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맞아 보내드리는 할아버지의 <동화>
꼬마 노루와 색동저고리
바람이 스쳐갈 때마다 가랑잎이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산 너머 곧 겨울이 올 것 같이 갈수록 바람도 차지고 단풍이 든 가랑 잎이 자꾸 쌓이고 쌓여서 두툼한 이부자리처럼 깔렸습니다.
엄마 노루는 “겨울이 오고 하얀 눈이 내리면 어쩌나?”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머루 숲 노루네 집에는 한 달포나 앓아 누워있는 엄마 노루와 새끼 누나 노루와 꼬마 노루, 이렇게 세 식구가 살았습니다.
엄마 노루가 건강했을 때는 두 새끼 노루는 한머루 숲 속에서 숨바꼭질이나 하고 놀았으나, 엄마 노루가 달이 넘도록 앓아 누워버리자 누나 노루는 숲을 빠져나가서 곡식밭의 먹을 것을 구해 와야 했고, 꼬마 노루는 엄마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꼬마 노루는 엄마 노루의 다리도 주무르고, 등도 쓸어주기도 하고 가랑잎을 모아다가 잘 덮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누나 노루가 먹을 것을 모으려고 이른 새벽에 한머루 숲을 나갔는데, 저녁이 되도록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밤이 깊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가랑잎이 지는 소리만 사락사락 들렸습니다. 엄마 노루와 꼬마 노루는 별안간 무서워졌습니다.
“틀림없이 사냥꾼에게 잡혀 죽은 것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먹을 것을 주우러 다니다가 그만 밤이 되어 집에 못 오는 것이리라.”고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벌써 가을이 깊어 겨울이 다 다가섰으니 들에는 곡식이 다 걷어 들여졌고, 겨우 줍다 남은 이삭밖에 없을 때이니까.”하고 엄마 노루는 억지로 자기의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고 꼬마 노루도 달랬습니다.
꼬마 노루는 막 울었습니다. 울다 말고 누나 노루를 찾으러 가겠다고 엄마 노루한테 졸랐습니다.
“아니 이 밤중에 한 번도 숲 밖을 나가보지 못한 네가, 안 된다 안 돼.”하며 엄마 노루는 말렸습니다.
그래도 꼬마 노루는 “아니에요. 염려 없이 숲 밖에 나갔다 올 수 있어요. 밤이니까 사냥꾼도 없을 게 아니에요.
엄마만 괴롭지만 참아주신다면 꼭 누나는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어떻게 알아요.
좋은 약이라도 구해 가지고 있는지요?”하며 막 졸랐습니다.
엄마 노루도 이 꼬마 노루의 열심과 고집에는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조심조심 나가 찾아보고, 밝기 전에 돌아오너라.”하고 걱정스러운 듯이 타일렀습니다.
꼬마 노루는 어둠을 헤치고 가랑잎이 깔린 한머루 숲을 빠져나갔습니다.
가다가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에 주춤해 서곤 했습니다. 그리고 누나 노루를 나지막한 소리로 불러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누나 노루는 대답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마 다람쥐나 들쥐가 가랑잎 위를 달리는 소리였나 봅니다.
숲을 빠져서 돌담가로 수풀을 헤치며 한참 나갔습니다.
얼마나 멀리 와졌는지 몰랐습니다.
멀리 사람이 사는 동네인지 등불이 보였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피곤해졌습니다.
배도 몹시 고팠습니다. 꼬마 노루는 그냥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수풀을 헤쳐 나오느라고 다리가 헤어져 피가 나고, 돌에 치어서 발은 부르트고, 이따금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란 마음은 온 몸을 몹시 피곤하게 했습니다.
얼마나 잤는지 곤히 깊은 잠 속에 들어있을 때입니다.
큰 길에 도련님을 태운 나귀와 예쁘게 단장한 아씨가 탄 꽃가마가 하얀 바지, 저고리에 하얀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있는 두 장사의 어깨에 매이어 가고, 그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갔습니다.
아마 먼 동네 사람들의 잔칫날인가 봅니다.
꼬마 노루는 이 깊은 산 속에 벌어진 잔치 행렬을 보느라 앞다리를 돌담 위에 걸치고 발 돋음을 하면서 먼 고개를 넘을 때까지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입니다. 사냥꾼이 그물을 가지고 덤벼들어 꼬마 노루를 가두었습니다.
