된 것입니다. 임금님의 깊은 마음을 알지 못하고 판단한다면 인색하니까 큰 소를 아까워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금님이 죄도 없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불쌍하다고 동정하는 것이라면 소나 양이나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러한데 어찌하여 소한테만 동정을 나타내고 양한테는 동정을 나타내지 않은 것입니까?”
“아니. 과연 그렇군요. 이것은 이상하오. 그런데 어떤 마음으로 그랬을까요.”
선왕은 생각 없이 웃었다. 그리고 웃고 나서 문득 심각하게 회상하는 것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런 변화를 맹자는 미소를 지으며 따뜻이 지켜보고 있었다.
“음. 아니야. 아무래도 모르겠다. 과인이 물건을 아껴서 소를 양으로 바꾼 것이 아님은 확실한데, 양한테도 동정을 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과연 이것은 백성들이 과인이 인색하기 때문에 소를 양으로 바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 해도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마음 상할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술입니다. 임금님은 슬퍼하고 있는 소는 보았지만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한테만 동정하게 된 것입니다. 인덕을 갖춘 군자란 짐승을 대함에 있어서 살아있는 모습으로 보고서는 차마 그 죽는 것은 볼 수 없습니다. 우는 소리를 듣고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 하는 것입니다.”(양혜왕장구상7)
선왕의 얼굴에 희색이 돌고 말소리도 힘이 있었다.
4)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아아. <남의 무엇을 생각하면 나는 그것을 미루어 안다.(소아(小雅)-교언(巧言)> 라는 구절이 시경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것은 선생과 같은 인물을 읊은 것이오. 과인은 소를 양으로 바꾸는 행위를 하였소. 뒤에 이 행위의 이유를 찾아도 내 마음으로는 깨달을 수가 없었소. 그런데 선생께서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맞추어 말해주니 내 마음은 이제야 생각이 미치는 바를 보고 감동하오. 감사하오. 그런데 과인의 그 소에 대한 마음이 왕자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소질이라 함은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그에 대하여 설명하기 전에 한 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겠습니다. <나는 백균(百鈞=1균은 30근. 백균은 매우 무거운 것을 말함)이나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는데, 깃털 하나는 들지 못합니다. 그리고 시력은 매우 좋아서 추호(秋毫=가을철에 털갈이를 한 털의 끝으로 매우 작음을 말함)를 분간하여 볼 수는 있으나 수레에 실은 장작은 볼 수 없습니다.>라고 임금님께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임금님은 그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아니오. 그 말은 믿을 수 없소.”
“자 바로 그것입니다.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힘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레에 실린 장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면 되는 일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들은 바로는 임금님은 슬프게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동정했습니다. 곧 임금님의 은애의 정-인덕은 짐승에게까지 미친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님의 나라인 제나라의 실정을 보면 일반 백성의 생활은 반드시 안정되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짐승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임금님의 은애의 정이 백성에게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짐승에게는 미치는 것이 백성에게 미치지 않을 이가 없습니다. 곧 임금님이 백성에게 내려지지 않은 것은 하지 않을 뿐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양혜왕장구상7)
“조금 기다려주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예를 들면 저 태산(泰山=산동성의 명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북해(北海=발해만)를 뛰어 넘으려고 계획하여 <나로서는 할 수 없다.>고 남에게 말했다고 합시다. 이것은 참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웃어른을 위하여 조금 손을 뻗쳐 나뭇가지를 꺾어 드리려고 계획하고 <나는 할 수 없다.>고 남에게 말했다고 합시다. 이것은 하지 않은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곧 능력과 의지의 문제입니다. 능력 이하의 일을 실현하지 않은 것은 <할 수 없는>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것입니다. 능력 이상의 일을 실현하지 않은 것은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것입니다. 짐승에게까지 미치게 할 수 있는 은애의 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백성에게 미치게 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입니다. 곧 임금님이 인덕을 갖춘 참 왕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태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북해를 뛰어 넘는 것 같은 것이 아니고 나뭇가지를 꺾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양혜왕장구상7)
5)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백성에게로 넓혀야
소질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능력은 있지 않은가. 어찌하여 그것을 펼치려고 하지 않은 것인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 않는 것이다. 맹자는 착실히 선왕의 마음을 붙잡고 왕도정치에로 유도하여 마침내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간다.
“내 집안의 부형을 연장자로서 존경하고 그 경건한 마음을 차차 다른 집안으로 미치게 하며, 내 집안의 자제를 귀여워하여 자애롭게 대하며 그 자애의 마음을 차차 다른 집안 자제에게 미치게 하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에 물건을 올려놓는 것처럼 쉬운 일입니다.
시경 대아(大雅) 사제편(思齊篇)에
<아내에게 본보기가 되면 형제에게 미쳐 집과 나라를 잘 다스린다.>
라고 있는 것은 노인과 자식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남에게까지 미루어 넓히라는 뜻입니다. 가까운 데서 먼 데로 미치게 하고 쉬운 데에서 어려운 데로 미치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정의 자연스러움이고 인륜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속에 있는 은애의 정을 순서 바르게 미치게 하면 사해를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은애의 정을 막고 있으면 처자마저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옛날의 성현이 지금 사람보다 위대한 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은애의 정을 할 수 있는 대로 가까운 데에서 먼 데로 미치게 한 점입니다. 임금님 짐승에게도 미치게 할 수 있는 은애의 정을 백성에게 미치게 하지 않은 것은 본말이 전도됨이 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울질 한 후에야 무게를 알 수 있고 자로 재어야 물건의 장단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오가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아니 착각을 일으켜서 가치 판단을 그르치기 쉬운 점에서는 특히 심한 것이 있습니다. 마음의 척도를 단단히 하여주십시오.”(양혜왕장구상7)
선왕에게는 슬프고 무서워하는 소를 불쌍히 여겨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왕도정치로 이어지는 귀중한 것이다. 그런데 선왕의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백성에게로 미치지 못한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선왕에게는 호전적인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 의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나라의 부를 증진시키고 권위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하여 백성들은 종종 전쟁으로 끌려 나가야 하고 괴로워할 뿐이다. 본말이 전도된 것을 꿰뚫고 있는 맹자의 요설은 다음으로는 호전적인 마음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6) 연목구어(緣木求魚)
“듣건대 임금님께서는 매우 전쟁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원래 군비를 확장하여 백성에게 부담을 가중시키고 신하를 위험으로 내몰고 제후들로부터 원망을 사는 일을 하고도 마음이 유쾌하십니까?”
“아니오. 과인은 별로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요. 백성과 신하를 괴롭히고 제후들의 원망을 사게 하여 유쾌할 까닭이 있겠소. 단지 과인에게는 몰래 감추고 있는 대망이 있으므로 그 대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는 수 없이 전쟁을 수단으로 하고 있는 것뿐이오.”
“임금님 그 대망을 말해주시겠습니까.”
선왕은 웃으며 말하지 않았다. 숨기려는 마음이다. 맹자는 체면을 무릅쓰고 말하기 시작한다.
“임금님이 품고 있는 대망이란 일상생활을 보다 풍부하게 하고 싶은 것입니까. 예를 들면 먹을 것이 부족하고 입을 것이 부족하니까 그것을 더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입니까. 눈을 즐겁게 하는 미인이나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을 보다 풍부하게 하고 싶은 것입니까. 혹은 곁에서 보살펴주는 신하를 증원시키고 싶은 것입니까. 보아하니 그것들은 모두 충분하고 새삼스럽게 바랄 것은 없을 듯합니다.”
“아니오. 그런 것은 아니요. 그런 자그만 일들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은 아니요.”
“그러시다면 임금님의 대망이 무엇인지 분명합니다. 영토를 확장하여 점점 위세를 떨치고 진(秦)나라나 초(楚)나라 같은 큰 나라라도 조공을 하고 중국 세계에 군림하여 사방의 오랑캐들을 달래려 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천하통일을 이루려 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바로 그렇소.”
“임금님 전쟁 같은 수단으로 그런 대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바닷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그렇게까지 바보스러운 일인가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나무에 올라가서 고기를 잡으려 할 경우에는 당연히 고기를 잡을 수 없을 뿐 그 이상의 재해를 입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전쟁으로 천하를 통일하려고 할 경우에는 온 힘을 다 기울이고 모든 것을 소모시킨 데다가 후일에는 반드시 재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하오.”
“만일 작은 추(鄒)나라와 큰 초(楚)나라가 전쟁을 한다면 임금님은 어느 쪽이 이기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초나라가 이길 것이오.”
“임금님 생각과 같습니다. 저 약소한 추나라가 강대한 초나라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곧 작은 것은 큰 것을 적대시 할 수 없고, 적은 것은 많은 것을 적대시 할 수 없으며,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적대시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중국 세계를 개관한다면 천리 사방의 광대한 영토를 가진 강국이 아홉 나라가 있습니다. 제나라는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한 나라가 나머지 여덟 나라를 정복하려고 하는 것은 추나라가 초나라를 적대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천하통일은 꿈속의 꿈입니다. 단순히 패할 뿐만 아니라 멸망할 것은 분명 일입니다.”(양혜왕장구상7)
“음.”
“임금님이 무력을 과대평가하고 그에 의하여 대망을 이루려 하시는 한 파멸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것 어진 정치 곧 왕도정치에 마음의 눈을 돌려주십시오.”
7) 어진 정치를 베풀어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두 사람이 초대면의 인사를 나눈 것은 아침이었는데 이미 해는 중천에 걸려있다. 선왕의 얼굴에는 조금 피로의 기색이 떠올랐으나 맹자는 점점 기운이 솟고 마침 열린 창으로는 미풍이 불어와서 날리는 머리카락에는 희끗희끗 흰 머리가 많이 섞여 보인다. 이제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 하려는 것은 나무에 올라서 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한 맹자는 유유하게 결론을 이끌어낸다.
“시정방침을 일신하여 크게 어진 정치를 베푸는 데에 힘쓰십시오. 그 결과 벼슬을 하고자 하는 천하의 선비들이 벼슬을 할 것이면 임금님의 조정에 벼슬을 하고자 희망하고, 농민은 임금님의 영토 안에서 농사를 짓고자 하고, 상인은 임금님의 영토 안에서 상점을 열고자 하고, 여행자는 임금님의 영토 안에 들어와서야 안심하고 자기 나라의 정치에 각각 불평불만이 있는 선비들은 그 불평불만을 모두 임금님에게 호소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처럼 관리도 농민도 상인도 여행자도 곧 천하의 만민이 모두 임금님의 어진 정치를 그리워하여 마음속으로부터 따라 온다고 생각하십시오. 이렇게 되면 누가 임금님의 번영하심을 방해하겠습니까. 그야말로 어진 정치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양혜왕장수상7)
“음. 선생의 의견은 훌륭하오. 과인은 항상 천하를 통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리석어서 그런 길은 걷지 못하였소. 어떻게 선생은 과인의 뜻을 도와서 잘 선도해주기 바라오. 과인은 불민하기는 하지만 가르침에 따라 노력하겠소.”
8) 백성의 항산과 항심을 길러야
“정치의 요체는 먼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있습니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를 단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근본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일반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개 항산 곧 일정한 재산이나 직업이 없고 따라서 일정한 수입이 없어도 항심 곧 확고히 굳은 마음을 견지할 수 있는 것은 이상을 잃어버리지 않은 소수의 선비들뿐입니다. 일반 백성들은 수입이 없으면 절조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양혜왕장구상7)
가령 백성에게 항산이 없어지면 그로 인하여 항심이 없어집니다. 항심 곧 일정한 절조가 없어지면 백성은 방종무참(放縱無慘)해져서 이 세상에 있는 나쁜 일은 무엇이나 행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몰염치한 상태가 되고 맙니다. 이리하여 죄악을 범하고 질서를 어지럽히기에 이르러 형벌에 처하게 되면 미리 전락할 것을 알고 그물을 치고 백성을 붙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인덕을 갖춘 군주가 위에 있으면서 그물을 치고 백성을 붙잡으려는 짓을 하여도 좋겠습니까. 그러니 명철한 군주가 백성의 재산과 생업을 제정할 경우에는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봉양하고 아래로는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 결함이 없도록 하고 풍년이 이어지면 일생을 포식할 수 있고, 흉년을 당하더라도 굶어 죽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쓸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생활의 단위인 가족이 먼저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그리고 착함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서 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백성은 편안하게 착한 일에 정진하고 훌륭하게 사회 질서를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여러 나라의 정치를 관찰해보면 참으로 한심합니다. 거의 모든 백성은 부모에게 효도와 봉양을 다함은 물론 처자를 만족하게 양육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풍년이 이어져도 평생 고생하고 한 번 흉년이 왔다면 굶주려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고서는 어떻게 살아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만이 백성들의 문제가 되어서 예의를 지킬 여유는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양혜왕장구상7)
선왕은 어느새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눈이 부셔서 똑바로 맹자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사나이는 열심히 민생의 안정만을 빌고 있었다. 자신은 단지 전쟁을 수행하는 수단으로서만이 취급되어온 것이 아닌가.
“임금님 무엇이라고 해도 백성을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허무한 욕망을 다하려고 전쟁을 일으켜 백성의 생활에 중요한 시간을 빼앗는 일은 당치도 않습니다. 그렇게 비열한 짓을 하지 말고 5무밖에 안 되는 작은 집터에라도 뽕나무를 심고 누에치기에 열심을 다하게 한다면 쉰 살이 넘은 노인들이 비단 옷을 입고 추위를 막을 수가 있습니다. 닭이나 돼지 같은 가축을 적절히 사육하면 일흔을 넘긴 노인들이 소화하기 좋은 고기를 먹으면서 여생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백무의 땅을 충분히 경작하게 한다면 한 집안 식구의 식량을 대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백성들이 평안하게 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한 다음에 그들에게 학교 교육을 시키고 인륜의 도를 가르치고 정신생활의 향상을 꾀한다면 사회질서는 훌륭하게 지켜지고 임금님의 인덕은 점점 빛나서 천하의 만민이 스스로 그리워하고 왕도정치의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9) 인간의 성품은 원래 착하다.
선왕과의 초대면에 당당하게 왕도정치를 주장 설명한 맹자는 이미 기울어진 햇볕을 받으며 왕궁을 나왔다. 직하로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제나라에 와서 잘 되었다. 선왕은 꽤나 좋은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 중요한 점은 선왕이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곁에서 받치는 일이다. 그 소를 불쌍하다고 느낀 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정치의 전면에 침투시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정치>-곧 백성의 불행을 간과할 수없는 인정을 실현시키는 일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태어나면서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여름의 일이었다. 몇 년 전이었던가. 고국에서 여행을 하던 때였다. 하루 종일 들판을 걸어서 다리는 몽둥이처럼 되어 있었다. 먼지를 집어쓰고 배는 고프고 게다가 땀을 많이 흘렸으므로 목이 말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저녁이 되어갈 무렵 간신히 어느 마을에 이르러서 우물을 찾은 때는 기뻤다.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들 사이를 지나서 우물에 다가가서 손과 얼굴을 씻고 목을 축인 기분은 무엇이라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아저씨 어디서 왔어요?”
“이 우물물은 참으로 맛있지요.”
“아저씨도 살았다. 그런데 나그네가 여기서 이 물을 마시면 모두 살았다고 해요.”
어린이는 귀여운 것이다. 가까이 다가와서는 여러 가지를 말한다. 피곤하기는 하고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서 쉬고 싶어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금 떨어져서 그늘을 드리운 나무에 기대어 앉았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다.
“위험하다.”
돌연 큰 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떠보니까 우물곁에 한 사람의 사나이가 아이를 안고 서있다. 차림새를 보니 나그네인 듯하다.
“얘들아 저 쪽에서 놀렴. 이 속에 떨어지면 죽는다. 어이 형아 이 아이를 저 쪽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어야지. 위험하다.”
어린 아이를 노는 애들에게 넘겨주고 문득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사나이는 멋쩍은 듯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하고 묻자,
“내가 마침 이곳을 지나는데 저 작은 애가 아장아장 이 우물가로 다가서는 거예요. 금방 빠질 것 같아서 그만 큰 소리를 치며 끌어안았어요.”
하고 말한다.
“당신은 이 지방 사람입니까?”
“아니요. 여행 중이요. 안 됐소. 급한 일이 있어서 이러고서는 안 되는데 미안하오.”
