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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야기/일본 이야기

한국어 ‘라보 튜터’ 구로다(黑田) 씨

간천(澗泉) naganchun 2009. 7. 9. 05:45

 

한국어 ‘라보 튜터’ 구로다(黑田) 씨

 

 

내가 일본에 체일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 중에 참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그리운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예절이 바르고 정성이 있으며 만남에 진지함이 있었다. 그런 많은 사람 중에 또 한 사람이 이 한국어 라보튜터인 ‘구로다’씨이다.

 

일본에는 ‘라보’라는 외국어 학습조직이 있다. ‘라보’란 laboratory에서 유래된 말로 ‘어학실습’을 통하여 외국어를 가르치는 민간 운동의 하나이다. 그들은 특수하게 제작된 녹음기를 가지고 주로 외국어의 극본을 중심으로 하여 행동으로 외국어를 학습한다. 이 활동에서 주역을 하는 선생님을 ‘라보 튜터(labo-tutor)’라 한다. 이에 참가하는 사람은 초등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이며 외국어는 영어를 비롯하여 다양한 언어를 학습한다.

 

그 라보 튜터로서 이바라기현 조직의 책임을 지고서 한국어를 배우기 원하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라보 튜터인 ‘구로다 히로코(黑田廣子)’라는 분이 찾아온 것이다. 내가 부임한 이바라기현에는 순수하게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내가 좋은 한국어 선생이 되어서 적어도 한국어를 들려주기만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청이었다. 나는 쾌히 승낙하고 그들의 계획과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우선 히다치(日立)에서 열리는 한국어 라보 학습 현장을 참관해 달라는 청이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날 그 시간에 히다치 학습 장소를 찾아갔다. 학습은 튜터인 ‘구로다 히로코’ 씨 자택이었다. 15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그 튜터가 소개하여 내가 인사를 할 때 그 튜터가 원하기를 순 우리말로만 인사말을 하고 나중에 일본어로 뜻을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튜터가 원하는 바는 한국어 원어민의 육성 발음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의 연습 내용과 방법은 이솝 우화인 ‘토끼와 거북이’를 녹음기를 틀어놓고 들으면서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말 한 마디를 네 번 반복하고 다 끝나고 나면 전체를 네 번 반복을 하는 식으로 테이프가 마련되었다. 내용은 몰라도 좋으니 발음을 먼저 익힌다는 방법이다.

 

나는 대본을 차근차근 읽어주고 그들은 듣기로 하여 두 번 반복하였다. 대체로 한 시간 씩 연습을 하는데 그날은 두 시간을 연습하였다. 그러기를 한 달에 한 번씩 지도에 임하였었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시절에 아동극을 지도하여 전국아동극경연대회에서 준우수상을 받게 한 바도 있어서 이런 일은 잘 할 수 있었다.

 

한 번은 라보 멤버들이 이바라기현 전체 모임이 있어서 꼭 참석해서 한국어로 인사를 해달라는 청을 받고 그에 참가하였다. 통역은 역시 라보 튜터로서 활동하고 있는 재일동포인 윤(尹)선생이 맡기로 하였다. 일단 인사말이 다 끝나서 통역을 하기로 하였다. “한국어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을 이해한다는 것이고, 한국 사람과 친구가 된다는 뜻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에도 와주기 바란다.”는 내용으로 인사를 하였다.

 

이 ‘구로다 히로코’ 씨는 자주 미토의 교육원에 들러 한국을 홍보하는 자료를 받아가곤 하였다. 그 당시로서는 한국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일본인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는데도 오로지 한국어를 지도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열성을 다하는 그녀의 태도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으며 무척 고마웠다. 그녀는 어느 날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어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전일은 여러 가지 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받을 뿐이어서 죄송합니다.

 

우리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인데, 그 위에 여러 가지 자료를 주시고, 저의 취미인 우표 책마저 보내 주셔서 참으로 마음속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라보에서는 새로운 말을 아는 것은 새로운 친구를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요즘 그것이 실감으로 저를 붙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바는 한국어를 하는 것은 저에게는 라보튜터로서의 의무 의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고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친절한 편지와 소중한 책을 받아서 저도 한두 마디라도 선생님의 조국의 말을 저 자신의 말로서 쓸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게까지 되었습니다.

 

게으른 사람이라 좀처럼 생각할 뿐 출발이 되지 않습니다마는 저로서는 일보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는 기분입니다.

 

아무쪼록 이제부터 잘 지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4반세기, 지금은 그녀도 고희를 넘긴 파파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건강하고 장수하여서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남겨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