꼬마 노루는 그만 사냥꾼의 그물 속에 갇히어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됐다. 됐어. 오늘은 큰 돈벌이했다. 이놈은 참 예쁘게 생겨서 동물원에 갖다 팔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럼, 그러고 많은 사람에게 귀염도 받겠는데.”하며 서로 좋아하였습니다.
꼬마 노루는 꼼짝 못하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동물원이 뭐야. 많은 사람에게서 귀염을 받는다고.”
꼬마 노루는 사냥꾼들이 한 소리를 도로 한참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구경하게 될 동물원이란 어떤 곳일까? 그리고 얼마나 사람들이 날 귀여워해 줄까?
죽게 될 줄만 알았더니 그렇지 않은 눈치에 어쩐지 마음이 끌렸습니다.
‘아니다. 지금 엄마는 혼자 몹시 앓고 있는데...’
꼬마 노루는 “제발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가 불쌍해요.” 하고 빌었습니다.
“아니야, 너의 엄마까지는 필요 없어. 너만 잡아가도 오늘 벌이는 충분해.”하며 윽박지르려 했습니다. ‘옳지, 이러다가 엄마마저 잡힌다면 큰일이다.
꾹 참고, 되는대로 해보자.’ 하고 꼬마 노루는 사냥꾼의 등에 매이어 동물원에 갔습니다.
꼬마 노루는 쇠 그물로 둘러싸인 조그만 방으로 끌려갔습니다. 별안간 무서워졌습니다.
동물원 사람은 “아이쿠, 저 다리에 피 봐라. 퍽 아프겠는걸. 의사 선생님이 잘 치료해 줘.” 하며 문을 탕 하고 잠그고 가 버렸습니다.
꼬마 노루는 아까 동물원 사람이 “의사 선생님이 잘 치료해 줘.” 한 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엄마도 의사 선생님만 있으면 나을 텐데. 같이 잡혀 왔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고무장갑을 끼고, 핀세트와 주사기를 가진 의사 선생님이 왔습니다.
그는 꼬마 노루의 다리에 약을 바르고 주사를 놓고 나가 버렸습니다.
이제부터 동물원의 한 식구가 된 것입니다.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동물원에는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다녔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마다 꼬마 노루를 귀여워하고 과자도 많이 주었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두 자매가 꼬마 노루가 있는 창가에 서서 꼬마 노루에게 말을 지껄이며 한참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이 노루 봐. 참 귀엽지.”
“응, 언니, 이게 노루야. 참 귀엽다 그지.”
“얘 노루야, 네게도 이렇게 고운 색동저고리가 있니?”
꼬마 노루는 이 귀여운 두 자매를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의사야. 우리 집에는 바둑이도 나처럼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어.
모레는 외할머니 댁에 잔치 먹으러 가는 거야.
너도 색동저고리만 입고 오면, 우리하고 같이 갈 수 있어.
그리고 우리 아빠랑 엄마랑 참 귀여워하실 거야. 그지 언니.” 하며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꼬마 노루는 퍼뜩 잠이 깼습니다. 꿈을 꾼 것입니다. 무슨 좋은 수가 있다.
꼬마 노루는 금방 꿈속에서 있었던 일 들을 차례차례 생각해 봤습니다.
색동저고리 자매의 아버지가 의사 선생님이라는 말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리고 색동저고리를 입고 오면 같이 잔치 먹으러 갈 수 있고, 아빠 엄마도 좋아하실 것이라는 말에 색동저고리만 지어 입으면, 의사 선생님의 치료를 받으면, 엄마 노루의 병이 꼭 나을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곡식이 다 걷어 들여진 빈 들판은 하얗게 서리가 내리어 아침 햇볕에 눈이 부시게 반짝거렸습니다.
꼬마 노루는 빨리 집에 돌아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빨리 색동저고리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힘을 내어 일어섰습니다. 이때 무엇인가 파닥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꼬마 노루는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거기엔 산비둘기 한 마리가 날개와 다리를 다쳐서 날지도 걷지도 못하고 한 쪽 날개만 파닥거리며
“얘 꼬마 노루야, 제발 저 숲까지 데려다 줘."하고 사정을 했습니다.
“아 가엾어라. 너 우리 누나 노루를 아니.”
“몰라. 사냥꾼들이 여러 사람 지나갔는데 잡혀갔을 거야.
나도 그 사냥꾼의 총알에 맞아서 이렇게 꼼짝 못하고 있었어.”
꼬마 노루는 꿈에서 본대로 누나는 동물원에 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더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머지않아 만날 수 있을 거야. 엄마 병도 고치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얘, 산비둘기야 여기가 어디니? 한머루 숲이 어디쯤이니?”