사나이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저 사나이는 우물에 빠질 것 같은 아이를 살려주었다. 그 애가 아는 사람의 자식도 아니다. 알지도 못하는 아이인데 살려줄 때 그 사나이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살려준 것을 은혜로 핑계를 삼아 그 부모와 교제를 하려 했는가. 인명을 구조했다는 명예를 마을 사람들에게 과시하려고 생각한 것일까. 혹은 우물가를 지나면서 빠질 것 같은 아이를 구조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할 수 없이 그랬을까. 아니다. 그 어느 것도 아니다. 당연한 일로 알고 구조한 것으로 구조가 끝나자 그만 재빨리 사라진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 사나이는 어떤 마음으로 그 아이를 구조한 것일까. 분명히 무슨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은 아이를 보자마자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는 그 아이를 구조했던 것이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바로 이 점이다. 무의식중에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측은한 마음-남의 고통을 차마 보고 견딜 수 없는 마음이 태어나면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사나이가 아니고 다른 사람 누구라도 같은 장면에 처했을 때는 인간인 이상 아이를 구조했을 것이다. 아아! 인간은 빛나는 광명을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아니다.”고 한 공자의 말씀을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 <천명>이란 사람이 태어나면서 받은 것을 의미한다고 처음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성(性)>이라고 한 것이다. 저 나그네가 유아를 구조해줌으로써 보여준 측은지심(惻隱之心=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나에게 <성품(性品)>은 선하고, 인간은 본래 빛나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었다. 그 때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아무리 인간의 세계가 모순에 차 있고 혼탁하다고 해도 광명에 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 그 자체에 있다. 이런 인식은 나를 얼마나 기쁘게 했던 것일까. (공손추장구상6)
10) 사단--인의예지의 실마리
그로부터 나는 <측은지심> 외에 악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사물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등 역시 <성(性)>임을 인식했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실마리요, 수오지심은 <의(義)>의 실마리요, 사양지심은 <예(禮)>의 실마리요, 시비지심은 <지(智)>의 실마리이다. 이 네 가지의 실마리는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가지고 있다.(공손추장구상6)
요컨대 이 사단(四端)을 확실히 붙잡고 인(仁), 의(義), 예(禮), 지(智) 라는 훌륭한 덕을 세우는 것이다. 사단이 있으면서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은 인이나 의 같은 덕을 완성시킬 수 없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못되게 해 버리는 것이다. 사단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확충시키려 한다면 불이 타오르듯이, 샘이 솟듯이 얼마든지 세력 있게 확충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완전한 덕이 이루어지고 사해의 백성이 안정되게 된다. 그런데 확충시키려 하지 않으면 실마리는 모르는 사이에 막혀버린다. 그래서 부모를 섬길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11) 민둥산(牛山)의 가르침
맹자의 생각은 다음다음으로 이어져서 언제 끝날는지 모른다. 그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이윽고 직문도 가깝다. 변함이 없는 걸음으로 걷고 있던 맹자는 돌부리라도 채인 것인지 넘어지다가 일어선다. 앞을 내다보니 망망한 전방 하늘에는 우산(牛山=임치의 남쪽에 있는 민둥산)이 우뚝 서 보인다.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헐벗은 산등성이가 석양에 눈부시게 빛난다.
“아아. 멋진 민둥산이다.”
무의식중에 탄성이 맹자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 자세대로 산의 모습에 붙잡혀 있다가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저 민둥산인 우산도 옛날에는 나무가 무성했을 것이다. 그것이 임치라는 대도시의 교외에 있기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도끼나 낫을 가지고 가서 남벌해버린 것일 것이다. 비도 내리고 서리도 내렸을 터이니 나무나 풀의 새싹이 많았을 터인데, 벌채를 하고 나서는 우마를 방목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아무리 해도 견딜 수가 없어서 민둥산이 되어버린 것일 것이다. 민둥산이 되어버린 후에 우산을 아는 사람들은 저 산은 옛날부터 나무가 자라지 않은 민둥산이라고 알고 있을 터이지만, 처음부터 나무가 자라지 않은 산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도 그런 것이다. 처음부터 전혀 도덕심이 없는 인간이란 존재할 이가 없다. 인, 의, 예, 지로 이어지는 사단을, 착한 성품(性品)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잃어버리니까 악인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그 착한 성품을 잃어버리는 상태는 도끼나 낫으로 나무를 벌채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 벌채를 계속하고 있노라면 나무가 무성해질 수 없는 것처럼 나쁜 일에만 익숙해진다면 모처럼 가지고 있는 착한 성품도 성장할 여지가 없어지고 만다. 그래도 비나 서리로 축여져서 벌채하고 난 뒤에 새싹이 움트도록 착한 성품 스스로가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마저 처음부터 무찔러버리면 짐승과 다름이 없는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인간과 만나면 처음부터 착한 성품 같은 것은 없었다고 착각을 할는지 모른다. 그런데 착한 성품을 가지지 않은 인간이란 없는 것이다. 적절히 양성해가면 성장하지 않는 것은 없고, 양성하지 않으면 소멸하지 않은 것은 없다. 저 우산이야말로 좋은 예이다. 그리고 착한 성품도 마찬가지이다. (고자장구상8)
오늘 자신은 선왕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자극하여 왕도정치를 설명했다. 그러나 선왕이 당장 어진 정치를 베풀 것이라고 속단하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선왕에게는 그 소를 불쌍히 여긴 것 같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확실히 있다. 그런데 우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버린 도끼와 같은 전쟁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컨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하여 설명해야 할 일이다. 광명을 잃지 않도록--.
12) 유가의 도와 관중과 안자의 도
제나라에 정착하여 날이 지나자 맹자의 높은 이름을 사모하여 많은 제자들이 들어왔다. 맹자는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선왕에게 왕도정치를 설명하는 한편 열심히 이들 제자를 가르쳤다. 그 제자 중 한 사람에 공손추(公孫丑)라는 사람이 있었다.
“선생님이 만일 우리 제나라의 요직에 취임하신다면 저 관중(管仲)이나 안자(晏子)가 이룩한 훌륭한 공적을 재현할 수가 있습니까?”라고 우문을 하는 솔직한 남자였다.
관중은 그 옛날 제나라 환공(桓公)을 도와서 제후의 패권을 잡게 한 인물이고 또 안자(晏子)는 권신들이 반목해서 제나라가 찬탈의 위기(결과적으로 안자가 죽은 후 전씨가 찬탈했다)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공(景公)이 궁전을 수축하고 사치에 빠져서 조세를 무겁게 하고 형벌을 엄하게 하여 백성을 괴롭힐 때에 직간하여 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명재상이다. 이 두 사람은 제나라가 자랑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제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주장하는 맹자가 보면 이 두 사람의 공적은 저열한 것일 뿐인데, 이 사정을 공손추는 모르고 있었다.
“그대는 참으로 제나라의 촌놈이다. 관중과 안자밖에 모르니까.”(고자장구상1)
하고 야유하면서 맹자는 그 솔직한 인품을 사랑했다.
13) 부동심
그 공손추가 어느 날 찾아와서 맹자에게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이 제나라 재상이 되고 요즘 품고 있는 이상을 실현할 수가 있게 되었다면, 옛날의 패자나 왕자의 위업을 이루어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단지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그런 장면을 당하게 되면 너무나 책임이 중대하여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의아해하여 불안해지는 일은 없겠습니까?”
“아니. 나는 마흔 살을 넘기면서 부동의 신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굳어져서 마음 흔들리는 일은 없다.”
“그러면 선생님은 옛날 용장인 맹분(孟賁)보다도 단수가 높습니다.”
“부동의 신념-부동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선설을 둘러싼 나의 논적인 고자(告子)도 나보다 먼저 부동심을 체득하고 있다.”
“부동심을 가지는 데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는 이 물음에 북궁유(北宮黝)와 맹시사(孟施舍)의 예를 들어 말하였다.
*북궁유(北宮黝)와 맹시사(孟施舍)
“있지. 그대도 알고 있는 제나라 용자의 예를 들어 설명하기로 하자. 북궁유(北宮黝)라는 사람이 용기를 기른 방법은 살갗을 찔러도 꼼짝하지 않고, 눈을 찔러도 깜박이지 않았을 뿐더러 비록 사람들에게 터럭만큼이라도 꺾이었다고 생각하면 시장바닥에서 매를 맞은 것 같이 여겼다. 이런 까닭에 남루한 복장을 한 천민에게나 위세 등등한 만승의 군주에게도 모욕당하지 않으려 마음을 썼다. 또 만승의 군주에게 대들기를 천한 사람에게 대들 듯이 하였다. 제후라고 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에게 욕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보복을 했다. 이런 기백 속에서 그는 부동심을 키운 것이다.
또 맹시사(孟施舍)가 용기를 기른 방법을 보면 그 자신이 말을 빌리면 <지고 있어도 이기도 있다고 생각해서 전투에 임한다. 적군의 세력을 계산하여 진군하거나 승산을 꾀하여 회전하는 것은 처음부터 적군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아서 참 용기가 아니다. 나는 반드시 이긴다고 보고 전투를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어떤 적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한다. 곧 맹시사는 승전을 도외시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제일의로 하여 거기서 부동심을 키웠다.
이 두 사람의 방법을 보면 맹시사는 마음의 내면을 문제로 하여 두려움을 없애려 한 점에서 내성적인 증자(曾子)와 비슷하고, 북궁유는 용기를 항상 밖으로 내보이려는 점에서 나서기 좋아하는 자하(子夏=공자의 제자로서 문학에 뛰어났었다.)와 비슷하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말할 수 없으나 내적인 기개에 중점을 둔 맹시사 쪽이 조금은 나은 듯하다.”
“--.”
“옛날 증자는 그 제자인 자양(子襄)에게 <그대는 용기를 좋아하는가. 나는 일찍이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신 공자로부터 친히 대용(大勇)에 대하여 질문을 했던 일이 있다. 그에 따르면 내성을 통하여 아무래도 바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거지같은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도 적대할 수 없으나, 바르다고 생각하면 비록 상대가 천만인이라 하더라도 감연히 적대한다고 하는 것이었다.>(공송추장구상2) 고 말한 일이 있다. 곧 대용이란 내심을 항상 공정한 상태를 가지고 스스로 믿는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부동심을 키우는 최선의 방법으로 이것을 마음속에 간직한 증자는 기개에만 뜻을 두고 있던 맹사시보다 훨씬 낫다.”(고자장구상2)
공손추는 이를 긍정하고 다시 질문을 하였다.
14) 심지와 기개
“앞에서 선생님은 고자(告子)가 선생님보다 먼저 부동심을 체득했다고 하셨는데, 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의 부동심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고자(告子)는 <남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어도 자기 마음속에서 억지로 이해하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자기 마음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어도 기개에 호소하여 무리하게 납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후반에 <자기의 마음속에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어도 기개에 호소하여 무리하게 납득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좋으나 전반의 <남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어도 자기 마음속에서 억지로 이해하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안 된다. 그러면 너무나 소극적이라서 적극적으로 부동심을 단련시키는 것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체 심지(心志)란 기개를 끌어들이는 것으로 기개는 신체를 다스리는 것이다. 심지(心志)가 향하는 곳에 기개는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바르게 심지(心志)를 붙잡고 의로운 행위를 하며 마음속에 불만이 없도록 하여 기개도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다시 묻겠습니다. <심지(心志)가 향하는 곳에는 기개가 따라간다.>고 말하는 것은 심지(心志)가 주가 되고 기개는 종(從)이라는 의미가 아닙니까?”
“그렇다. 심지(心志)가 본이고 기개는 이에 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지(心志)만을 바로 지키면 좋을 터인데, 또 <항상 바르게 심지(心志)를 붙잡고 기개도 상하는 일이 없게 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때문입니까?”
“심지(心志)가 확고하면 기개를 이끌 수 있음은 물론 그것이 본래인데, 때로는 일시적으로 응결된 기개가 거꾸로 심지(心志)를 움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길을 갈 때에 달리다가 넘어진다고 하자. 깜짝 놀란다. 그 깜짝 놀라는 것은 기개의 활동인데 그것이 때로는 심지(心志)를 어지럽혀 움직이는 수가 있다.”
“부동심을 기르는 데에 선생님이 뛰어난 것은 어떤 점입니까?”
“나는 먼저 말을 알고 있다. 곧 남의 말을 듣고 그것을 정당하게 판별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호연지기를 기르고 있는 것이다.”(공손추장구상2)
15) 호연지기
“호연지기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매우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극히 광대하고 극히 강건하고 게다가 정직, 양성하여서 상함이 없다면 천지간에 가득 차서 결국에는 천지와 일체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공손추장구상2)
“--”
“또 정의와 인도와 함께 양성되는 것으로 도의가 없으면 쇠하여 시들어버린다. 곧 단순한 혈기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의 순수한 것이 하나로 응집되어 일점의 거리낌이 없는 데에 발하고 성장하는 것으로 마음의 바깥에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행위를 반성하여서 거기에 인의가 갖추어지지 않아서 일점의 거리낌이라도 있으면 곧 쇠하여 시들어버린다. (공손추장구상2) 그러니까 고자(告子)는 아직 의를 모른다고 내가 말하는 것은 그가 인은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지만 의는 마음 밖의 것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손추는 한 결 같이 귀를 기울여서 스승이 한 마디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긴장하고 있다. 이제야 스승이 극히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손추의 표정에 만족해하면서 맹자는 말을 잇는다.
“그런데 이런 호연지기를 길러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필요로 하는가. 호연지기란 것은 일조일석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므로 항상 그것을 양성하려고 마음을 먹고 비록 한때라도 방심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항상 마음을 쓰는 사이에 성공을 예기하거나 긴장을 결여하여 망각하거나 다른 힘을 가하여 조장하거나 하면 안 된다. 성공을 예기하면 마음속에서 서둘게 되고 긴장을 결여하여 망각하게 되면 의를 잃게 되고 다른 힘을 가하여 조장한다면 부자연스러운 작위가 섞기기 때문이다.”(공손추장구상2)
하고 다른 힘을 가하여 조장하는 잘못을 송나라 어리석은 농부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16) 송나라 어리석은 농부 이야기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로 하자. 옛날 송(宋=춘추시대의 나라이름, 이 나라 사람은 어리석은 행동의 주역으로 잘 등장한다.)나라에 조금 모자란 농부가 있었다. 벼가 더디 자르는 것을 염려하여 어느 날 정성껏 한 그루 한 그루 싹을 뽑아 올려놓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가서 <아! 오늘은 피곤하다. 묘가 자라는 것을 도와주고 왔으니까.> 하고 집안사람에게 알렸다. 그 아들이 깜짝 놀라서 밭에 나가서 보니까 묘는 말라버렸다는 것이다. 참으로 바보스러운 이야기인데 웃을 수만은 없다. 기개에만 의지하여 용기를 기른 북궁요(北宮黝)나 맹시사(孟施舍)는 이 벼 싹을 뽑아 올린 농부와 같다고 할 수 있고, 싹을 뽑아서 거꾸로 마르지 않은 종류의 사람은 천하에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부동심을 붙잡고 있으면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려고 하지 않은 고자(告子) 등은 땀을 흘리며 묘를 심으면서 잡초도 뽑지 않고 그냥 두어서 모처럼의 묘를 충분히 성장시키지 않은 것과 같다. 그 어느 쪽도 유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롭다 해서 좋을 것이다.”(고자장구상2)
17) 누가 성인인가
“호연지기는 알았습니다만, <말을 알고 있다.>고 하신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공정하지 않은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양심에 숨겨져 있는 것을 알고, 음란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제 정신을 잃고 빠져있는 점을 알고, 사악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이성을 벗어난 것을 알고, 벗어나려 꾸미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궁한 것을 안다. 이런 마음이 마음에 일어나면 해독이 그 사람의 행위에도 미치고 행위에 해독이 미치면 정치도 독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큰일이니까. <말을 아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 세상에 다시 성현이 나타난다고 해도 반드시 나의 의견에 찬성하실 것이다.”(공손추장구상2)
* 공자와 제자들
“사람에게는 각각 장점이 있는데, 공자의 고제자의 예를 들어본다면, 재아(宰我)나 자공(子貢)은 변설에 뛰어났고, 염우(冉牛), 민자(閔子), 안연(顔淵)은 덕행에 뛰어났고, 공자 자신은 양쪽 모두에 뛰어났으나 <나는 아무래도 말에는 자신이 없다.>고 항상 겸손해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말을 안다.>고 하시는 선생님은 이미 공자 이상의 성인이십니까?”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옛날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선생님은 성인이십니까?>하고 물었을 때, 공자는 <성인이야 어떻게 미칠 수 있겠느냐. 나는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을 뿐이다.>고 대답했다. 그것을 들은 자공은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은 것은 지(智)이다.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仁)이다. 지와 인을 모두 갖춘 선생님은 이미 성인인 것이다.>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곧 저 위대한 공자마저도 성인을 자처하지는 않았다. 하물며 내가 성인이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맹자의 말씨가 강해졌다. 지금까지의 미소는 사라지고 갑자기 표정이 엄숙해졌다. 경망한 제자의 발언을 꾸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낙천적인 공손추는 주저하지 않고 질문을 한다.
