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제국과 터키의 두 영웅 이야기
터키와 이스탐불
약 500여 년 전에 <콘스탄티노풀>이라 부르던 도시는 로마제국의 수도였다.
1453년 서아시아에서 힘을 기르고 있던 오스만 터키제국은 콘스탄티노풀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결국 로마제국은 멸망하고 <콘스탄티노풀>은 <이스탐불>이라고 부르게 되어 지금까지 이어진다.
동로마제국과 콘스탄티노풀
늑대에 의하여 키워졌다는 로무루스는 <파라티노 언덕>에 성벽을 쌓고 로마 건국을 선언하였다. 당시 로무루스의 밑에는 3000명이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후 로마제국은 비약적으로 발전 확대되어 2 세기경에는 그 판도가 최대가 되어서 유럽의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이 포함되고 서아시아에서는 터키와 아프리카에서는 이집트, 튜니지아 등이 그 영토가 되었었다.
기원 330년 콘스탄티누수 1세는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천도하고 도시 이름을 <콘스탄티노풀>이라고 고쳤다.
그 후 제국은 로마를 수도로 하는 <서로마제국>과 <콘스탄티노풀>을 수도로 하는 <동로마제국으로 나누어졌다. 467년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하자 <동로마제국>이 유일하게 로마제국으로 남았다. 그래서 1000년의 세월을 보냈다.
두 사람의 영웅
두 영웅이란 <콘스탄티노풀>을 공격하는 <오스만터키> 황제 <메흐메트2세>( II. Mehmet、1432년 3월 30일 - 1481년 5월 3일>와 수비 측에 있던 <동로마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수 11세>( Constantine 11) 황제이다.
터키의 <메흐메트 2세>는 <정복왕>이라는 별칭처럼 영웅의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튼튼한 육체와 5 개 국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그는 잔인하고 맹혹한 일면도 있었다. 그는 화가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때에 근육의 움직임을 가르치기 위하여 노예의 목을 쳤다고도 한다. 메론을 도둑맞았을 때에는 의심이 드는 14명의 배를 갈라서 범인을 조사했다고 한다.
한편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수 11세>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고결하고 용감하며 자비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든 백성은 그를 사랑하였다.
18세기 정치가이며 역사가인 <기본>의 <로마 흥망사>에서 발췌하여 그들의 일화를 보기로 한다.
터키의 영웅 <메흐메트2세>
1452년 터키의 <메흐메트 2세>는 새로운 생각이 나기만 하면 때를 가리지 않고 깊은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대신들을 불러낸다. 그러면 대신들은 이 심야에 무슨 일이 이러났는지 놀라고 황제에게로 가서 선물을 바친다. 당시 터키에서는 신하가 황제를 만날 때마다 선물을 드리는 것이 관습이었다고 한다.
메흐메트2세 상
<메흐메트 2세>는 선물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더 귀중하고 중요한 선물이 필요하다.. <콘스탄티노풀>을.”
그 말을 듣고 신하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는 순간 <콘스탄티노풀>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었다. <콘스탄티노풀>을 공략하자는 것이다.
드디어 서기1453년 <메흐메트 2세>가 이끄는 25만의 병력이 <콘스탄티노풀>을 포위하였다.
한편 <콘스탄티우스 11세> 휘하에는 7천명의 병사들밖에 없었다.
이들은 수는 적지만 잘 싸웠다. <콘스탄티노풀>은 3면이 육지로 한 면은 바다였다.
육지 쪽에는 이중 삼중 성벽이 있어서 방위력이 높았다. 바다에는 금각항(金角港) 입구에 쇠사슬로 폐쇄되어 있었으므로 터키함대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당시 이 난공불락의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육지와 바다의 양면공격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공격하는 <메흐메트 2세>는 초조하였다.
“어떻게든 금각항에 터키 함대를 침입시키고 싶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함대를 그 쇠사슬 안으로 들어가게 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그는 하룻밤 사이에 72척의 터키함대를 상륙시켜서 산에 올리고 나무를 잘라내어서 금각항까지 길을 만들고 거기에 기름을 칠하여 미끄럽게 하였다. 그리고거기서 금각항을 목표로 터키함대를 미끌어지게 하여 들여놓았다.
<동로마제국>은 놀랐다. 어떻게 산에서 함대를 미끌어지게 하여 침입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던 일이다.
이래서 터키군에 의한 수륙 양면 공격이 시작되었다.
<동로마제국>은 깊은 상처를 받았다..
서기1453년 5월 29일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풀>을 총 공격하여 그날 로마는 멸망하였다.
동로마제국의 영웅 <콘스탄티누수 11세>
<메흐메트>의 총공격을 받던 그 전날 <콘스탄티누스 11세>는 귀족과 용사들을 궁전에 불러 모아서 말하였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혹시 내가 여러분에게 상처를 입힌 일이 있었다면 용서해다오.”하고 말하였다.
5월 29일 터키군의 총공격을 받던 날 그는 로마제국의 총사령관으로서 전선에 서서 병사들을 격려하고
“조국을 구제하기 위하여 최후의 힘을 다 내어라.” 하고 격려하였다.
콘스탄티누스11세 상
그러나 터키군은 <콘스탄티노풀>에 입성하여 가는 곳마다에 터키의 깃발을 꽂았다.
<콘그탄티누스 11세>는 비장한 어조로
“누가 나의 목을 쳐줄 기독교 교도는 없는가?”.
그는 이교도한테 죽임을 당할 것이면 기독교도의 손에 의하여 죽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후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황제의 증표인 <자의(紫衣)>를 벗어 던지고 위대한 로마군 지휘자의 지위를 버리고 한 사람의 병사로서 터키군에 달려 들어가 싸우다가 결국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일 후 로마의 문장이 새겨진 군화를 신고 죽은 시체가 발견되어서 <콘스탄티누스 11세>임을 알았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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