꼬마 노루는 길을 잘 아는 산비둘기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한머루 숲은 아주 저 멀리 있어. 여기서는 보이지 않아. 넌 길을 잃은 게로구나.
나만 같이 데려다 주면 길을 가르쳐 주지.”
“응, 그래그래. 내 등에 태워다 주지.”
꼬마 노루는 드러누워서 산비둘기를 등에 앉히고, 길을 걸었습니다.
걸어가면서 꼬마 노루는 엄마 노루가 아픈 얘기와 누나 노루가 먹이를 구하러 나왔다가 돌아오지 않아 찾으러 나왔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색동저고리만 있으면 그 귀여운 자매네 집에 가서 의사 선생님의 치료를 받고, 엄마 노루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자기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산비둘기도 동정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꼬마 노루는 색동저고리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궁리를 하며 걸었습니다.
하얗게 반짝이던 들이 서리가 녹아 울긋불긋하여 아름다웠습니다.
“옳지. 우리 집에 많이 떨어지는 단풍이 든 가랑잎으로 색동저고리를 만들어야지.”
꼬마 노루는 가랑잎으로 엄마와 자기의 색동저고리를 만들 옷감을 생각해낸 것입니다.
산비둘기도 “그거 참 좋겠다.”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저 숲에만 가면 우리 동무들을 불러다가 가랑잎에서도 고운 것들을 골라 올 수 있고, 자기네 동무들은 옷도 잘 만든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기울 수 있겠니?” 하고 꼬마 노루는 물었습니다.
산비둘기는 “솔잎으로 꿰매지?” 하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색동저고리를 만들 궁리를 마친 꼬마 노루의 가슴에는 희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어느새 한머루 숲에 이르렀습니다.
산비둘기는 숲 속에 들어가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는 듯이 “구구구 구구구” 하고 힘을 내어 동무들을 불렀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구구구 구구구” 대답을 하며 모여들어 죽은 줄 알았던 벗이 살아온 것을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데려다 준 꼬마 노루에게 고맙다고들 날개를 쳐서 파닥파닥 소리를 내었습니다.
엄마 노루는 밤새껏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두 새끼 노루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다 날이 새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이때 꼬마 노루와 산비둘기 떼가 노루네 집에 같이 모여들었습니다.
엄마 노루는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꼬마 노루는 그 동안의 이야기를 다하고, 색동저고리만 만들어 입으면 의사 선생님께 가서 엄마 노루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엄마 노루는 색동저고리만 만들어 입으면 병도 고칠 수 있고, 새끼 누나 노루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앓은 것도 잊어버리고, 기쁨과 희망에 찬 마음으로 색동저고리가 다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비둘기들은 색동저고리 감으로 고운 가랑잎과 솔잎을 많이 모아 왔습니다.
그리고 재주 좋은 산비둘기들은 저고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저고리를 만들기에는 여러 날이 걸렸습니다. 바람은 몹시 세차지고, 하얀 눈이 펄펄 내리어 온 세계를 하얗게 단장해버렸습니다.
모아 온 가랑잎도 자꾸 눈 속에 묻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또 많은 산비둘기 떼가 제만큼 입에다 가랑잎을 물고서 눈 속에 묻히지 않게 하였습니다.
엄마 노루의 저고리는 다 되었습니다.
눈은 점점 더 세차게 그리고 많이 내렸습니다.
한머루 숲 속에도 눈이 두텁게 쌓였습니다.
꼬마 노루의 저고리도 다 되어갑니다.
그런데 산비둘기가 입에 물고 있는 가랑잎은 다 써버렸습니다.
꼬마 노루의 저고리를 다 만들기에는 가랑잎이 모자랐습니다.
엄마 노루는 마음이 초조해 졌습니다.
눈은 더 쌓이고 쌓여서 노루네 집도 눈 속에 묻히고, 나뭇가지도 다 눈에 덮여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젠 먹을 것 마저 없어졌습니다.
이때입니다. 가랑잎이 있는 곳을 찾으러 나갔던 산비둘기 한 마리가 돌아온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네 근처에 가면 가랑잎을 주울 수 있다는 전갈을 한 것입니다.
산비둘기들은 가랑잎을 주우러 사람이 사는 동네로 눈 내리는 하늘을 날아갔습니다.
엄마 노루는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꼬마 노루와 함께 사람이 사는 동네로 산비둘기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하얀 눈 위에 생긴 귀여운 두 노루의 발자국이 마치 하늘에 날고 있는 산비둘기처럼 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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