“일찍이 나는 공자의 고제들 중에 자공(子貢)이나 자유(子游)나 자장(子張)은 모두 성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고, 염우(冉牛)나 민자(閔子)나 안연(顔淵)은 모든 자격을 갖추고는 있었으나 틀이 작아서 아직 미약하다고 하시던데 선생님은 누구에 상당하십니까?”
“그런 말은 그만 두기로 하자.”
* 백이와 이윤
“그러면 백이(伯夷)나 이윤(伊尹)과는 어떻습니까?”
“나는 이 두 사람과는 다른 방법을 취해왔고 금후에도 다른 길을 가고 싶다. 백이는 은(殷)왕조 말기에 포학한 주왕(紂王)의 통치를 피하여 덕으로 다스리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에게 몸을 의지하였으나, 문왕이 몰하고 그 아들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멸망시키고 주(周)왕조를 세우자 무왕의 하는 방법이 의롭지 않다 하여 수양산(首陽山)에 숨은 인물이다. 곧 백이는 그가 섬길 임금이 아니면 벼슬하지 않았고, 그가 원하는 백성이 아니면 다스리지 않았다. 도의가 잘 지켜져서 다스려지는 세상이면 나아가 벼슬을 하고, 어지러운 세상이면 숨어 살았다. 이윤은 하(夏)왕조 말기에 포학한 걸(桀)왕에게도 벼슬하였고, 덕치로 다스린 탕왕(湯王)이 걸왕을 몰아내고 은(殷)왕조를 세우자 탕왕에게도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곧 이윤은 누구에게 벼슬하여도 군주는 군주이고, 누가 다스려도 백성은 백성이라고 단정하고, 잘 다스려지는 세상에서든 어지러운 세상이든 가리지 않고 나아가 벼슬을 하였다. 그런데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벼슬을 할 만 하면 벼슬을 하고 오래 머물러야 할 만 하면 머물고 빨리 떠나야 할 것이면 떠나는 방법으로 공자가 이 방법을 썼던 것이다. 백이나 이윤이나 공자나 모두 옛날의 성인이다. 나는 도저히 이들과 같은 행동은 할 수 없으나 바라기는 공자를 배우고 싶다.”
“백이나 이윤은 공자와 비교해서 우열이 없습니까?”
“아니다. 그것은 있지. 인류가 발생하여 공자처럼 뛰어난 인물은 없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성인이라고 말씀하신다면 무엇인가 공통적으로 뛰어난 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응, 그것은 있지. 만일 그들이 백리 사방의 토지라도 영유하여 그 영토의 군주가 되었다면 모두 제후들을 조회에 들도록 하고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천하통일을 하는 경우 비록 한 가지라도 불의를 행하거나 한 사람이라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일은 세 사람 모두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이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저 재아(宰我)와 자공(子貢)과 유약(有若)은 충분히 성인을 알아볼 수 있는 지력을 가진 인물이고 자기가 좋아한다고 해서 편파적으로 칭찬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 자아는 <내가 보는 바로는 선생(공자)은 성왕(聖王)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요(堯)임금이나 순(舜)임금보다 훨씬 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자공은 <그 사람이 제정한 예제를 보면 그 사람이 행한 정치를 알 수가 있고, 그 사람이 좋아한 음악을 들으면 그 사람의 덕을 알 수 있다. 백세후의 오늘날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지나간 백세의 왕들을 비교해보면 나의 감식에 틀림이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비교해보면 인류가 발생한 이래 선생(공자)처럼 뛰어난 인물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 유약은 <짐승 중에 기린, 새 중에 봉황, 산중에 태산, 수택 중에 황하나 대해는 각각 동류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이다. 그처럼 성인은 백성과 동류이기는 하나 인류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다. 그 인류 중에서도 위대한 존재인 성인 중에서도 공자는 단연 발군이고 성덕은 아직 고금에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고자장구상2)
백이와 이윤도 성인이기는 하지만 공자는 빼어난 존재이다. 그것은 이 이상 그 차이를 들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고 입을 다물었다.
부동심으로 시작한 문답은 호연지기에서 공자에게로 이행되어 끝이 났다. 말하고 또 말하여 이제야 공자에게로의 사모의 마음에 불타는 맹자는 가만히 눈을 감고 심장의 고동을 듣고 있다. 공자야 말로 이상의 인물이다. 그리고 나 자신은 공자를 본 따서 그 도를 체득하고 펴는 일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 공자만을 배우고 싶다.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이 사명은 자신이 성취하지 않으면 누가 달성할 수가 있겠는가.
“선생님 여러 가지의 가르침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공손추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으나 맹자는 눈을 감은 채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18) 어질면 번영한다
공자는 <조수와 더불어 무리를 짓고 살수는 없다. 내가 사람의 무리와 함께 살지 않고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논어 미자편)라고 말한 일이 있다.
인간은 새나 짐승과 더불어 사회를 형성하고 살 수는 없다. 어떻든 인간은 인간들끼리 사회를 형성하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으로서 신이 아닌 한 항상 완전 원만할 수는 없다. 그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서 형성하는 세상은 항상 모순에 차있고, 혼탁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단 한 차례밖에 허용되지 않은 인간의 일생은 모순에 찬 살기 어려운 장소에서만 이루어진다. 이것은 천이고 명일 것이다. 천을 알고, 명을 안 공자는 두려움 없이 인간 세상을 직시하고 영원히 다하지 않는 깨끗해 보이는 인생 그것을 보고 슬프게도 씩씩하게 <인(仁)>을 걸어놓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공자를 배우기를 생애의 염원으로 하는 맹자가 <어질면 번영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론 맹자는 현실 세계가 화복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래도 이렇게 주장한 것이어서 단순한 이상주의적인 견지에서 현실을 무시하여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는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영달을 바라고 치욕을 싫어한다. 인덕을 쌓기만 하면 반드시 영달하고, 불인인 채로 있으면 치욕을 면할 수가 없다. 치욕을 당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인덕을 쌓으려 하지 않은 것은 습기를 싫어하면서 낮은 곳에 있는 것과 같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도 사정은 같다. 혹시 다른 나라로부터 위협을 당하여 치욕을 당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인덕을 귀히 여기고, 덕을 수양한 인사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현자가 각각의 자리에 앉고 유능한 인사가 각각의 직에 앉아서 국가가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낳고, 태평 무사한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런 때에 정치와 교육과 형벌을 밝게 하고 백성의 생활 지침을 지시해준다면 국내는 평안하게 다스려지고 비록 대국이라고 해도 두려워할 것이다.
시경 빈풍(豳風) 시효편(䲭鴞篇)에
<하늘이 장맛비를 뿌리기 전에
뽕나무뿌리 껍질을 주워다가
둥우리를 든든하게 짜야 한다.
이제 나무 아래 있는 사람들 중
누가 감히 업신여기리.>
라는 구절이 있다.
새의 둥지를 비유하여 만전의 준비를 해야 함을 읊은 노래인데 공자도 <이 시의 작자는 도를 분별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고 칭찬하고 있다.
이처럼 만전을 기하여 나라를 다스린다면 누가 치욕을 더하려 할 것인가. 그런데 모처럼 나라가 태평 무사한 때라도 안일에 취하여 태만에 빠진다면 스스로 화를 자초하게 된다. 화복이란 모두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이다.
시경의 대아 문왕(文王)편에
<길이길이 천명과 짝을 하여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라.>하는 것도
서경 태갑편(太甲篇)에
<하늘이 내린 재화는 벗어날 수가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화는 도망칠 길이 없다.>
라고 있는 것도 이 의미이다.”(공손추장구상4)
19) 백성의 소리를 들어라
맹자로서 본다면 현명한 신하, 유능한 관리의 등용에 뜻을 두고 있지 않은 선왕의 정치는 아깝게도 제나라를 멸망으로 이끄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맹자로서는 좌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어느 날 선왕과 마주 앉은 맹자는 이 문제를 들었다.
“전통에 빛나는 옛 나라라는 것은 하늘을 찌르는 큰 나무가 무성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훌륭한 대를 잇는 신하가 있는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임금님에게는 신용할 만한 측근의 신하가 없고, 어제 등용한 사람을 오늘은 잊어버리고 그 사람이 면직되었는지 어떤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러고서는 아무리 제나라의 전통을 과시한다 해도 실질이 수반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것은 실제로 써보지 않으면 유능한지 어떤지 모르지 않소. 써보고 무능하다면 그만 두게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소. 어떻게 하면 처음부터 유능하고 무능함을 구별하여 쓸 수 있다는 말이오.”
“한 나라의 군주가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는 경우에는 신중하고도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존귀한 것을 존중하고 친근한 사람을 친히 하는 것은 예의의 상도입니다. 그러나 존귀한 사람 친근한 사람은 반드시 현명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그 때는 보다 소원한 사람 중에서 현명한 사람을 등용할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비천한 사람을 존귀한 사람보다 중용하고 소원한 사람을 친근한 사람보다 중용하게 되어서 예의의 상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예의의 상도를 범하더라도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이것은 결코 경솔하게 행할 일은 아니고 당연히 신중을 기해야 할 일입니다.”
“--.”
“구체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어떤 인물을 등용할 경우 좌우에 있는 측근 전원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추천한다 해도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대부들이 모두 현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추천하더라도 아직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국민 모두가 현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추천하여서 처음으로 임금님은 스스로 그 사람을 잘 관찰하고 과연 현명한 사람이라고 납득하고 나서 등용해야 합니다. 거꾸로 어떤 사람을 파면하는 경우에도 같습니다. 측근의 전원이 부적임자라고 하더라도 청허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대부들이 부적임자라고 하더라도 청허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부적임자라고 할 경우에 처음으로 임금님 스스로 그 사람을 잘 관찰하고 과연 부적임자라고 납득이 된 다음에 파면해야 합니다. 다시 어떤 사람에게 형벌을 가할 경우에도 같습니다. 측근의 전원이 사형을 주장하더라도 청허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대부들이 사형을 주장하더라도 그것으로 청허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전부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처음으로 임금님 스스로가 그 사람을 잘 관찰하고 과연 사형에 처해야 하겠구나 하고 납득이 된 다음에야 사형을 처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국민이 사형에 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서야 처음으로 주군은 국민의 부모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양혜왕장구하7)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는 것은 일국의 운명을 좌우하고 나아가서는 천하의 평화에 영향을 준다. 본래 경솔하게 처리할 일이 아니다. 이 일에 관하여 귀찮을 정도로 선왕에게 설명하고 주장한 맹자의 심중에는 이윽고 현명한 사람을 등용한 선왕이 그런 때문에 결국에는 인덕에 생각이 미쳐서 <어질면 번영한다.>고 하는 스스로의 비원이 실현되는 날에 대한 기대가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20) 백성과 함께 즐기는 음악
직하(稷下)에 사는 맹자를 찾아오는 것은 제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선왕을 섬기며 제각기 국사를 걱정하는 충성스러운 가신들도 자주 방문하였다. 전국시대라는 엄한 시대라서 국가의 전도를 불안하게 생각하거나 선왕과의 응대를 어떻게 해서 좋은 것인지 잘 모를 때에 그들은 맹자의 의견을 들은 것이다.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선왕의 측근인 장포(莊暴)가 찾아와서 환담을 하였는데, 이윽고 맹자의 배웅을 받으며 현관에 섰다.
“다망한 가운데 오래 동안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 그렇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겠군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기보다 아마도 경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심하고 돌아가십시오.”
장포가 상담한 일은 다음과 같다. 전날 그가 선왕을 알현하였을 때 선왕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것을 듣고 장포는 문득 불안해졌다. 어쩌면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이었다. 일국의 군주가 항상 긴장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될 때인데 음악에 매료되어서는 큰일이다. 나약한 폐풍이 스며드는 곳에 불의의 적이 쳐들어온다면 그야말로 잠시도 지탱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다려라 어쩌면 요즘의 피로를 달래기 위하여 그 때 그 때 음악을 즐긴다는 것일까.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으나 마침내 장포에게는 선왕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좋은지 나쁜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는 그 날은 무엇이라 대답하지 않고 돌아갔으나 그로부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 맹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선왕이 만일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면 제나라가 천하의 왕자가 될 날이 가까워진 것이겠지요.”
너무나 낙천적인 시원한 회답이어서 장포는 어정쩡한 느낌이 들어 돌아갈 순간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장포를 돌려보내고 나서 맹자는 급히 선왕을 알현하고 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러고 있는 것처럼 오늘 들은 바를 잊어버리기 전에 이용하여 선왕에게 설교를 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임금님은 전날 <음악을 좋아한다.>고 장포에게 말한듯한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선왕은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아니요, 아니요. 과인은 옛날 성왕(聖王)이 제정한 것 같은 훌륭한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오. 단지 요즘 세속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이었소.”
“임금님이 음악을 매우 좋아하신다면 매우 좋은 일입니다. 제나라가 천하의 왕자가 되는 일도 그리 먼 장래의 일은 아닙니다. 세속의 음악이라 하셨습니다만 그것은 본질적으로는 옛날 성왕의 장중한 음악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인(仁)이라든지 덕(德)이라는 어려운 말만 하는 맹자가 오늘은 어리석은 듯이 말하므로 선왕은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오. 본질적으로는 다름이 없다는 말이오. 그것은 또 어떤 말인가요?”
“혼자서만 음악을 즐긴다는 것과 남들과 함께 음악을 즐긴다는 것과는 어느 쪽이 보다 즐겁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남들과 즐기는 것이 좋지요.”
“그렇다면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과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과 어느 쪽이 보다 즐겁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것은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겁소.”
“바로 그것입니다. 임금님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다면 음악에 대하여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만일 임금님이 북을 치고 음악을 즐기고 있을 때에 백성들이 그 북과 악기의 소리를 듣고 모두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에 주름을 세워서 <아, 또다시 음악인가. 임금님이 음악을 좋아하셔서 저렇게 북과 악기를 치며 호사스럽게 지내기 때문에 우리들은 종종 사역에 끌려 나가서 무임금 노동을 하고 이렇게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활고 때문에 어버이와 자식은 물론 형제 처자도 뿔뿔이 이산되고 말았다.> 하고 탄식한다고 합시다. 또 임금님이 사냥을 즐길 때에 백성이 그 수레 소리를 듣고 아름다운 깃으로 단장한 깃발을 보고서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에 주름을 세워서 <아 또다시 사냥인가. 임금님이 사냥을 좋아해서 우리들은 종종 사역에 끌려 나가서 무임금 노동을 하고 이렇게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활고 때문에 어버이와 자식은 물론 형제 처자도 뿔뿔이 이산하고 말았다.> 하고 탄식한다고 합시다. 이렇게 되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임금님이 군주로서의 특권을 휘둘러서 혼자만 좋아하여 즐기고 일반 백성과 함께 즐기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만일 임금님이 북을 치며 음악을 즐기고 있을 때, 백성들이 그 북 소리와 악기 소리를 듣고 모두 흔연히 기뻐하며 <우리가 경애하는 임금님은 매우 건강하신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음악을 즐길 수 없을 것인데 참 반갑다.>고 한다고 합시다. 또 임금님이 사냥을 할 때, 백성들은 그 수레와 말 달리는 소리를 듣고 아름다운 장식을 한 깃발을 보고 모두 흔연히 기뻐하며 <우리들이 경애하는 임금님은 건강하신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냥을 하며 즐길 수가 없을 것이다. 반갑다.>고 말한다고 합시다. 이렇게 되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임금님이 항상 백성과 함께 즐기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흠!”
“임금님 비록 요즘에 유행하는 세속의 음악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즐기시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단지 그것을 백성과 함께 즐기셨으면 합니다. 백성들과 함께 즐기시는 한 세속의 음악은 성왕의 음악과 같이 통일된 평화로운 천하를 아름다운 멜로디로 장식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니 세속의 음악도 성왕의 음악도 본질적으로는 다름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또 음악만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임금님이 백성과 함께 즐기려고 생각하여 군주로서의 특권의식이나 이기심을 버리신다면 자연 인심을 얻게 되어 참으로 왕자가 되시는 것입니다.”(양혜왕장구하1)
군주만이 즐기고, 백성은 고뇌 속에서 몸부림친다. 그리고 군주는 특권의식을 휘두른다. 이것은 이 전국시대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아니 어떤 세상 어떤 사회에서도 일부의 특권계급이 횡포를 다하는 것은 늘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가처럼, 제국주의 하에서의 군부처럼, 그리고 노동운동 하에서의 노동계급처럼 말이다.
