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노(魯)나라에서
1) 평공을 알현하지 못하다
등나라를 떠난 맹자는 노(魯)나라로 갔다. 맹자의 애제자의 한 사람인 악정자(樂正子)란 사람이 있어서 노나라에 벼슬하여 집정(執政)의 자리에 있었는데, 어디를 가도 불우한 스승을 생각하여 노나라 편공(平公)을 만날 수 있게 계획하고 있었다. 맹자가 노나라에 가서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악정자로 부터의 연락으로 평공은 맹자를 만나기 위하여 외출하려고 하였다. 벌서 수레의 준비도 되어있을 때 측근의 가신인 장창(藏倉)이 평공을 멈추게 하고 말하였다.
“지금까지는 군공이 외출을 하실 때에는 반드시 외출하여 가는 곳을 유사(有司)에게 알리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한해서 이미 수례의 준비도 다 되었고 말도 매어두었는데, 아직 유사는 외출하여 가시는 곳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
“이제부터 맹 선생과 면회를 하려고 생각한다.”
“그것은 또 어떤 뜻에서입니까?”
“--”
“일국의 군주이시면서 이쪽에서부터 가볍게 나가셔서 신분도 천한 사나이와 면회하시는 것은 저 맹가가 현인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맹가는 도저히 현인이 아닙니다. 원래 예의는 현인의 행위가 모범이 되어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맹가가 후에 행해진 어머니의 장례는 앞에 행해진 아버지의 장례보다 훌륭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아버지의 장례보다 훌륭하게 치르는 것은 분명히 예의에 벗어난 행위입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맹가는 도저히 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면회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공은 과연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여 면회를 취소하고 말았다. 이런 사실을 듣고 분개한 것은 악정자이다. 만족하게 예의도 가리지 못하고 사정도 잘 모르는 주제에 선생님을 비방하는 장창도 장창이지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평공도 평공이다. 좋다. 그렇다면 이치를 바로잡아 주리라 하고 그는 평공 앞에 나왔다.
“군공께서는 어떤 이유로 맹 선생과 면회를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맹 선생의 어머니의 장례는 아버지의 장례보다 훌륭했다고 과인에게 알려주었다. 그런 예의를 가리지 못하는 인물이라면 면회를 하더라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여 면회를 취소하였다.”
맹자의 어머니의 장례가 성대했다는 것은 당시 제나라 대부의 지위에 있었던 맹자가 그 지위에 허용되는 한에서의 좋은 점을 다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셔서 그 때는 맹자는 아직 벼슬을 하지 않았고 선비로서의 예로 장례를 지낸 것이었을 것이다. 결국 맹자 자신의 신분에 변동이 있고, 빈부의 차도 있었으므로 두 장례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남존여비의 봉건사회에서는 역시 공격의 재료가 되었던 것 같다.
평공으로부터 그런 사실을 지적받은 악정자(樂正子)는 맹자가 놓인 사정의 변화에서 그런 차이는 당연하다고 강조한다.
“군공이 맹자의 어머니의 장례가 아버지의 장례보다 훌륭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아버지의 장례의 경우는 제물로서 선비로서의 신분으로 허용되는 삼정(三鼎)<豚(돼지), 魚(고기), 腊(육포)을 고인 솥(鼎)>을 올리고, 어머니의 경우에는 대부의 신분으로 허용되는 오정(五鼎)<羊(양), 豕(돼지), 魚(물고기), 腊(육포), 膚(저민 고기)를 고인 솥>을 올렸다는 의미입니까. 그것이라면 지위의 변동에 따른 자연의 결과로서 오정이 삼정보다 훌륭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다. 그 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관곽이 보다 훌륭하고 시체에 걸친 의류나 침구도 훌륭했던 것을 말한다.”
“사람의 자식으로서의 효심으로 부모의 장례를 훌륭하게 치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단지 효심이 그렇다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맹 선생은 아버지의 장례의 경우는 아직 벼슬을 하지 않았으므로 경제적인 여유도 없고 훌륭하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장례의 경우는 제나라 대부이고 경제적으로도 꽤 여유가 있었으므로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서 효심을 다한 것일 뿐입니다. 일부러 어머니의 장례를 아버지의 장례보다 훌륭하게 한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 자신의 빈부가 그렇게 한 것일 뿐입니다.”
사실 사정은 악정자가 주장하는 그대로이다. 평공도 스스로의 잘못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지나가버린 기회는 끝내 다시 오지 않았다. 악정자의 알선은 이리하여 성공하지 못하였다.
놀란 악정자는 맹자를 방문하여 분노를 되씹으며 말했다.
“매우 섭섭합니다. 군공에게 선생님과 면회하도록 진언하여 군공이 막 나가려는 참에 장창(藏倉)이라는 측근의 가신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서 그만 두게 한 것입니다. 그런 때문에 군공은 오기로 한 약속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니다. 여러 가지로 수고를 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자 한다. 면회하고자 한다는 것은 면회시키려고 하는 인력 이상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면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다. 면회를 한다. 하지 않는다는 인력을 가지고 한다면 어쩌지도 못하는 문제이다. 내가 노나라 제후를 알현하지 못한 것은 천명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장창이라는 한 사람이 나를 노나라 제후에게 알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다. 무엇이거나 천명이다.(양혜왕장구하16)
분연히 호소하는 악정자를 맹자는 사랑스러운 듯이 바라보며 깨우쳤다. 아니 악정자를 깨우친다고 하기보다 오히려 담담하게 속사긴 것이다. 장창을 원망할 것은 없다. 평공을 나무랄 것도 없다. 평공과 면회가 되지 않은 것은 인력을 넘은 천명이다. 미미한 인간의 책동의 결과는 아니다.
--내가 노후(魯侯)를 만나지 못함은 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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