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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봉과 산방산의 잊어버린 설화

간천(澗泉) naganchun 2021. 4. 1. 06:47

일출봉과 산방산의 잊어버린 설화

고래 제주도 (일출봉도 있고 산방산도 있고, 물론 한라산은 가운데 떡 하니 있고~~)

 

  이십여 년 전 어느 겨울날 동남아 여행길에 나선 일이 있었다. 제일 목적지인 싱가포르를 향하여 김포국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기수를 남으로 돌리자 얼마 없어 항공기 운항안내도는 제주도 상공을 지나갈 것임을 알려주었다. 승무원에게 물으니 이 방향으로 필리핀까지 날아가서 거기서 기수를 싱가포르 쪽으로 돌려 날아간다는 것이었다. 오랜 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던 나는 모처럼의 절호의 기회를 만난 것이다. 반가운 마음과 호기심으로 비행기의 창을 통하여 마치 우주선을 타고 멀리 우주공간에서 지구를 바라보듯이 눈을 밝혀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마침 겨울철이지만 하늘이 맑아서 한반도 끝자락의 많은 섬들이 다닥다닥 보이는가 하더니, 어느새 망망대해에 고구마 같은 모양의 제주도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제주도 상공에 가까워지면서, 동쪽의 일출봉이 바로 아래에 내려다보이고 멀리 서쪽의 산방산이 한라산 산정보다 오히려 더 뚜렷하게 보였다.

  생각해보니 일출봉은 비행기가 한라산 동쪽 상공을 지났기 때문에 아래에 내려다보인 것이고, 산방산은 멀지만 바다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두드러지게 보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한반도 남녘 끝의 많은 섬들은 옹기종기 사이좋게 보였지만, 제주도는 대륙에서 망망대해에 멀리 떨어져 있는 그야말로 작은 절해고도로구나. 이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다면 제주도의 모습은 지금과 어떻게 다를 것인가? 이 정도 떨어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면 368개로 헤아리는 그 많은 오름들 중에서도 이 일출봉과 산방산은 그 모양이 특별히 다르며, 어쩌다가 동쪽 끝과 서쪽 끝 해안 가까이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섬의 경관 구조가 이렇게 된 것은 이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하였다

 

  천혜의 수려한 자연 경관을 가지고 세계인을 끌어 모으고 있는 제주도는 전설이 많기로도 한 몫을 한다. 제주도 유일의 창조신화라 할 수 있는 설문대할망 이야기라든지 문명의 싹을 보여주는 삼성혈 설화라든지 곳곳에 산이나 동굴 그 밖의 거목 거석에 전설이 있다. 나는 가끔 일출봉과 산방산을 들러볼 때마다 설문대할망 설화를 생각하며 이 설화에 빠뜨린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엉뚱한 의문을 가지곤 한다. 설문대할망은 제주도 곳곳에 이야기를 남겨놓고 있고, 특히 오백장군 설화를 남기고 있는데, 특이하게 생긴 이 일출봉이나 산방산과 관련되는 이야기는 없으니, 설문대할망은 이것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지구가 생성된 후 신생대부터 제주도는 화산활동에 의하여 생성되었다고 하는데, 우주의 창조신은 100만 년 전에서부터 7-80만 년 전에 제주도의 기반을 어느 정도 만들어 놓았으나 대륙이 깨지고 붙는 지각 변동의 틈바구니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높고 거칠어 이대로 두었다가는 너무나 망망한 대해에 오로지 이 섬 하나만 물결에 흘려 떠내려가 버려서 그야말로 절해고도가 되어버릴 것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생각한 나머지 알맞은 자리를 잡아 서쪽으로는 산방산으로 깊이 못을 박으며 차귀도와 가파도와 마라도와 형제섬을 만들어 벗하게 하고, 동쪽으로는 일출봉으로 깊이 못 박으며 우도를 만들고 대지에 고정시킨 다음에 중심에 한라산을 더 높이 우뚝 솟게 하여 상징으로 하고, 오밀조밀한 지형을 만들고 해안선을 굳혀서 이 아름다운 섬을 만든 것이 아닌가?

 

   크기도 모양도 다른 그 많은 둥글둥글한 오름들을 전지역에 골고루 분포시키고서 유독 돌출한 바위산인 산방산과 넓은 분지를 안은 바위산인 일출봉을 골라 말뚝을 삼고 대지에 깊이 박았으니 이는 창조신의 조화가 아닌가? 이 말뚝이 없었다면 제주도는 동쪽으로나 남쪽으로 또는 서쪽으로 흘러 100킬로나 200킬로 한없이 떠내려가 버렸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은 한 반도에 붙은 섬이 아니고 탐욕스러운 왜인이 몰려들어 살게 되고 결국 일본 영토가 되어버렸을 것이며, 서쪽으로 떠내려갔다면 그것은 중국 영토가 되어버렸을 것이 아닌가. 한반도에서 떨어지기 140여 킬로로 엄연히 소속을 한반도에 속하게 하고 가까이 주변의 작은 섬들과 멀리 대륙의 엄호를 받으며,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있게 하고, 또한 그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은 일출봉과 산방산이 흐르는 섬의 닻이요, 대지에 꽂아놓은 말뚝 구실을 하게 한 신의 섭리가 있음이 아닌가? 이러한 설화가 하나쯤은 있을 법도 하지 않은가?

   제주도는 문명의 싹이 트면서 그야말로 절해고도로서 한 나라의 변방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국제적인 관광지가 되어 세계인이 모여들고, 만국의 수뇌들이 모이는 국제회의의 섬이 되고, 반세기의 숙적이었던 공산 사회주의 국가의 수뇌들마저 모여서 세계의 평화를 논의하는 평화의 섬이 되려 하고 있으며, 장차 국제자유도시로서 번영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바야흐로 환태평양의 중심으로서 특히 동북아시아의 중심으로서 각광을 받을 징조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음은 이 섬 제주도가 형성되면서부터 예정된 숙명적 발전과정으로서 개운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며,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의 중심적 위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라산의 정기에 일출봉과 산방산의 정기가 합세하여 활화산이 용암을 분출하듯이 솟아나고 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백두산이 우리 민족 개벽의 영산으로서 북으로 우리 국토의 울타리를 상징하고, 한라산은 남으로 국토의 울타리임을 상징하며 동시에 제주도의 상징으로서 온난한 기후와 다양한 식생으로 생명을 길러주는 영산이라면, 일출봉과 산방산은 경관이 절묘하여 관광명소가 될 뿐 아니라, 제주도가 동북아시아 중심으로서의 운명을 결정지은 영산이 아닌가? 하고 설화 같은 생각을 해 본다.

 

  신의 섭리에 의하여 이루어진 이 아름다운 자연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보존하고 가꾸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중심으로서 번영 발전하여 신화를 창조할 수 있는 관건이며, 이 밑바탕에는 설화나 전설이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잊어버린 설화나 전설을 찾아 발굴하여 다듬을 필요가 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바야흐로 서세동점의 시대에서 환태평양시대 그리고 특히 동북아의 시대로 이행하려는 21세기를 맞아 각광 받는 제주도가 동북아시아의 중심으로서 앞으로 100만년, 이 지위를 확보하여 번영하도록 기원하기 위하여 일출봉과 산방산의 산신에게 산신제라도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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