맹자는 군주만이 즐거움 그 특권의식을 배격한 것이다. 일찍이 대량의 연못가에서“현자에게도 또 이런 즐거움이 있는가요?”하고 위(魏)나라 양혜왕한테 질문을 받아서“현자라야 이것을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현자는 백성과 함께 즐기는 자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 이 정신이다.
21) 백성과 함께 즐기는 놀이
선왕은 환락의 장으로서 설궁(雪宮)이라는 굉장히 호화로운 이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설궁에서 알현하였을 때 양혜왕이 그런 것처럼 선왕도 다시 부와 권력을 자랑하고픈 의식에서 같은 질문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에도 맹자는 즐거움은 백성과 함께 해야 하는 것으로 백성을 괴롭혀서 군주만 즐겨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백성의 즐거움을 함께 즐기는 군주를 위해서는 백성은 다시 군주의 즐거움을 함께 하여 즐기는 것이다. 백성의 걱정을 함께 염려하는 군주를 위해서는 백성도 또 군주의 걱정을 염려하는 것이다. 즐기는 일에도 천하와 함께 즐기고, 걱정을 하는 데에도 천하와 함께 걱정한다. 이렇게 하여 천하의 왕자가 되지 못한 자는 없다.”(양혜왕장구하1)
이런 강한 주장을 옛날의 왕자는 노는 일마저도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하지 않고 민생을 순찰하는 수단으로서 했다는 안자(晏子)의 말을 끌어다가 설명한다.
“--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고 하며, 이것은 수비하는 곳을 순시하는 것입니다. 제후가 천자를 뵙는 것을 술직(述職)이라 하는데, 술직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이니 일거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봄갈이하는 것을 살피고 부족한 것을 보충해주시고 가을 추수를 살피시고 모자라는 것을 도와줍니다.(중략) 그런데 임금님께서 선왕의 명령을 어기고 백성들을 학대하고 음식을 버리기를 물같이 함이 유련황망(流連荒亡)하여 제후들의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물 흐름을 따라 내려가서 돌아오는 것을 잊음을 유(流)라고 일컬으며, 산을 따라 위로 올라가서 오지 않은 것을 연(連)이라 일컬으며, 사냥을 가서 싫증을 모르고 보내고 있는 것을 황(荒)이라 일컬으며, 술을 즐겨서 싫증을 모르고 정사를 태만히 하는 것을 망(亡)이라고 합니다. 성왕들은 유련(流連)을 즐기거나 황망(荒亡)하는 행동이 없습니다. 오직 임금님께서 행하기에 달렸습니다.”(양혜왕장구하1) 라는 말을 들고 선왕에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선왕에게서는 이렇다 할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든 선왕의 특권의식을 소멸시키고 백성과 함께 즐기려는 마음을 일깨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맹자의 기분이 오늘의 설교로 나타난 것이다.
과연 선왕의 마음은 움직였다. 거듭한 맹자의 열변이 공을 세운 것이다.
“과연 세속의 음악을 좋아해도 좋다. 단지 일반 백성과 함께 즐겨라. 그러한 성왕의 격조 높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효용이 있소.”
“예.”
“백성과 함께 즐겨서 과인 혼자만이 즐거움은 그만 두라는 것이 중점이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음. 잘 알았소. 과연 이것은 과인이 크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점이오.”
22) 백성과 공유하는 정원
선왕은 팔짱을 끼고 천장의 한 모퉁이를 쳐다보았다. 잠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눈을 맹자에게로 돌려 무엇인가 수긍하면서 천천히 질문을 하였다.
“다른 일에 대하여 질문을 하겠는데, 과인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정원은 70 리 사방이었다고 듣고 있소. 정말로 그렇게 광대한 것이었던가요.”
“그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단 당시의 백성들은 그것도 좁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문제요. 과인의 정원은 사십 리 사방인 것인데 백성들은 너무 넓다고 하고 있는 것이오. 과인은 항상 그 일을 이상하게 생각했었소. 선생의 앞에서 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것은 좋은 데에 착안하셨습니다. 문왕의 정원은 칠십 리 사방이나 되는 광대한 것이었으나 나무꾼이나 사냥꾼도 자유로 드나들어서 나무를 베거나 토끼나 꿩을 잡아도 좋았습니다. 곧 문왕은 그것을 백성과 공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이 칠십 리 사방이나 있어도 작다고 생각한 것도 당연합니다. 나는 이 나라에 오려고 국경에 이르렀을 때, 먼저 이 나라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는데, 관소 안에는 사십사 리 사방의 정원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고라니, 사슴을 죽인 자는 살인죄를 지은 것과 같이 다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사십사 리 사방이나 되는 함정을 만든 것과 같습니다. 백성과 공유하여 함께 즐긴다는 소문과는 다릅니다. 백성들이 너무 광대하다고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은 마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소. 과인은 오늘에야 겨우 그것을 알았소.”
“지금부터라도 결코 늦지는 않습니다. 안 되었다고 생각하였으면 즉각 고치십시오. 그리고 점점 백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 주십시오. 그러면 이 나라의 전도는 밝은 희망에 찬 나라가 될 것입니다.”(양혜왕장구하2)
선왕을 바라보는 맹자의 표정은 밝았다. 그런데 이 금지 사항은 폐지되었는지 어떤지 그것은 전해지지 않았다.
23) 묵가의 맹자 훼방
작은 돌멩이가 물속에 떨어지면 반드시 파문이 일어난다. 하물며 큰 돌이라고 할 수 있는 맹자가 직하(稷下)에 정주하고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려지는 파문이 넓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직하에는 위왕(威王), 선왕(宣王) 시대를 통하여 70명 넘는 학식이 높은 선비가 모였었다. 그런데 맹자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한 사람이었다. 그 밖에 묵가(墨家)의 송경(宋牼)이나 윤뮨(尹文), 도가(道家)인 환연(環淵) 등이 유명한데, 그들이 맹자와 같은 직하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더욱이 송경(宋牼)과 맹자는 송나라에서 만난 일이 있고, 제나라에서 만난 일은 없는 듯하다.
이 시대에 맹자와 견줄 만 한 사상가로서는 장자(莊子)인데 이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다. 그러고 보면 맹자가 직하에 살고 있을 때 그리 대단한 인물은 없었던 것 같으므로 맹자의 존재는 한층 두드러졌을 것이다. 그런 만큼 그에 대하여 소문이나 비판이 호의를 가지고서나 악의를 가지고서 퍼졌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느 날 공도자(公都子)라는 제자를 데리고 맹자는 임치(臨淄=제나라 수도)의 거리를 산보하고 있었다. 이른 봄 따스한 날로 버들이 초록색 새싹을 피우고 봄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사람들은 가벼운 옷을 입고 삼삼오오 짝을 지으며 한가롭게 담소를 하며 봄날을 즐기고 있었다.
느긋한 거름으로 걸으면서 온화한 광경에 접함에 맹자의 얼굴에는 만족한 듯하였다. 이 거리 저 거리를 얼마나 걸었던지 한 거리를 돌아가는 데서 한 사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둥글게 모아 놓고 열변을 토하고 있고 군중들은 때때로 소리를 지르곤 하고 있었다.
“그렇다. 좋아 좋아요.”
“틀렸다. 틀렸어.” 하고 소리 지르곤 하였다.
맹자는 공도자를 불러 함께 군중의 뒤에 섰다. 아직 이른 봄인데 그 남자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고 옷에는 먼지가 쓰인 것을 보면 이 남자는 매일 어느 거리에 서서 연설을 한 것일 것이다.
“이 번에는 누구를 도마 위에 올려놓을까요. 옳지. 맹가(孟軻)로 합시다. 저 유가의 재물입니다. 지금 직하에 살면서 어진 정치라든지 왕도를 지껄이며 뽐내고 있는 녀석입니다. 대체로 유가란 놈은 인의를 주장하여 사람을 이끈다고 하는데 저것은 미명에 숨어서 사람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맹가는 그 우두머리입니다. 이 나라의 임금은 저 놈을 선생님이라고 우러르고 있는 모양인데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말을 하다가 한 숨 돌리고 정면으로 군중을 바라보았다. 군중이 숨을 죽이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꽤나 화술이 능란한 사람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성보진(全性保眞)>입니다. 아시겠어요. 모른다고요. 그러겠지요. 이것은 조금 어려운 말이니까 쉽게 말하면, 인간의 본성을 지탱하여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시 몰라요. 그래 그리 서둘지 마세요.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어지죠. 미인을 보면 좋아하게 되죠. 요컨대 인간의 본성은 색(色)과 식(食)의 욕망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인간은 남을 위하여 다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남을 해치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항상 색과 식의 욕망을 만족시킬 일만을 생각하면 좋은 것입니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옵니다. 자연은 정직한 것입니다. 인간도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잠간의 일입니다. 죽는다는 것도 잠간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을 거스르지 말고 좋아하는 색과 식의 욕망을 만족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명예라든지 귀천이라든지 장수라든지 그런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닙니다. 인(仁)이라든지 의(義)라든지 그런 것은 인간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본성을 해치는 것입니다. 순진하게 그런 것을 주장하고 있는 맹가란 놈은 큰 바보입니다.”
여기까지 들은 맹자는 잠자코 공도자의 옷자락을 끌고 걷기 시작하였다. 그 걸음걸이는 평상시와 같이 평정했다. 그러나 젊은 공도자는 흥분하고 있었다. 잠자코 걷는 스승의 뒤를 그도 얼마간 걷다가 마침내 큰 소리로 질문하였다.
“저 사나이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저 사람은 양주(楊朱=양자, 노자류의 이기주의자)의 무리이다. 아마도 어느 나라에 벼슬을 하였는데 전락한 때문에 저렇게 사람들을 모아 연설하고 현인이라는 평판을 받을 것을 기다리다가 다시 어느 나라에 가서 봉록을 받으려는 것일 것이다. 어떻든 무책임한 이야기를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니 화를 내어도 소용이 없다.”
“무책임도 정도가 있습니다. 선생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런 소리를 하다니.”
“자네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저런 무리를 상대하는 것은 바보스러운 일이다. 나는 어떻든 다소의 학문을 몸에 익혀서 선왕의 말씀을 돕는 몸이니까 나하고 관계가 되면 저런 사나이가 그것을 이용하려 하지 않겠느냐.”
“과연 그렇군요.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런 무리의 언설이 지금과 같은 세상에 흘리는 해독은 경시할 수 없다. 들어보면 매우 그럴듯하다. 인간의 본질을 문제시 하니까 말이다. 본성을 지탱하여 해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었지. 얼른 들으면 마치 그렇다고 생각되겠지. 그만큼 참으로 받아들여서 타락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조금 검토해 보면 바로 사설(邪說)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나는 저런 양주의 무리와 묵적(墨翟=묵자, 묵가의 시조)의 무리들을 배격하는 데에 사명감을 느끼고 지금까지 논진을 펴왔다.”
“한 번으로 좋으니까 꼭 그런 논설을 듣고 싶습니다. 전적으로 선생님의 변론은 그럴듯하니까 말입니다. 누구든 선생님은 논의가 지나치다고 하는 평판이니까요.”
공도자가 주의 없이 <논의가 지나치다.>라는 말이 맹자의 귀에 언뜻 들렸다.
“자네도 나의 논의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나도 하루 빨리 선생님처럼 훌륭한 논의를 전개하여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등문공장구하9)
사특함이 없는 솔직한 사람이다. 공도자는. 왜 맹자가 반문했는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 공도자의 얼굴을 친근하게 바라보며 맹자는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은 여기서 헤어지자. 꽤 많이 걸었으니 피곤하구나. 돌아가서 편히 쉬고 싶다.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꾸나.”
“예 내일 아침에 찾아뵙겠습니다.”
저물어가는 거리를 공도자는 씩씩하게 걸어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맹자는 감개 깊게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거리에는 사람이 드물다.
* 윤문[尹文(子)]
중국 전국시대 중기의 제나라 직하의 선비. <한서> <藝文志>의 명가 항목에 윤문자 1편이 기록되어 있었다는데 현존하지 않음. <장자> 천하편에는 송경(宋牼)과 함께 도가의 입장에서 정전화평을 주창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명가로 분류된 것은 후에 도가풍의 정명설(正名說)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 환연(環淵)
환연은 초(楚)나라 사람으로서 황제와 노자의 도덕을 배우고 터득한 것 상하편을 저술하였다.
24) 옛 성인의 문명 개척
이튿날 아침 약속한 대로 찾아온 공도자를 맞아서 맹자는 열심히 말하기 시작하였다.
“어제 자네는 나의 논의가 지나치다고 하였는데, 나는 결코 지나치지 않다. 가만히 보면 그렇게 말하듯이 논의로 날을 새다시피 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는 수 없이 그러고 있는 것이다. 나는 확실히 자신의 사명을 느끼고 있으므로 그 사명을 달성하기 위하여 의론이라는 수단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어제 곧 그에 대하여 말할까 했는데 많이 걸어서 피곤하기도 하고 중요하기도 하여 오늘 아침에 오게 한 것이다. 잘 들어보게나.”
평상의 부드러움이 오늘 아침의 맹자의 얼굴에서는 사라지고 매우 엄숙한 기운이 감돌았다. 공도자는 자세를 바로 하고 스승의 한 마디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가다듬었다. 밝은 아침햇살이 비추는 창 밖에는 새소리가 지저귀고 있었다.
“인류가 발생한 이래 역사는 쉬지 않고 흘러왔다. 그 역사의 흐름을 되돌아보면 어떤 때는 잘 다스려지고 어떤 때는 어지러웠다. 이렇게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시대가 교차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저 성왕인 요임금, 순임금 시대에는 황하의 물이 역류하여 중국에 범람하고 뱀이나 거북 같은 무서운 짐승이 퍼져서 인류는 살 곳조차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수목을 이용하여 그 가지 사이에 새의 둥지 같은 것을 만들고,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동혈을 파서 혈거생활을 하였다. 서경의 대우모편(大禹謨篇)에는 <강수(洚水)가 우리를 깨우쳤다.>라고 적혀있는데 강수(洚水)란 홍수(洪水)를 말한다. 요임금은 우임금에게 명하여 이 홍수를 다스린 결과 우임금은 골을 파게 하여 지상의 물을 바다로 끌어넣고, 뱀이나 용 같은 무리를 멀리 늪지대로 내 몰았다. 이리하여 간신히 물은 물길에 모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 현재의 양자강. 회하(淮河), 황하(黃河), 한수(漢水)이다. 위험은 멀리 사라지고 짐승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없어졌다. 그리하여 비로소 인류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토지를 얻어 거기에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유사 이래 처음의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진 보기이다.”(등문공장구하9)
“위대한 평화를 이룩한 요임금이나 순임금도 나이를 거스를 수는 없어서 차례차례로 세상을 뜨자, 성인의 도도 쇠퇴하여 폭군이 번갈아 나타났다. 집을 헐어서 못을 만들어 백성들이 편히 쉴 곳이 없어지고, 밭을 빼앗아 사냥터를 만들어 백성들이 의식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비생산적인 정원이나 연못이나 늪이 점점 증가함에 따라 다시 짐승들이 번식하게 되더니 은(殷)왕조 최후의 임금인 주왕(紂王) 시대에 이르러 천하는 크게 어지러워졌다. 이 시대에 이르러 암운을 걷어내고 빛나는 태양처럼 삽상하게 등장한 사람이 주공(周公)이다. 주공은 무왕을 도와서 주왕(紂王)을 주살하고, 주왕을 원조한 엄(奄)이라는 대국을 쳐서 삼 년 만에 그 왕을 토벌하고, 또 주왕의 총신으로서 갖은 악행을 저지른 비렴(飛廉)을 해변으로 몰아 죽였다. 비도로 정치를 하여 백성을 괴롭힌 나라가 오십이나 되고, 그 나라의 정원에 사육되어 백성을 위협한 표범, 코뿔소, 코끼리 들을 멀리 내몰아 천하를 숙청하고 왕도의 낙토를 이룩하였으므로 백성은 크게 기뻐하였다.
서경의 군아편(君牙篇)에도
<크게 현명하신 문왕의 계획.
크게 이으신 무왕의 공로.
우리 자손들을 도와 길을 열고
바른 길을 걷는 데 모자람이 없게 했다.>
라고 찬양하고 있는데, 무왕을 도운 주공의 노력이야말로 세상에 빛날 귀중한 것이다.”
