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란 한민족의 역사가 아니고
이민족의 역사를 계승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한민족의 유래는 한제국(漢帝國)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주변의 이민족을 흡수 감화하여 중국문명을 만들어내었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반한다. 중국의 역사는 끊임없는 민족. 인종의 혼합이고 실정은 이민족에 정복되어 통치됨으로써 이문화의 은혜를 받아서 한민족은 진보하였다.
다시 말하면 한조의 최성기에는 인구가 6,000만 명으로 헤아리는데 황건(黃巾)의 난 등의 후한말부터 이민족국가의 난립기(오로십육국/五胡十六國/에서 남북조에 걸쳐서) 전화에 의한 대학살로 인구가 약 700만 명까지 격감하고 있어 한민족은 그 시기부터 극소수민족일 뿐이다.(오카다히데히로/岡田英弘/는 이 시점에서 오리지날 한민족은 멸망하였다고 고찰하고 있다.)
중국은 이민족에게 끊임없이 침략, 정복, 지배되어 왔다.
중국 역사란 <한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이민족의 역사를 이어온 것일 뿐이다.『變水流體術 「한민족의 역사를 중국사로 바꾸다.」중국 공산당의 위사(僞史)와 소수민족 지배의 기만』링크에서 전재.
한민족이 주변 이민족을 감화하여 중국문명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반한다. 실상은 이민족에 정복되어 통치 당함으로써 이문화의 은혜를 받아 한민족은 진보해왔다. 사실 한민족이 중국을 지배한 시대는 그 역사상 약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진(秦)이나 원(元) 등의 이민족이 지배하는 시대에 더 문화는 발전하고 있다.
(진(秦) 나라 사람은 원래 감숙성의 초원에 살던 유목민 <서융(西戎)>이다. 당나라 고조. 태종도 선비(鮮卑)이고 한민족이 아니다. 그들의 성(姓)을 이(李)라 하고 시조를 이현성(李玄盛)이라 하고 지금의 감숙성 사람이다.)
진(秦)이나 원(元) 혹은 청(淸)도 그 정치 시스템이나 문화는 한민족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지나(支那)는 지나의 정치 시스템에 맡겼을 뿐 그 위에 몽골 등 지배민족의 통치시스템이 있다.(원에서는 한민족의 신분은 색목인/色目人=이란 사람 등/ 보다 격이 낮고 금(金) 나라의 지배하에 있었던 하북(河北)의 한인이 제3번째, 남송의 지배하에 있던 한인은 제4번째이고 중원(中原) 중화(中華)로 갈수록 신분이 낮다.)
지나의 어원이기도 한 이민족인 진(秦)에 의해서 처음으로 중국대륙이 통일되어 지나인(현재 한민족이라 말하는 혼혈민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지나인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민족국가의 난립기(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부터 남북조에 걸쳐서)에 전화에 의한 대학살로 그 인구가 약 700만까지 격감하였다.
그 이후 한민족에 대신하여 몽고계. 퉁구스계, 티벳계, 남방계가 중원을 차지하게 된다. 이들 혼혈민족의 자손인 지금의 지나인은 제 맘대로 한민족이라고 자칭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중국의 역사란 <한민족의 역사>가 아니고 이민족의 역사를 계승한 것에 지나지 않다.
중국공산당의 견해는 아래와 같다. <전통적으로는 중화와 이적(夷狄)은 구별되고 있었다고 해도 근대국가 건설에 있어서는 중국이라는 틀 안에 사는 민족은 모두 <중화민족>이라 해서 융합되어 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민족은 원래 티벳민족, 몽골민족, 위글민족이나 기타 소수민족은 중화민족의 일원이라고 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지배당하는 소수민족(결코 소수가 아니다)으로서 보면 그것은 한민족(중국공산당이나 국민당)의 제 맘대로 하는 말에 지나지 않다.
사실 원조(元朝)만이 아니라 청조(淸朝)에서도 위글이나 몽골, 티벳은 결코 중국(지나)의 일부는 아니었다. 지나의 통치에 관해서는 과거(科擧)에 의하여 관료가 된 자가 행정에 참가할 수 있었으나 그 이외의 제국전체의 통치시스템은 만주인(청의 민족)의 일이고, 중국인(지나인)은 참가하지 못하였다.(그 세제(稅制)도 5개의 나라에서는 전적으로 다른 제도를 세우고 있었다. 몽골제국의 후계자인 청나라에서는 몽골인에게는 일체 세금을 받지 않았다.)
또 신해혁명의 기본적 이념은 광복혁명(야만의 이민족지배를 타도하여 뛰어난 한민족에 의한 이민족지배의 확립을 목표로 한 혁명)의 실현이고 손문(孫文)마저 스스로 반하는 데 지나지 않는 중화사상에서 우수한 한민족이 중국을 통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민족(몽골, 티벳, 위글) 측에서 보면 한민족이 광복혁명을 걸고 청조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라면 우리들도 같은 모양으로 청조로부터 독립을 목표로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실제 몽골은 그렇게 선언하고 소련의 지원 하에 중국공산당의 지배로부터 어렵지만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오늘 날의 소수민족의 비극의 근원은 손문의 <건국방략(建國方略)>에 있다. 그는 중국의 실업진흥을 주창하여 문구에 몽골, 위글에의 한민족의 식민을 추진하고 철도망의 정비를 계획 추진하였다. 그 목적은 위글자치구 등의 광물자원 획득이다.
소위 <몽골, 신강에로의 식민은 철도계획을 보조하는 것이다.(중략) 이민의 수는 1천만으로 하고 인구가 많은 성에서부터 서북지역으로 옮기고 자연의 부원(富源)을 개발하면 상업활동의 이익이 엄청 넓어진다.> 곧 인구가 적은 소수민족의 지역에 한민족을 보내어 한화(漢化)한다는 구상이다.
글=아사오카 도오슈츠(麻丘東出), 입명관대학(立命館大学)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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