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이 아닌 인간을 교육한다는 ‘사토오’ 교장
내가 일본에 파견 근무를 할 때 딸 하나 아들 둘을 일본 학교에 취학시켰다. 적어도 3년은 일본에서 생활해야 할 것이므로 일본의 교육을 받으며 국내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색다른 체험을 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설사 우리 학교에 보내려 해도 미토(水戶)에는 우리 학교가 없었다.
1976년 여름에 일본에 입국하여 여름방학 동안에 일본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시키면서 일본어도 익히곤 하다가 9월부터 미토시립도키와소학교(水戶市立常盤小學校)에 입학하게 되었다.
사전에 거류민단 사무국장과 함께 학교를 방문하여 입학시켜주기를 바라는 청을 드리기로 하였다. 따지고 보면 우리 애들은 외국인이라서 학구 내에 거주한다고 해서 의무적으로 학생을 받아줄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청을 드려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먼저 나의 신분을 밝히고 아이들은 아직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음을 미리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교무 담당 선생님이 난색을 표하는 것이다. 말을 모르는 학생을 어떻게 우리가 맡아 가르치느냐 하는 것이며, 자기네가 이 학생을 받아야 할 의무는 없다고 하며 센바코(千波湖=미토시 남쪽에 있는 호수) 옆에 조선학교가 있으니 그리로 가라는 것이 아닌가. 이 조선학교란 소위 조총련이 경영하는 조총련학교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 선생님이 말하는 조선학교는 북한의 지령을 받는 조총련이라는 단체가 경영하는 학교로서 한국과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입장이므로 한국 정부 파견근무를 하는 자의 자녀가 다닐 수 있는 학교는 아니며 그리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제야 정치적인 입장을 이해했는지 그러면 교장 선생님을 만나보라며 교장실로 안내를 한다.
교장은 ‘사토 도시오(佐藤敏夫)’라는 50대 후반의 선생님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교무 선생님에게 학생을 받아야 한다고 하며 우리는 국적을 묻지 않고 오직 하나의 인간을 교육한다. 특히 일본과 한국은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가까운 나라인데 어찌 받지 않을 수 있느냐 하면서 매우 개방적이고 호의적으로 입학을 허가하여주었다.
대체로 일반적인 일본인들은 한국이 지리적으로 이웃나라이고 역사적으로도 얽히고설킨 사연이 많은 나라인데도 잘 모른다. 특히나 우리나라와 북한과의 정치적인 입장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학교 선생님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와 무관한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하는 개인주의 생활 태도에 익숙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이로 봐서 이 교장 선생님은 한국인을 멸시하고 차별의식이 강한 세대의 사람인데도 생각이 달랐다. 퍽 국제적이고 개방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가진 분이셨다. 물론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에 대한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하여서도 비판적이며 일본은 신생 한국에 대하여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아직 일본말을 잘 못하므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공부를 시작한 막내가 몇 개월 동안에 선생님에게서 그림그리기에 대한 소질을 인정받아서, 그해 늦은 가을에 지역 신문인 신이바라기신문사(新茨城新聞社)가 주최하는 <그림그리기 대회>에 참가하였는데 판화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학교에서도 매우 기뻐하여 연말 학교교지를 낼 때는 우리 막내의 수상작인 판화를 표지에 싣고 학교장의 서문에 올가을 들어서 외국인 학생이 입학하였는데 그들은 생소한 환경 속에서도 만난을 극복하여 매우 잘해가고 있으니 이들을 본받아서 모두 분발하라는 취지의 글을 실어서 애들을 격려하여 주기도 하였다.
흔히 일본인들은 “속 다르고 겉 다르다.”고 하지만 그는 국적에 관계없이 우리는 인간을 교육해야 한다는 국제적 개방적이며 인간애에 바탕을 둔 교육자로서의 신념과 태도도 훌륭하지만 학교교지의 표지에 수상작이라고 실어주는 그 뜻은 교육자로서의 순수함을 돋보이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교장선생님의 특별한 교육자로서의 깊은 관심 속에서 우리 애들은 일본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종종 학교를 방문하기도 하고 연하장이나 오쥬겡(御中元=여름을 건강하게 내시라는 인사장이나 선물)을 서로 교환하며 우호적으로 대하여준 사토오교장(佐藤校長)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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