“--.”
“문왕, 무왕, 주공이 빛나는 치세도 쇠하여 도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되어 사악한 언설이나 난폭한 행위가 횡행하고, 하극상의 풍조가 세상을 뒤덮었다. 그런 결과 신하로서 그 군주를 주살하고, 자식으로서 아비를 시해하는 일이 그치지 않았다. 이러한 세태를 우려하여 공자는 인간의 역사를 탐구하고 정사(正邪)를 분명히 밝혀 <춘추(春秋=노나라의 역사)>를 지었다.
<춘추>에는 발란반정(撥亂反正)-곧 난리를 평정하여 바른 데로 돌린다는 뜻이 있어서 이것은 천자의 소업에 속한다. 그러므로 공자는 나를 아는 것도 오직 <춘추>를 통해서이고, 나를 죄 주는 것도 오직 <춘추>를 통해서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도자는 의연히 신묘하게 듣고 있다. 그러면 공자의 몰후 현대라는 시대는 도대체 어떠한가. 슬프다. 그것은 역시 분명히 난세로서의 증상을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25) 난세를 조장하는 묵가의 준동
맹자는 한층 소리를 높여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현대는 어떠한가. 성왕은 출현하지 않고, 제후는 방자하게 휘두르고, 처사는 제멋대로의 논의를 펴서 백성을 혼란하게 하고 있다. 그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양주(楊朱)와 묵적(墨翟)과의 언설은 천하를 휩쓴다. 이제야 천하에 행해지고 있는 언설은 양주가 아니면 묵적으로 돌아갔다. 양주의 언설은 이기적인 주장이라서 이것은 임금을 위하는 것이란 하나도 없다. 묵적의 언설은 남의 아버지를 자기 아버지와 동등하게 경애한다는 형식적인 악평등의 주장으로서 오히려 자기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이다. 어떻든 인정의 자연--인륜에 돌아가는 것이지만 임금이나 아버지를 무시하고서는 짐승과 다르지 않다. 증자(曾子)의 제자로서 내가 존경하는 공명의(公明儀=노나라 현인)는 현재의 세상을 비판하여 <포주에 살찐 말이 있는데도 백성은 굶주린 얼굴빛이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 이것은 짐승을 데려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도착(倒着), 혼란의 시대는 실로 양주와 묵적의 언설에 의하여 초래된 것이다. 양주와 묵적의 언설이 소멸하지 않으면 우리 공자의 도인 인의의 도가 나타나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사설이 횡행하여 백성을 기만하고 인의의 도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인의의 도가 막히면 짐승을 끌어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고 다시 인간끼리 먹고 먹히는 참담한 세상이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되는 것을 우려하여 옛날 성인의 도를 지키고 양주와 묵적의 언설을 막고, 엉터리 학설을 추방하여 사설이 출현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뜻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설이 그 마음에 작용하면 일에 해를 끼치고, 사설이 일에 작용하면 그 정치를 해롭게 한다. 성인이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내 말에 찬성할 것이다.”(등문공장구하9)
“옛날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려서 천하는 평온해지고, 주공이 야만인을 물리치고 맹수를 쫓아서 백성들은 편안하게 생활하게 되었고, 공자가 <춘추>를 지어서 바른 것과 그른 것을 분명하게 하여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무서워 벌벌 떨었던 것이다.
시경 노송(魯頌) 비궁편(閟宮篇)에는
<북쪽 오랑캐를 치고 남쪽 오랑캐를 진정하니
우리에게 감히 대항할 사람이 없다.>
라고 있는데, 이것은 주공이 남북으로 전전하여 무도한 나라들을 정벌한 것을 노래한 것이다. 아버지와 임금을 무시하는 따위는 주공도 이를 응징하였다. 나도 인심을 바로 잡고, 사설을 배제하고, 편벽한 행위를 물리치고, 엉터리 언설을 추방하여 세 사람의 성인의 유업을 이으려고 한다. 무엇이든지 좋아하여 함부로 의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하는 수 없이 의논하는 것이다. 능히 양주와 묵적을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성인의 무리라고 생각한다.”
말을 다하고 난 맹자의 눈은 생기 넘치게 빛나고 있었다. 함부로 의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천하를 휩쓸고 있는 양주와 묵적의 사설을 막고 소멸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세 사람의 성인의 유업을 계승하여서 인의의 도를 천하에 선양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한 의논이 아닌가. 비록 입이 찢기고 소리가 쉬어도 끝내 의논으로 날이 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논을 위한 의논은 결코 아니다. 그 비원과 맑고 통렬한 성심은 강하게 공도자의 가슴을 울렸다. 솟아오르는 경의를 다하여 스승을 우러르는 그의 얼굴에는 감격의 눈물이 고였다.
26) 종횡가를 공격하다
공자를 배울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인의의 도를 천하에 선양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 맹자는 결코 현실과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시대에는 맹자처럼 어떤 주의주장을 가지고 제후에게 유세하여 다니는 사람이 많았으나 그들의 대부분은 제후의 요청에 따라 타협하고 현실적인 관심에 따라 주의주장을 적당히 바꾸어 일신의 영달을 꾀하였다. 이런 점에서 이상주의적인 맹자는 그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따라서 이들의 무리 속에서는 맹자에 대한 비판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일례를 들기로 하자.
“공손연(公孫衍)이나 장의(張儀) 같은 인물이야말로 참말 대장부라 할 것이오. 어떻든 그들이 한 차례 일어나서 활동하면 제후들도 무서워하고, 그들이 유세를 그만 두고 쉬면 천하의 전운이 가라앉으니까.”
어느 날 경춘(景春)이라는 사나이가 맹자에게 말을 걸었다. 장의도 공손연도 모두 종횡가(縱橫家)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당시에는 소위 <전국 칠웅>의 시대로서 일곱 나라가 병립하여 서로 항쟁했었다. 진(秦),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초(楚), 제(齊)가 그것으로 이 일곱 나라 중에 서쪽에 위치하고 있던 진(秦)나라가 차차 여섯 나라를 제압하는 형세였다. 그래서 진나라를 뺀 여섯 나라를 동맹시켜서 진나라에 대항하자는 합종자(合從者)와 여섯 나라가 합해서 진나라에게 복종시키려는 연횡자(連衡者)가 자주 국제간에 암약하였다. 이 합종자와 연횡자를 합쳐서 종횡가(縱橫家)라 하는데, 종횡가란 요컨대 책모를 가지고 제후 사이에 동맹을 맺게 하거나 혹은 전쟁을 일으키거나 하는 국제간에서 암약하는 자들이었다.
경춘도 종횡의 술을 배운 자라 하므로 자신이 속하는 계통의 대물을 들어서 근엄하게 몸을 의지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하고 있는데, 끄덕도 하지 않은 맹자를 놀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도로 넘어날 맹자는 아니었다.
“공손연이나 장의가 대장부란 어림도 없습니다. 당신은 아직 예를 배운 바 없는 모양인데, 남자가 성년이 되어 관을 쓸 때는 아버지가 지령하고, 여자가 시집을 갈 때는 어머니가 지령하는 법입니다. 어머니는 그 딸을 문까지 배웅하며 <시집을 가면 저쪽이 너의 집이다. 항상 몸조심하고 경계해서 남편의 말에 거스름이 없도록 해라.>하고 훈계하는 것입니다. 곧 순종을 제일로 하는 것이 부녀자의 도입니다. 내가 말한다면 공손연도 장의도 의로움을 가지고 각국의 군주를 광정하려는 의연한 점은 없고 전적으로 신용을 받으려고 아첨하고 군주의 뜻에 영합하여 종횡의 술을 주장하고 있는 데 불과합니다. 마치 부녀자의 도에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렬한 보복이다. 종횡가의 대물을 부녀자와 같다고 해버렸다. 맹자를 놀리려고 했던 경춘은 거꾸로 완전히 놀림을 당하여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였다.
“광대한 천하에서 그럴듯한 지위에 올라 당당하게 인의의 대도를 실천하고, 뜻을 얻어 정권을 맡는 경우 백성을 교도하고 함께 그 대도를 실천하고, 뜻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은퇴하여 혼자서 그 대도를 실천하고, 부귀도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빈천도 그 절조를 바꿀 수 없고, 무력도 그 뜻을 꺾을 수 없는 인물이라야 참된 대장부라 할 수 있습니다.”(등문공장구하2)
이리하여 손쉽게 경춘은 논파당한 것이다.
27) 정치는 바로잡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순우곤(淳于髡)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순우곤(淳于髡)은 원래 제나라 사람인데 오 척도 안 되는 작은 키의 사나이로 꽤나 유머러스한 웅변가였다. 일찍이 위왕(威王) 8년에 초(楚)나라가 대군을 일으켜 제나라를 침공한 일이 있다. 그때 위왕은 조(趙)나라의 구원을 얻기 위하여 순우곤을 사자로 보냈다. 그는 훌륭하게 임무를 다하여 유력한 원군을 얻어서 제나라는 위기를 면하였다. 위왕은 매우 기뻐하여 후궁에 주석을 베풀고 그의 노고를 위로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마시면 취하겠는가 하고 하문하였다. 그러자 한 되를 마셔도 취하고 한 말을 마셔도 취할 것입니다. 하고 도도하게 변설을 폈던 것이다.
“어전에서 술을 받아 재판관이라든지 감찰관이라는 까다로운 사람들이 옆이나 뒤에 배석해 있을 때에는 황공하여 엎드려 마시게 되므로 한 되면 취합니다. 만일 아버지 댁에 손님이 오실 때에는 옷깃을 여미고 바른 예법으로 주석에 앉아 돌아오는 잔을 돌리기도 하고 손님의 건강을 축복하여 종종 일어나서 마시므로 두 되쯤이면 취해버립니다. 만일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를 뜻 밖에 만나 즐겁게 추억을 말하고 비밀스러운 일까지 말하면서 마시면 대여섯 되 정도면 취합니다. 만일 마을 모임에서 남녀가 섞여 앉아서 술을 마시며 투호를 한다든지 하여 손을 잡아도 벌을 받지 않고, 추파를 보내어도 꾸중을 듣지 않으며, 앞에는 귀걸이가 떨어지고 뒤에는 비녀가 떨어지는 광경이 되면 나는 속으로 마음이 즐거워져서 여덟 되쯤이면 십 중 이 삼은 취해버릴 것입니다. 다시 해가 저물고 술이 절정에 이를 무렵 술독을 한 장소에 모아 남녀 동석해서 신발이 섞이고 배반이 낭자하고 방안의 불도 꺼져, 집 주인이 나만을 남게 하고 다른 손님을 보내고 엷은 옷깃이 벌어지고 미인의 향기가 풍겨날 때에는 나는 마음속으로 즐거워서 한 말의 술을 다 마셔버립니다. 그러므로 <술이 도를 극하면 흐트러지고, 즐거움이 도를 극하면 슬퍼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술 뿐 아니라 만사가 이러합니다.”
곧 모든 일은 극도에 이르게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극도에 이르면 쇠해진다는 것을 말하여 위왕을 풍자하고 간한 것이다. 위왕은 이 말을 이해하고 그로부터는 밤늦도록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순우곤은 제후를 접대하는 역할을 맡게 되어 왕실 연회 때에는 항상 왕 옆에 배석하였다.
그 순우곤은 선왕 대에도 여전히 제나라 왕실에 벼슬하였는데, 아무래도 맹자에게는 호의를 가지지 않았던 것 같다. 고고하게 왕도를 내걸고 현실 세계를 이상으로 이끌려는 맹자의 엄한 태도가 현실주의적인 그의 눈에는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후에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게 되었을 때에도 면전에서 통렬하게 비꼬았는데 다음 이야기는 그러기 전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맹자를 붙잡고 순우곤은 질문을 한다.
“남녀가 물건을 직접 주고받지 않는 것은 예의입니까?”
“예의입니다.”
“형수가 물에 빠지면 손으로 당겨줍니까?”
남녀칠세부동석(예기 내칙편)이라는 말이 말해주듯이 당시의 도덕으로는 남녀 간의 교섭은 꽤나 시끄러웠다. 그 중에서도 형수와 시동생 간의 관계는 특히 엄격히 규정되어있다. 그런 특별한 사이이지만 위급한 경우에는 손을 잡고 구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예의의 해석도 더 폭을 넓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승냥이의 소행입니다. 과연 남녀가 직접 손을 써서 주고받지 않는 것은 예의이지만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에 손으로 붙잡아 구하는 것은 방편입니다.”
방편-가령 수단 이것을 수우곤은 맹자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엄격한 예의에도 방편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왕도에 의한 천하의 통일은 이상이기는 하여도 지금처럼 천하가 위급한 때에는 이상적인 형태만을 고집하지 말고 방편을 써서라도 임기응변으로 천하의 안정을 꾀해야 하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 자신이 더욱 현실의 혼탁함에 다가설 필요가 있지 않은가.
“지금은 천하가 물에 빠진 것과 같은 상태인데 어찌하여 선생님은 구제하지 않는 것입니까?”(이루장구상17)
“형수가 불에 빠졌다면 방편이 있습니다만 천하가 물에 빠진 것을 구하기에는 정도에 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손으로 천하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순우곤이 든 예는 적절하지 않았다. 천하를 구하는 데에 방편은 허용되지 않는다. 제일로 스스로 몸을 바르게 하지 않고, 어찌하여 남을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정(政)은 정(正)이다. 스스로를 바르게 하여 남을 바르게 할 것을 도외시하고 정치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맹자의 심경이었다. 이리하여 순오곤의 맹자 비판은 허무하게 끝이 난 것이다.
28) 연나라가 내란에 빠지다
맹자가 제나라로 옮겨와서 약 2년이 지난 선왕 4년(BC316)에 제나라 북방 인접국인 연(燕)나라에서 그 왕인 쾌(噲)가 재상인 자지(子之)에게 정당한 이유도 없이 왕위를 양보한 때문에 국정이 문란해지는 사태가 일어났다. 일의 시작은 종횡가인 소진(蘇秦)과 그 아우인 소대(蘇代)에게 있다. 소진은 일찍이 6국(韓, 魏, 趙, 燕, 齊, 楚)을 동맹시키는 데 성공하여 그 6국의 재상이 된 사람이다. 연나라에 있을 때 자지(子之)와 혼인관계를 맺은 일이 있고, 그런 관계로 아우인 소대도 자지와 친히 지내고 있었다. 소진이 죽은 후 연나라 왕 쾌(噲)는 초나라,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와 함께 진(秦)나라를 침공했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그 무렵 자지는 재상으로서 활약하고 이미 국사를 독재하고 있었다. 마침 소대(蘇代)가 제나라 사자로서 왔을 때 연나라 왕 쾌는 그에게 제나라 왕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제나라 왕은 도저히 패자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대하여 그 이유를 물으니 말하기를
“제나라 왕은 그 신하를 신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연나라 왕 쾌는 점점 자지를 신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실은 소대와 자지와의 모략이었다. 곧 소대는 자지의 지위를 높일 계획을 가지고 회답했던 것이다.
그 후 녹모수(鹿毛壽)라는 사나이가
“나라를 재상인 자지에게 양보해 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요임금이 현자로서 추앙 받은 것은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양보하였기 때문입니다. 허유는 그것을 받지 않았으므로 요임금은 천하를 양보했다는 명예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천하를 잃지는 않았습니다. 임금님이 나라를 자지에게 양보하여도 자지는 이것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임금님이 요임금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고 선동하므로 연나라 왕 쾌는 자지에게 나라를 위촉하고 말았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왕은 그의 신하였던 익(益)을 자신의 후계자로서 천거하고, 아들 계(啓)의 측근을 익의 부하를 삼았습니다. 노년이 되어서 계로서는 천하를 맡기기에는 부족하다고 하여 익에게 전했습니다. 그 후 계는 무리를 지어 익(益)을 쳐서 천하를 빼앗았습니다. 그 결과 천하 사람들은 우왕은 명목만 천하를 익에게 전하여 실은 자기 아들 계에게 넘겨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임금님은 국정을 자지에게 위촉했다고 하지만 관리는 태자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고서는 국정을 다스린다는 명목만 자지에게 있어서 실은 태자가 국사를 다스리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말하므로 연나라 왕 쾌는 3백석 이상의 봉록을 받고 있는 관리의 임명권 모두를 자지에게 주었다. 그리고 자지는 남면하여 왕의 하는 일을 행하고 쾌는 은퇴하여 정치를 하지 않고 신하가 되고 말았다. 이런 바보스러운 일을 하고 국가가 편안히 다스려질 까닭이 없다. 3년이 지나자 국정이 어지러워져서 백성의 원망의 소리가 나라 안에 높아졌다. 이리하여 연나라는 내란 상태로 빠진 것이었다.
29) 연나라 내란에 개입하다
이웃 나라 연나라의 내란에 제나라가 무관심할 이가 없다. 내란 소식을 들은 제나라 장군들은 서둘러 협의한 결과“이 기회에 연나라를 치면 반드시 연나라를 패망시킬 수가 있다.”고 상주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야심에 불타고 있던 선왕은 서둘러 연나라 태자 평(平)에게 사자를 파견하여
“태자의 이번 행동은 마치 사심을 버리고 공공의 마음에서 군신의 의를 관철하여 부자의 의를 분명히 하려는 데에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과인의 나라는 소국이라서 충분히 원조할 힘이 없지만 어떻든 태자의 명령에 따라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에 힘을 얻은 태자 평은 점점 무리를 모으고, 장군 시피(市被)는 왕궁을 포위하여 자지를 공격했으나 승리를 쟁취할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자그만 일로 태자 평과 장군 시피가 쟁투를 하게 되어 마침내 장군 시피가 전사하였다. 그리하여 태자 평과 자지가 대치하게 되었는데, 수개월이 경과하여 수 만 명의 사자를 내었으나 승패가 가려지지 않았다. 연나라 백성은 공포에 떨었다.
30) 연나라를 침공하다
이런 무렵 심동(沈洞)이라는 사나이가 비밀리에 맹자에게 질문하였다.
“연나라를 쳐야 합니까?”
맹자는 이 수년간의 연나라 사정에 매우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백성의 지지도 없는데-- 백성의 소리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국정을 주고받는 일이 있단 말인가. 연나라의 지배자들은 일부러 그런 것이다. 하고 매우 화를 내고 있었다.
“물론 쳐도 좋다. 연나라 왕 쾌는 연나라를 멋대로 남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자지는 또한 쾌로부터 연나라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일부러 그런 일을 저질렀다. 가령 관리 중에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당신이 무단으로 왕에게는 비밀리에 그 관리에게 당신의 벼슬을 주고, 그 관리도 왕의 명령도 없는데 제 마음대로 당신의 벼슬을 받았다고 하면 어떨 것인가. 쾌와 자지가 행한 일은 그와 다르지 않다. 그런 무도한 짓을 태연히 행하였으므로 물론 연나라를 쳐도 좋다.”
이 말을 전해들은 선왕은 연나라를 치려고 결심하였다. 그 때까지는 다소 맹자의 눈치를 보았던 것이다. 선왕 6년(BC314) 제나라 대군은 연나라에 쇄도하였다. 그런데 연나라는 처음부터 제나라 군대에 대하여 전의가 없고, 성문은 열린 채로 기쁘게 제나라 군대를 맞았다. 연나라 왕 쾌는 죽고 자지는 도망하여 제군은 대승리를 거두었다.
31) 연나라를 병합함은 패자의 소업이다
“이번 대승은 매우 기쁘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과인에게 연나라를 병합하지 말라 하고 또 어떤 사라들은 병합하라고 하오. 만승의 나라가 만승의 나라를 쳐서 겨우 50일 정도의 단기간에 패망시킨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오. 아마도 하늘이 도와준 것이오. 그렇다면 병합하지 않으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고, 하늘의 재앙을 맞지 않을 수 없다 할 수 없소. 병합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맞는 일이 아닐까요.”
싸움이 끝나서 이것이 선왕이 맹자에게 한 첫 소리였다. 선왕은 처음부터 연나라를 병합하여 영지를 확장하고 위세를 높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열렬히 왕도정치를 부르짖는 맹자로부터 그것은 패자의 소업에 속하는 것이라고 비난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병합을 주저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게 했다. 하늘의 뜻이라는 것을 내세워 자기에게 형편이 좋을 대로 주장을 꾸며낸 것이기도 하다. 연나라를 치는 것을 맹자는 바른 일이라고 단정했다. 위정자가 그 임무를 잊고 백성을 토탄에 빠뜨리는 것은 어떻게든지 용서할 수 없다. 그런 만큼 전후의 처리가 연나라 백성을 고통으로부터 해방하여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면 맹자로서는 무의미한 일이다.
“만일 제나라가 연나라를 병합하는 것을 연나라 백성들이 기뻐하여 희망하는 것이라면 병합하십시오. 옛날 성왕으로서 그런 방법을 취한 사람이 있습니다. 포학한 주(紂)임금을 치고 은(殷)왕조를 멸망시키고 새롭게 주(周)왕조를 연 무왕이 그입니다. 만일 병합하는 것을 연나라의 백성들이 희망하지 않으면 병합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 또한 옛 성왕으로서 그런 방법을 취한 사람이 있습니다. 천하를 3분하여 그 2를 영유하면서 백성의 마음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여전히 은(殷)왕조에 벼슬을 한 주나라의 문왕이 그입니다. 만승의 나라인 제나라가 같은 만승의 나라인 연나라를 칠 때 연나라 백성이 단사호장(簞食壺漿=음식을 광주리에 넣고 음료를 병에 담아서) 으로 제나라 군대를 환영하기 위하여 온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받은 자기 나라의 악정-곧 물과 불같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나라가 연나라를 병합한 결과로 물은 점점 깊어지고, 불은 점점 뜨거워지듯이 연나라 백성의 괴로움이 증대된다면 그들의 마음은 제나라를 떠나 다른 데로 귀속될 뿐입니다.”(양혜왕장구하10)
32) 연나라 병합이 아닌 어진 정치를
선왕은 이 맹자의 말을 자신의 형편에 좋도록 받아들여 연나라를 병합하였다. 그런데 당연한 일이지만 이 병합에는 상당한 잔학행위가 있었다. 제나라는 원래 큰 나라였다. 그것이 연나라를 병합하면 그 위세는 배가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여러 나라들은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를 비롯하여 진나라나 초나라까지 연나라를 도와서 제나라를 치려고 하는 기운이 일어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힘을 의지하는 것은 보다 강력한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사태에 선왕은 황당했다.
“제후 중에는 과인을 치려는 자가 많소. 어떻게 하면 그 움직임을 그치게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단지 70 리 사방 밖에 없는 작은 나라를 일으켜서 천하를 통일한 성왕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그입니다. 그러나 임금님처럼 천리 사방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영유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들은 일이 없습니다.
서경의 중훼지고편(仲虺之誥篇 )에는
<탕왕은 토벌군을 일으켜서 갈(葛=중국 고대 나라, 하남성 규구현동북)나라부터 정벌하기 시작하였다.>
라고 있습니다. 당시 천하의 백성은 탕왕의 정벌이 포학무도한 군주를 징계하여 백성의 괴로움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동쪽을 치면 서쪽의 야만인까지 원망하고, 남쪽을 치면 북쪽 야만인까지 원망하여 <탕왕은 어찌하여 우리나라를 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있는 것일까 빨리 와주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탕왕을 기다리기를 마치 가문 날에 비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실로 탕왕의 토벌은 백성을 괴롭히지 않고, 그 평화로운 일상생활을 어지럽히지 않은 것이라서 백성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고 상인은 상점을 열고 농민은 평상시와 같이 농사일을 한 것입니다. 비도의 군주를 징계하여 학정으로 괴로워하는 백성을 위로하고 계절에 맞는 단비와 같았으므로 백성의 기쁨은 대단했습니다.
서경의 같은 편에
<우리 임금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임금이 오면 우리는 소생하겠지.>
라고도 했습니다.”
맹자의 회답은 통렬했다. 천리 사방의 대국을 영유하고 있으면서 왜 흉흉해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보라. 탕왕을. 미미한 소국을 일으켜서 천하를 통일하지 않았는가. 탕왕과 선왕은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백성의 신망의 유무이다. 악정을 행하는 폭군을 징계하여 학대 받는 백성을 구해낸 탕왕에게는 천하 만민의 신망이 모여졌다. 천하 통일은 그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선왕은 분명히 연나라 백성에게 상처를 입힐 것이 아닌가. 한숨을 돌린 맹자는 날카롭게 그 점을 지적한다.
“지금 연나라 위정자들은 제 마음대로 정권을 주고받고 그런 때문에 국정을 어지럽혀 백성을 학대했습니다. 이런 때에 임금님은 출병한 것입니다. 연나라 백성은 당연히 자기네를 물과 불 같은 고통 속에서 구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하며 음식을 광주리에 담고 음료를 병에 담아서 모처럼 임금님의 군대를 환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연나라 백성의 절실한 기대를 배반하고 임금님의 군대는 그들의 부형을 학살하고 자제를 포박하고 연나라 종묘를 파괴하여 보물들을 약탈하여 제나라로 옮긴 것입니다. 그러고서 좋을 수가 있겠습니까. 천하의 나라들은 처음부터 제나라가 강대함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이제 다시 제나라가 연나라를 병합하여 영토를 2배로 확장하고 게다가 인정을 베풀지 않는다면 제후들은 언젠가 침략 당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여 모의하고 제나라를 치려고 꾀할 것은 당연합니다. 곧 임금님은 스스로 만든 죄의 그늘에 스스로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왕은 말없이 머리를 숙였다. 그의 얼굴에는 야심과 수치와의 갈등에서 오는 고민의 표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임금님이여 당신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잊었는가.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인데 하고 맹자는 절절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시급하게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대책은 무엇이라고 해도 연나라에 어진 정치를 베푸는 것입니다. 임금님 그곳에 진주하고 있는 군대에 연나라의 노인이나 어린이를 무사하게 귀국시키고, 여러 가지의 보물을 그 나라 안에 두고 연나라 백성으로 하여금 알맞은 군주를 세우게 하고 온순하게 철수하도록 신속하게 지령을 내리십시오. 그렇게 하면 지금부터라도 제나라를 치려는 제후들의 꾀를 멈추게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양혜왕장구하11)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다. 빨리 어진 정치를 베풀어 연나라 백성을 해방하라. 아직도 선왕에게 희망을 걸고 맹자는 이렇게 절규하였으나 그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선왕은 연나라를 병합하고 어진 정치를 베풀지 않았다.
33) 연나라 부흥의 움직임
이리하여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연나라 백성들의 원성은 날로 높아지고. 그들은 끝내 태자 평(平)을 옹립하여 제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태자 평(平) 곧 소왕(昭王)은 연나라가 한 번 멸망한 후에 왕위에 올라 가지가지의 쓰라림을 맛보았으므로 항상 겸손한 몸가짐으로 대우를 두텁게 하여 현자를 초빙하고 제나라에 대하여 보복할 것을 마음속에 다짐하고 있었다.
그는 사부(師傅)인 곽외(郭隗)에게 말하였다.
“제나라는 우리나라의 난리에 편승하여 쳐들어와서 무리하게 우리나라를 병합했소. 과인은 연나라는 작은 나라로서 병력도 약하고 도저히 보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소. 어떻게 현명한 선비들을 찾아내고 국사를 함께 하고 우리 선군의 부끄러움을 씻고 싶소. 어떻게 선생님도 적당한 인물을 찾아내는 데 노력해주시오. 만일 적당한 사람을 찾으면 과인은 그 인물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오.”
이 때 곽외가 대답한 유명한 말은 <외(隗)로부터 시작하지요.>라는 말이다. 곧 곽외는“임금님이 마음속 깊이 뛰어난 인물을 초빙하기를 희망하신다면 먼저 이 외 곧 곽외를 후히 대접하는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러하면 현명한 선비는 천리를 머다 하지 않고 모여들 것입니다.”
34) 불의를 칠 수 있는 자젹
연나라 백성이 소왕을 중심으로 하여 제나라에 반기를 들면, 제후의 지원도 있어서 이번에는 제나라가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자 제나라 조정 안팎에서는 도대체 누가 처음에 연나라를 칠 것을 주장했는가 하는 논의가 일어나고, 그것은 맹자라는 소문이 높아져서 그 결과 맹자를 비난하는 무리가 나타났다. 그런 무리의 한 사람이 어느 날 맹자를 붙잡고 따졌다.
“당신이 임금님에게 권해서 연나라를 치게 했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런 일은 없소. 일찍이 심동(沈洞)으로부터 연나라를 쳐야 합니까? 하고 질문이 있어서 쳐서 좋다고 대답한 일은 있소. 대충 그것이 소문의 씨가 되었을 것이요. 그 때 심동은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는 자가 쳐야 하느냐 하고 거듭 묻자 하늘의 사도-왕자라면 쳐도 좋다고 회답하려고 생각했었소. 이제 여기에 사람을 죽인 자가 있다고 하자, 누가 그 가해자를 죽여야 하는가 하고 질문한다면 나는 곧 죽여도 좋다고 대답했을 것이요. 그 사람이 거듭 누가 그 가해자를 죽여야 하는가 하고 질문한다면 사법장관이라면 죽여도 좋을 것이라고 했을 것이요. 그것과 같은 것이요. 연나라는 무도한 정치를 행하여 국정을 문란하게 하였소. 그런 때문에 백성은 고생했소. 이런 연나라는 쳐야 한다. 그리고 그 백성을 괴로움으로부터 구출해야 하오. 그런데 무도한 연나라를 쳐야 할 유도자 곧 훌륭한 어진 정치를 베풀 수 있는 자 곧 하늘의 사도인 왕자가 아니면 안 되오. 지금 제나라는 연나라를 쳐서 병합하였소. 그러나 그 제나라는 연나라와 같이 무도하오. 변함이 없이 연나라 백성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요. 내가 연나라를 치라고 선왕에게 권할 이유가 없지 않아요.”(공손추장구하8)
국정을 문한하게 해서 백성을 괴롭힌 연나라, 그 위정자는 왕도정치의 입장에서 용서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니까 맹자는 연나라를 토벌하는 것에 찬성한 것이다. 그러나 연나라를 친 제나라는 어진 정치를 베풀어 백성을 고통으로부터 구해내어야 할 중대한 임무를 져버리고 단지 연나라의 영토를 병합하여 자신의 위세를 높이는 데만 열중했다. 일찍이 제나라가 하늘의 사도인 왕자가 되리라고 기대한 맹자는 매우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35) 그릇된 정당화
야심을 불태워 모처럼 수중에 넣었지만 반란이라는 우려스러운 사태를 당하여 과연 선왕은 맹자에 대한 참괴(慙愧)의 정을 느꼈다. 그때 맹자의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가 일었다. 선왕은 대부인 진가(陳賈)에게 속삭였다.
“아. 과인은 맹 선생에게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진가라는 대부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으로서 적당히 선왕을 위로하고 맹자에게 변명할 역할을 맡아 나섰다.
“임금님, 심려 놓으십시오. 임금님은 스스로와 주공(周公)과를 비교한다면 누가 인자이고 또 지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말하느냐. 비교도 되지 않은 일이다. 주공은 성인이 아니냐.”
“그 주공마저 인지(仁智)에 결함이 있었습니다. 주왕조가 발족함에 이르러 주공은 주(紂)왕의 아들인 무강록보(武康祿父)를 제후로 봉하여 은(殷)나라의 제사를 계승시켜 자신의 형인 관숙(管叔)을 그 후견인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이 즉위하게 되자 관숙이 무강록부를 옹립하여 주왕조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만일 주공이 관숙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알고 있으면서 은나라의 후견인으로 삼았다면 참으로 불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만일 모르고 관숙을 등용한 것이라면 참으로 부지의 일입니다. 곧 인지(仁智)라는 점에서는 주공이라 하여도 불충분했습니다. 하물며 임금님이 이런 점에서 결함이 있다 하여도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연나라에 대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과실이라서 크게 마음에 둘 일은 아닙니다. 한 가지 제가 맹 선생을 뵙고 임금님을 위하여 변명을 하고 오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 진가가 이 일로 맹자를 찾아갔다.
“선생님께 여쭙겠습니다. 주공은 어떤 인물입니까?”
“옛날 성인입니다.”
“주공은 관숙에게 은나라의 후견인을 삼았는데 관숙은 무강록부를 옹립하여 반기를 들었다 하는데, 참으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주공은 관숙이 반기를 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은나라의 후견인을 삼았을까요?”
“아니요, 몰랐었습니다.”
“그렇다면 성인도 과실을 저지르는 수가 있는 것입니까?”
맹자는 잠시 진가를 바라보았다. 진가는 매우 신비스러운 듯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과연 그러한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대체 이 사나이는 한 번도 나하고 진지하게 말해본 일이 없다. 언제나 인사만을 하고 가버렸었다. 아마도 마음속에서는 나를 무시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나의 의견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속으로 비웃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선왕에게는 아첨하여 자의로 내가 모처럼 선왕에게 설명하여도 바탕부터 부정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성인이라도 과실을 저지르는가 하고. 다음에는 성인이라도 그러하니까 선왕은 연나라일로 실패해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과실을 저질러놓고 그것을 정당화 하려는 것인가.
“주공은 아우이고 관숙은 형입니다. 동생으로서 형을 신뢰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 자연스러운 육친의 정에서 주공은 관숙의 모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주공이 과실을 저지른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또 옛날의 훌륭한 지식인은 과실을 저지른 경우에는 반드시 고쳤는데, 지금의 지식인은 과실을 저지르면 끝까지 버티려 합니다. 옛날의 지식인은 과실을 저지르면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서 감추려고 하지 않으니까 백성들은 곧 그것이 과실이라는 것을 알고 이지러진 해와 달이 회복되듯이 과실을 고쳐 나아간다면 백성은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지식인은 과실을 저지르고서는 끝까지 버티려고 할 뿐 아니라 정당화하려고까지 합니다.”(공손추장구하9)
과연 내로라하는 진가(陳賈)도 이렇게 공격을 당하고서는 그 이상 변명을 할 수가 없어서 서둘러 사라졌다. 그런데 진가를 보낸 후에 어두워지는 방안에 등불도 켜지 않고 맹자는 숙연히 방안에 앉아있었다. 가만히 감은 눈에는 선왕의 모습이 비친다.
이 왕에게 의탁하여 자신은 왕도 세계를 실현하려고 악착같이 설명해 왔다. 어떤 때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설명하고, 어진 정치의 형태를 설명하고, 현인 등용의 요체를 설명하고, 또 어떤 때는 걱정과 즐거움을 백성과 함께 해야 한다고도 설명하여 인덕과 군주의 관계를 설명해 왔다.
36) 쓸모없는 사람 주(紂)를 주살했다
그래 그것은 언제였던가. 매우 열이 오른 말로 선왕을 놀라게 한 일도 있다.
“은나라 탕왕은 하(夏)나라 걸왕(桀王)을 추방하고,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벌했다고 하는데, 참말로 그런 일이 있었던가?”하고 선왕이 묻기도 하였었다.
“그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했더니 왕은 생각 밖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탕왕이나 무왕은 후세에 성인이라고 추앙받고 있는데, 신하이면서 군주를 시해해도 괜찮은 것인가?”고 질문하기도 하였다.
“인(仁)을 해치는 사람을 적(賊=도둑)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사람을 잔(殘)이라고 합니다. 잔적(殘賊)인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그 쓸모없는 사람인 주(紂)를 주살했다고는 듣고 있어도 군주인 주(紂)를 주살했다고는 듣지 못하였습니다.”(양혜왕장구하8)
하고 대답했다. 고래의 천명사상으로 본다면 이것은 상식이다. 인간세계의 주재자인 천(天)은 스스로 움직여서 인간세계를 통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대리자를 인간세계에 둔다. 이것이 천자(天子)이다. 천자의 선출은 전적으로 백성의 소리에 따르는데, 그 시대의 최고의 유덕자에게 천명이 내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천자가 되어도 덕-인의를 해친 경우에는 백성의 뜻은 뒤돌아서게 되고 천명을 떠나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몸은 천자의 위에 있어도 이미 천자는 아니고 단순한 필부일 뿐이다.
그 천자를 일반적으로 군주에 바꾸어 놓으면 훌륭하게 선왕에게도 맞는 것이다. 어떻든 덕을 쌓으십시오. 그것만을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으나 격한 표현을 썼기 때문에 선왕을 놀라게 한 것이다.
37) 귀척인 경-군주를 바꿀 수 있다.
그래그래, 또 있다. 그 때는 선왕을 성내게 하고 말았다. 대신(卿)에 대한 질문이었다. 단지 막연하게 경이란 어떤 것인가 하고 질문하였으므로
“임금님은 어떤 경(대신)에 대하여 질문하시는 것입니까?”하고 반문하자 화가 난 얼굴로
“경(대신)이라 하면 한 가지가 아닌가?”
하고 말했다. 그래서 경(卿)에는 귀척(貴戚)인 경(군주의 친척 대신)과 이성(異姓)의 경(군주와 혈연관계는 없어도 유덕하여 천거된 대신)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자 이번에는
“귀척의 경이란 어떤 것인가?”하고 질문했다.
“군주에게 큰 과실이 있으면 간언하고, 자주 간언해도 듣지 않으면 그 군주를 추방하여 일족 중에 현자를 군주의 위에 앉히는 것이 임무입니다.”
라고 대답했는데, 이때 선왕은 화를 내어 얼굴빛을 바꾼 것은 군주를 추방한다는 말이 매우 마음에 걸린 것이었을 것이다. 그 이상 불온한 말을 한다면 그냥 두지 않는다는 분위기였다.
“임금님 다른 뜻이 있어서 말한 것은 아닙니다. 언짢게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문하신 일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하고 설명한 것이다. 그러자 선왕은 평정한 얼굴로 돌아와서 다시 이성의 경에 대하여 질문했다.
“군주에게 과실이 있으면 간언하고 자주 간언을 해도 듣지 않으면 사직하고 떠날 뿐입니다.”
그렇게 대답한 것인데, 그 때에도 요컨대 덕을 쌓으십시오. 유능한 선비는 군주의 덕 여하에 따라 모이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니까 하고 호소했던 것이다. (만장장구하9)
38) 아직도 선왕에게 기대한다
이때는 이러했고 저때는 저러했다고 아직도 회상할 씨는 그치지 않는다. 이 수년간 자신은 항상 선왕에게 기대를 걸어 왔다. 틀림없이 선왕에게는 기대할 만한 점이 있다. 아니 지금도 있다. 그러나 연나라에 대하여 취한 정책은 나로 하여금 제나라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빼앗아갔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일루의 희망을 선왕에게 이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진가의 방문을 받고 저런 문답을 하고 나서는, 지금은 제나라를 떠나는 길밖에 없다.
<아아. 군주가 과실이 있으면 바로 간언해야 한다. 이것을 반복해도 듣지 않으면 떠나간다.> (만장장구하9)
밤의 장막이 내려지고 어둠에 싸인 가운데 맹자는 의연히 앉아있었다.
39) 선왕이 찾아오다
맹자가 제나라를 떠난 것은 정확히는 언제인지 모른다. 주(周)나라 난왕(赧王) 원년(BC314)이라는 설도 있고, 또 3년(BC312), 4년(BC311)이라고도 한다. 제나라가 연나라를 병합한 것이 난왕 원년으로 그 4년에는 맹자는 확실히 송(宋)나라에 있었다는 것을 보면 BC314년에서 BC311년 사이에 제나라를 떠난 것일 것이다.
일찍이 위(魏)나라의 양왕(襄王)에게 실망했을 때는 맹자는 쉽게 위나라를 떠났는데, 제나라를 떠나는 데에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진가(陳賈)를 보낸 후 밤 뜬 눈으로 날을 새면서 생각한 나머지 일단은 추(鄒)로 귀국할 생각이었으나 차마 떠날 수가 없어서 새가 날아가듯이 떠나지 못한 것이다. 그것도 언제부터 임명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경(卿)으로 임명을 받은 맹자는 사표를 제출해서도 얼마 동안 임치(臨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맹자를 아까워한 선왕이 모처럼 그의 숙사에까지 찾아왔다.
“일찍이 선생이 우리나라에 오기 전 선생의 현자다움을 듣고 꼭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쉽게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소. 그 후 같은 조정에 있게 되어 매우 기뻐하였소. 그런데 이제 나를 버리고 귀국한다고 하니 매우 섭섭하오. 금후에 다시 만날 수가 있을 것인가?”
“제가 원함을 말하지 못할 뿐입니다. 임금님이 마음이 그러시다면 저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공손추장구하10)
40) 부귀를 원하는가
이 회답을 받은 선왕은 은근히 희망을 가졌다. 그 후 며칠이 지나서 선왕은 시자(時子)라는 가신을 불러서 맹자를 붙잡도록 의뢰하였다.
“과인은 국도 임치의 한가운데에 대저택을 짓고 그것을 맹 선생에게 제공하여 일만 종의 봉록을 드리고 제자들을 양성해주고 대부들과 일반 백성에게도 선생을 스승으로 우러르고 나라 안을 덕화해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대는 수고스럽지만 그렇게 한번 말해 보아 주지 않겠는가.”
어떻든 선왕은 대단한 우대책을 강구하고 맹자를 붙잡고자 하였다. 시자는 맹자의 제자인 진진(陳臻)을 통하여 그런 뜻을 맹자에게 전하였다.
“시자는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군. 실은 나는 경(卿)으로 임명되었을 때 전후를 통하여 이것저것 십만 종의 봉록을 받게 되었었는데, 모두를 사퇴하였다. 만일 내가 부를 욕심내는 사람이라면 먼저 십만 종을 사퇴하고서 새로 십만 종을 받을 까닭이 없지. 그래도 내가 부를 욕심내는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계손(季孫)이라는 사나이가 자숙의(子叔疑)라는 사나이를 비평하여 <자숙의는 이상한 사나이이다. 자신이 요직에 있으면서 면직당하면 그저 그만두었으면 좋았다. 그런데 다시 그 자제를 경으로 하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부귀를 바라는 것인데, 그 중에는 부귀를 독점하려고 하는 천박한 근성의 사람도 있다. 옛날 시장은 유무교환이 원칙이라서 관리는 그것을 감독할 뿐이었다. 그런데 비열한 근성의 사나이가 있어서 반드시 시장 안의 언덕을 찾아서 오르고 여기저기를 바라보아 이익이 되는 것을 찾아서는 독점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 사나이를 경멸하고 하는 수 없이 그 사나이에게 과세하게 되었다. 과세한다는 것은 이 비열한 근성의 사나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리 우대책을 강구해주어도 부귀를 연연하여 독점하려고 하는 짓을 나는 할 수 없다.”(공손추장구하10)
왜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려 하는 것일까. 그가 품은 왕도정치로 나아가려는 주장이 조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나라에 어진 정치를 행하려는 노력이 조금도 선왕에게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어진 정치로 나아가자고 결의를 하고 있다면 선왕은 우대책으로 맹자를 붙잡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맹자를 잃는 것은 아깝다. 그렇다고 모처럼 손에 넣은 연나라를 놓아버리는 것은 더욱 아깝다. 연나라를 병합함으로써 국력을 배가하고 더욱 국력을 강화하여 제후의 패자가 되고 싶다. 그러나 또 어진 군주라 일컬음을 받고도 싶다. 모름지기 선왕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마음이 교차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든 선왕은 왕도정치를 실천한다거나 실천하려고 노력한다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러고서는 필경 맹자는 제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다.
41) 군자의 생각과 소인의 생각
맹자가 제나라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마음속으로부터 그를 흠모하던 제자들 중에는 어디까지나 스승과 함께 하겠다고 결의한 자가 적지 않았다. 공손추(公孫丑)나 공도자(公都子)도 여행 준비에 바빴다. 또 제나라 조야의 선비들 중에는 헤어짐을 아쉬워하여 인사를 오는 사람이나 완고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유머러스한 순우곤(淳于髡)이 들렀다.
“세상에는 명예나 공적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세상을 위하여 사람을 위하여 힘을 다하려 뜻을 두고 있습니다. 또 명예나 공적을 경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은퇴하여 자기 자신 한 사람의 생활을 즐기려고 합니다. 나는 그 어느 것도 있어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 되는 것은 그 어느 쪽에도 철저하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사는 것입니다. 선생은 제나라의 대신이면서 그 위아래 사람들에 대하여 명예도 공적도 아직 나타내지 못한 채 사직하고 제나라를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인자(仁者)>란 그렇게 쓸모없는 것입니까?”
왕도정치의 기치를 높이 걸고 시대를 구제할 것을 주창하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도망가는 것인가. 인자란 그렇게 한심한 것인가. 순우곤의 요설은 처음부터 날카롭다.
“백이(伯夷)는 은나라 폭군 주왕(紂王)을 피하여 은둔하여 세상을 떴습니다. 결국 백이는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현명함을 견지하여 어리석은 군주에게 벼슬하지 않고 정도를 지켜냈습니다. 이윤(伊尹)은 한(夏)나라 폭군 걸왕(桀王)에게 다섯 차례 벼슬하고, 은나라 현군인 탕왕(湯王)에게도 다섯 차례 벼슬했습니다. 결국 이윤은 선정 하에서도 악정 하에서도 벼슬하면서도 항상 정도를 실천하려고 하였습니다. 유하혜(柳下惠)는 춘추시대의 노(魯)나라에 벼슬하였으나 당시 노나라는 소국이었고 어리석은 군주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리석은 군주라도 미워하지 않고 주어진 낮은 관리의 자리에 있으면서 보잘것없는 소인들과 교제하며 스스로의 정도를 관철시켰습니다. 이들 세 사람은 각각 길은 달랐지만 그 바라는 바는 같았습니다. 곧 인(仁)입니다. 군자는 그저 인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 나타내는 방법은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고자장구하6)
나도 인(仁)을 목표로 하였다. 인을 목표로 하였기에 제나라를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표면적인 행동을 보고 가볍게 비판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뜻을 담은 맹자의 대답이었는데, 순우곤은 더욱 공격의 손을 놓지 않는다.
“노나라 무공(繆公) 시대에는 공의자(公儀子)가 재상이었고 자류(子柳)나 자사(子思)가 신하로 있었습니다. 이들은 현자로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런 현자들이 정치의 중추에 있으면서 노나라는 사방의 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아 영토를 잃고, 급속히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현자라는 사람들이 나라에 이익이 되지 않음은 이런 것입니까?”
현자 현자라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조금도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순우곤의 가혹한 핀잔에 대하여 맹자는 춘추시대의 백리해(百里奚)를 끌어내어 받아친다.
“우(虞)나라(산동성 평륙현동북)는 백리해를 등용하지 않아서 망했고, 진(秦)나라 목공(穆公)은 그를 등용하여 제후를 칭하였습니다. 이처럼 현자를 등용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하고, 망하지 않고 영토를 깎이는 정도로 끝내려 하여도 그렇게는 못합니다.”
백리해는 오고대부(五羖大夫)라 일컬어진 우(虞)나라 출신의 현인으로 후에 진나라에 들어가서 서기전 7세기의 중반쯤에 진나라 목공을 도와서 패자가 된 공신인데, 맹자는 이 사람을 매우 존경했던 것 같다.
“(백리해는) 우(虞)나라 군주는 이윽고 멸망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노나라를 떠난 것은 지자라는 증거이다. 우연히 진나라 목공(穆公)에게 등용되어 목공이 함께 일을 할 만한 군주라 알아보고 보좌했으므로 이것도 지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후 진나라 재상이 되어서 그 군주를 천하에 드러나게 하고 후세에 전해지게 하였다. 도저히 현자가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만장장구상9) 라고 제자인 만장에게 상찬한 일이 있다.
그것은 어떻든 이처럼 시원하게 말을 주고받았지만 순우곤은 점점 거칠게 물어 늘어진다.
“옛날 위(衛)나라에 왕표(王豹)라는 명수가 있었습니다. 기수(淇水) 가에 살고 있었는데, 노래를 매우 잘 불렀습니다. 그 감화를 받아서 하서(河西=하남선 북부, 황하의 서쪽이라는 뜻) 지방의 주민은 모두 노래를 잘 부르게 되었습니다. 또 제나라의 면구(緜駒)도 뛰어난 가수였습니다. 고당(高唐=제나라의 서부, 산동성 우성현 서남)에 살았기 때문에 제나라 서부일대의 주민도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또 제나라 화주(華周), 기량(杞梁)이라는 대부가 있었는데, 야만인을 토벌할 때 거(莒=산동성 거현. 제나라 속국)에서 전사했습니다. 그러자 이 두 사람의 아내는 각각 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여 마음으로부터의 순수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이 너무나도 청순하였기 때문에 일국의 풍속이 순화한 것입니다. 이처럼 속에 있는 힘은 반드시 밖으로 나타나는 법이라서 훌륭한 사업을 이룩하면서 그 공적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지금의 세상은 현자가 없는 셈이지요. 있다면 내가 모를 이가 없습니다.”(고자장구하6)
찌르는 듯이 맹자에 대하여 핀잔을 준다. 그러자 맹자는 이번에는 공자를 방패로 하여 응수한다.
“노(魯)나라 정공(定公) 시대에 공자는 사구(司寇)였는데, 치적은 크게 올라왔습니다. 제나라는 노나라가 대두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어떻게라도 하여 그 국정을 어지럽히려고 요염한 여악(女樂=여자 가무단)을 보냈습니다. 노나라의 당시 실권자였던 계환자(季桓자)는 그 여악에 마음을 빼앗겨 정공을 꼬여서 연일 구경하고 중대한 임무를 태만했습니다. 이때 공자는 정도에서 벗어남을 한탄하여 노나라를 떠나려 결심했는데. 일을 바로 잡아서 주군인 정공의 악을 표면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조용히 떠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기회가 왔습니다. 교제(郊祭=제천의식)가 행해지고, 공자도 정공을 따라 종묘에 임했는데, 제사가 끝나서 당연히 분배되어야 할 제육이 어떤 때문인지 공자에게는 분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공자는 그 의식의 복장인 채로 제관(祭冠)도 벗지 아니하고 총총히 노나라를 떠났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제육이 분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사정을 아는 사람은 예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였으니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정공의 악을 표면화하지 않으려고 공자는 자신이 벌을 받을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에게 제육이 분배되지 않은 것은 바꾸어 말하면 교제가 완전한 형태로 행해지지 않았던 것은 그 제사에 종사한 이상은 자신에게도 죄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공자는 스스로의 죄를 의식함으로써 노나라를 떠난 것인데 그것은 좀처럼 범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갚은 생각이었던 것입니다.”(고자장구하6)
맹자는 신랄한 순우곤의 요설을 이렇게 하여 물리쳤다.
-- 이제 제나라를 떠남에 있어서 내 마음에는 비통함을 숨기고 있으나 당신들은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윽고 순우곤을 보내고 나서 맹자는 창에 기대어 뜰의 초목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의 얼굴에는 무엇인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42) 떠나는 길 여관에서 3일 간 묵다
이 길은 맹자가 늘 다니던 길이다. 일찍이 그가 경(卿)의 지위에 있을 때, 등(縢)의 의식에 임하는 제나라의 정사(正使)로서 부사인 왕환(王驩)을 대동하고 당당하게 행렬을 지어 지나간 곳도 이 길이다. 노나라에 남기고 온 어머니의 부보에 접하여 급히 달려가서 성대한 장례를 집행하여 돌아온 길도 이 길이다. 그리고 그 날을 최후로 다시는 가지 않은 길인데, 맹자는 여러 사람의 제자들과 함께 묵묵히 걸어갔다. 이윽고 일행은 임치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숙역(宿驛)인 주(晝=산동성 임치현 서남)에 도착하여 3일 간 여관에 머물렀다.
그 삼일 동안에 다시 맹자를 제나라에 머물게 하려고 면회를 청한 사람들이 있다. 그 수는 꽤 많았던 듯하다.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에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나 상당한 지위에 있었던 선왕의 측근인 사람이 있었다. 맹자의 면전에 왔을 때 그는 바르게 앉아서 예의 바르게 희망을 말했는데, 맹자는 옆으로 누운 채로 대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불만스러운 듯이 말하였다.
“나는 선생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3일 동안 재계하여 심신을 닦아서 천지에 부끄러움이 없는 결백한 마음으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에게는 용무가 없다고 할 뿐 옆으로 누운 채로 들어주지도 않습니다. 그러고서는 다시 만날 생각은 없습니다.”
맹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사나이를 멈추게 하였다.
“자, 그리 화내지 말고 앉으시오. 당신이 진지한 만큼 나도 진지하게 말하지요. 옛날 노나라 목공(穆公)은 자사(子思)를 존경하여 스승으로 모셨는데, 그런 만큼 누가 자사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붙여두지 않으면 자사는 마음을 두고 머물러 주지 않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또 목공의 가신인 설류(泄柳)나 신상(申詳)은 뛰어난 현인이었는데, 그들은 주군 곁에 자사가 있어주지 않으면 안심하고 정무에 전념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의를 다하였으므로 목공은 자사를 곁에 머물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이 노인을 위한 배려는 설류나 신상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러고서는 당신 쪽에서 나를 절교한 셈이 됩니까. 내가 절교한 셈이 됩니까.”(공손추장구하11)
-이제 와서 그 정도의 성의로서 나를 머물게 할 수 있다면 어째서 이제까지는 성의를 다하지 않은 것인가. 너 같은 지위에 있다면 선왕과 나 사이에 얼마든지 알선할 수가 있지 않았는가. 지금은 늦었다. 너는 나의 태도가 무례하다고 하지만 나도 너를 무시하고픈 기분이다.--
이런 뜻을 마음에 품고 맹자는 말을 마쳤는데, 다시 옆으로 누운 그의 자세에는 어쩐지 개운치 못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43) 제나라를 떠난 후의 여운
해가 지고 나서 황혼이 비추듯이 맹자가 제나라를 떠난 후에도 그의 소문은 제나라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윤사(尹士)란 사람의 이야기도 그 한 예이다.
윤사는 제나라 사람인데 그는 그의 벗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맹자, 맹자란 매우 평판이 좋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대단한 인물은 아니다. 은나라의 탕왕이나 주나라의 무왕은 인덕을 가지고 천하를 통일한 성왕인데 우리 선왕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군주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면 맹자도 대단한 인물은 못되는 것이다. 또 알고 있으면서 제나라에 왔다면, 단지 봉록이나 받으려는 것이다. 모처럼 천리 먼 길을 찾아와서 선왕에게 알현하고 아무래도 의견이 맞지 않으니 떠나야 하겠다면서 3일이나 머뭇거리고 있다니. 미련이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런 놈은 싫다.”
이 말이 점점 전해져서 제자로부터 그런 야기를 들은 맹자는 탄식하여 말하였다.
“윤사 같은 사람이 어찌 내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천리 먼 곳에서 모처럼 와서 선왕을 알현한 것은 틀림없이 나의 희망에서였지만, 의견이 맞지 않아서 떠나는 것은 나의 희망에서는 아니었다.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3박을 하고서 주(晝)를 출발했는데, 그래도 마음속에서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선왕이여 또 한 번 생각을 바꾸어주실 수는 없습니까. 임금님이 생각을 바꾸어 주신다면 반드시 나를 불러주실 것이리라. 그런 기대를 가지고 주(晝)를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왕으로부터 사자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생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선왕에게 실망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선왕은 다시 충분히 선정을 베풀 수 있는 왕이다. 선왕이 나를 등용하여 나의 의견을 받아준다면 단지 제나라 백성이 편안하게 생활하여 행복해지는 것만이 아니다. 천하의 백성이 따라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선왕이시여, 또 한 번 생각을 바꾸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날마다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주를 간언하여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성낸 얼굴을 보이고, 떠나게 될 때는 해가 지기 전에 총총걸음으로 한 걸음이라도 멀리 군주로부터 떨어져서 숙박한다고 한다. 저 소인배들이 하는 것처럼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공손추장구하12)
후일 이 야기를 듣고 윤사는 자신은 참으로 소인이라고 부끄러워했다 한다.
44) 동란의 시대
사람이 말을 달리게 한다. 고삐를 조종하기에 따라 말은 달린다. 채찍을 치면 질주한다. 채찍이 강해질수록 말은 광분한다. 이미 고삐의 조종은 듣지 않는다. 사람이 말을 달리게 하는 것인지 말이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것인지, 어디를 향하여 달리는 것인지 사람은 모른다. 말도 모른다. 단지 기세가 향하는 대로 사람도 말도 광분할 뿐이다.--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이런 시대였다. 광분하는 시대이다 이제는 제후를 거느려야 할 주(周)나라 왕조는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 제후는 제각기 힘을 집결하여 힘과 힘이 격돌한다. 강자는 이기고 약자는 패한다. 패자는 부활하려 하고, 승자는 편안히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전란은 전란을 낳고 천하는 언제 안정될는지 모른다. 백성은 항상 불안하고 한 결 같이 고민에 허덕인다.
맹자가 제나라에 머물고 있던 수 년 간만 보아도 중국 세계에 전쟁이 없었던 해는 없다. 초, 조, 위, 한, 연의 오 개국이 동맹하여 진(秦)나라를 치고 눈부시게 함곡관(函谷關)을 공격한 것도 잠시 진나라의 반격을 받아 오 개 국의 동맹은 깨지고 이번에는 거꾸로 진나라가 한나라를 치고, 위나라를 치고, 조나라를 치고 있다. 혹은 제나라가 연나라를 치고, 초나라가 진나라를 치고, 진나라가 촉(蜀)나라를 치고 있다.
이런 동란의 세상 상황을 타고 각각 제자(諸子)들은 활약한다. 그들은 혀 한 장을 무기로 하여 제후들의 사이를 돌며 그의 현실적 요청과 타협하여 동란 속에 허무한 영달을 바란다. 일찍이 육국의 재상이 된 소진(蘇秦)은 전락하여 제나라에서 살해되고, 장의(張儀)는 다시 진나라의 재상으로 돌아가서 영화를 누렸다. 맹자는 본질적으로 이 사람들과는 달랐다.
-단지 제나라 백성이 편안하게 생활하여 행복해진다는 것만이 아니라 천하의 백성이 따라서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윤사의 비난에 대하여 대답한 이 말이 분명히 그의 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동란의 세계에서 허덕이는 백성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고, 천하 만민을 구제하려고 하는 우세제민(憂世濟民)의 뜻이 그의 일체의 원동력이다. 일신의 영달을 위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 통일 되고 순수한 뜻 때문에 그는 한 결 같이 왕도정치를 주장하고 설명한 것이다. 어진 정치를 주장한 것이다.
희생하는 소를 보고 나타낸 선왕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알고서 맹자가 선왕에게 품은 기대는 컸었다. 제나라의 국력과 선왕의 기량, 이 만큼 갖추고 있으면서 천하를 구제하지 못할 이가 없다. 이런 희망이 맹자를 수년 간 제나라에 머물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수년 간 그는 어진 정치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 열성적인 설교에도 불구하고 선왕은 시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노력하였음에도 돌아오는 바가 적은 스승에게 동정하여 일찍이 제자였던 한 사람이 선왕의 소질을 의심했을 때,
“선왕의 지혜롭지 못함을 이상히 여겨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아무리 발아하기 쉬운 것이라도, 하루 햇볕에 쪼이고서 십일 한기를 맞으면 발아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선왕에게 알현하는 기회는 적고, 내가 퇴출한 후에 측근의 사람이 왕의 어진 마음을 해치고서는 아무리 내가 왕의 어진 마음을 싹트기 쉽도록 해 두어도 어쩔 수도 없는 것이다.”
하고 한탄했는데 다시 말을 이어서
“혁(奕=바둑)은 쓸모없는 것이지만 그것이라도 전심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 혁추(奕秋)라는 사나이는 중국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인데, 그 혁추한테서 두 사람의 제자가 동시에 바둑을 배웠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제자는 혁추의 지도에 전념하고, 다른 제자는 배우기는 하여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기러기가 날아오는 계절이 되었으므로 기러기나 쏘아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면 함께 배우더라도 도저히 전자를 따를 수는 없다. 이것은 소질이 나쁜 때문일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다. 그와 같이 선왕이라도 소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측근에 있는 사람이 왕이 어진 마음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고자장구상9)
하고 선왕을 위하여 변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정도로 선왕을 생각하여 천하 만민을 위하여 주장하고 설명해 왔는데, 한 사람의 청순한 마음은 광분하는 시대에는 이기지 못한 것이다.
--선왕이시여, 어떻게 한 번 생각을 바꾸어주실 수는 없습니까. 임금님만 생각을 바꾸어 주신다면--
너무나 비통한 울림을 가지고 있어서 이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을 수 없다. 윤사가 자신은 소인이라고 하면서 부끄러워한 것은 당연하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의 <맹자순경열전(孟子筍卿列傳)>에는
“태사공(太史公=사마천) 이 말하기를, 내가 맹자를 읽고 양나라 혜왕이 무엇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겠는가?”하는 물음에 이르러서는 언제나 독서를 중단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利)는 참으로 난(亂)의 시작이다. 공자는 드물게 이에 대해서 말하면 항상 그 근원을 막았다. 그러므로 이를 따라서 행하면 원망을 많이 받는다.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를 좋아하는 폐해는 무엇이 다르랴.
“맹가(孟軻)는 추(騶) 사람이다. 자사(子思)의 문인으로 수학하였다. 도에 이미 통달하였고 제나라 선왕에게 유세하였다. 선왕이 등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양나라에 갔다. 양나라 혜왕은 맹가가 말하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를 인견해보니 하는 말들이 의미가 너무 멀어서 현실의 사정에 너무 어둡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 때 진나라는 상군(商君=상앙/商鞅)을 등용하여 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었고, 초나라와 위나라는 오기(五起)를 등용해서 싸움에 이기어 적을 꺾고, 제나라의 위왕(威王), 선왕(宣王)은 손자(孫子)와 전기(田忌)를 등용하여 동쪽 제후들이 제나라에 조공하게 하였다. 천하는 마치 합종연횡에 힘쓰고, 공격과 정벌을 현명하다 했다. 이에 맹자는 오로지 당우삼대(唐虞三代--요, 순, 하, 은, 주)의 덕을 주장하여 시세의 요구에 멀었기 때문에 어디서나 뜻을 다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물러서서 제자 만장(萬章)의 무리와 시경과 서경을 강술하고, 중니(공자)의 뜻한 바를 펴서 맹자 칠 편을 지었다.”(맹자순경열전)
이것이 맹자에 대한 전문이다. 세상을 걱정하는 뜻을 품고 고고한 도를 걸어온 맹자에 대한 서술로서는 너무나 간단하다. 그러나 이것으로 좋다.
--천하는 마치 합종연횡에 힘쓰고 공격과 정벌을 현명하다 했다. 이에 맹자는 당우삼대(唐虞三代- 요, 순, 하, 은, 주)의 덕을 말하였다. 이로써 뜻을 다하지 못하므로--
청순한 마음이 현실세계에 역할을 하기는 기회가 약하다. 그것은 항상 <뜻을 다하지 못하다.>라는 운명을 걷는다. 현실에서 현실로 이동함으로써 형성되는 인간 세상의 역사로서 그것은 흐름의 뒤에 허무하게 사라지는 물거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태어나서 죽고, 들고 나면서 바뀌어 인간의 세상을 구성하는 인간으로서는 그것은 가장 높은 거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것에 의하여 일체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제야 선왕에 대한 기대는 깨지고 미련이 남아서 잊어버릴 수 없는 마음으로 제나라를 떠난 맹자의 표정은 어둡다. 그 애처로운 얼굴빛을 본 제자인 충우(充虞)가 스승님은 제나라에 대하여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해하여 질문하였다.
45) 이 시대를 구할 자 나아니고 누가 있으랴
“제가 보기에 선생님은 무엇인지 불유쾌하게 느끼시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언제였는지 저는 <군자는 영욕득실에 구애 받지 않으니까, 어떤 경우를 당하여도 하늘을 원망하는 일이 없고, 사람을 원망하는 일도 없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선생님은 무엇인가에 구애받는 일이 없으십니까?”
“아니다. 그런 일은 없다. 저 요임금이나 순임금 같은 성왕이 훌륭하게 통치한 시대가 인간 역사의 일시기라면 현재처럼 혼란한 시대도 그 일시기인 것이다. 한편은 다스려지고, 한편은 어지러워서 그 양상은 두드러지게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도리에 따라 일관되고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5백년마다 반드시 유덕한 왕자가 일어나고 그 사이에는 반드시 왕도를 진흥시켜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주(周)왕조 초기의 성왕이었던 문왕(文王), 무왕(武王)이나 성인이라고 일컬어진 주공(周公)이 세상을 떠나서부터 현재까지는 7백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연수로 말하면 이미 5백년이 넘었고 또 시세로 보면 왕자가 나와서 좋은 때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천(天)은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것을 바라지 않는 모양이다. 만일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것을 바라고 있다면 이런 시대에 나를 빼고 누가 그것을 실현하겠는가. 그런 내가 원망 같은 것을 품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이러한 맹자의 자신은 모두 그 청순한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천하 만민의 고통을 나의 고통이라 생각하는 청순한 마음이 있어서 비로소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청순한 마음 그대로 맹자는 여러 나라를 돌지 않으면 안 된다.
--물러나서 만장의 무리와 시서를 짓고 중니의 뜻을 말하여, 맹자 칠 편을 지었다.
이러한 경지는 훨씬 후의 일이다. 제나라를 떠난 맹자는 일단 고향인 추(鄒)에 돌아갔으나, 그 땅에는 오래 머물지 않고 송(宋)나라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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