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단상/단상

유월이 오면

간천(澗泉) naganchun 2024. 6. 14. 04:23

유월이 오면

 

 

유월은 방금 사우나를 마치고 화장을 하고 나온 만삭의 여인이다. 환희에 찬 미래를 분만하며 유월은 온다.

새들은 숲속 새벽의 어둠 속에서부터 사랑의 노래를 합창하고, 풀벌레들도 서로 짝을 맞추기 한창이다. 들판에는 이름 없는 작은 꽃들마저 제각기 꽃을 피워 미래를 잉태하려 애를 쓰고, 논밭에는 벼 폭이 짝짝 소리를 내며 벌어진다. 나무는 나무들대로 풀은 풀들대로 제 몸피를 늘리며 서로 이웃하는 친구들과 정다운 악수를 하려 몸부림친다. 산과 들이 푸르름으로 가득해지는 녹음의 계절로 내닫고 있다.

 

나에게는 1년 중 유월이 가장 좋은 계절이다. 새봄이 되어 3월부터 6월까지 내 몸은 생기를 찾아 활기가 솟아나고 머리는 명석해져서 생각하는 데에 피곤을 모르는데, 특히 6월이 되면 완전히 털갈이하여 겨울의 잔재를 씻어버릴 수 있으니 좋다.

남들은 5월이면 계절의 여왕이라 하여 찬탄해 마지않지만, 최근 변덕이 심하여 철없이 더웠다 추웠다 하는 날씨에 적응하기 힘들더니 마침내 6월이 되어서 제대로의 계절 감각을 찾은 것이다.

 

유월이 오면 나는 신록이 피어나 푸르러 가는 숲속에 들어가 겨우내 벗지 못한 옷을 벗으리라. 숲속의 상큼한 향기를 마시며 알몸이 되어 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을 받고 풀잎을 스치는 바람결에 온몸을 씻어 생기를 찾으리라.

하얀 모시옷으로 갈아입고 창조주가 내리시는 밝아오는 여명에 무릎을 꿇고 명상을 하리라. 그리고 기도를 하려 한다.

애비로서 자식으로서 소박한 작은 소망마저 잃게 되는 안타까움으로 작은 소망이라도 이루어지도록 나의 주 창조주께 간구의 기도를 드리려 한다.

 

이 세상의 가치에 지나치게 연연해하는 욕심을 버리게 하여 주소서, 마음을 비움으로써 광명의 햇살이 어둠을 헤치고 나의 영혼을 일깨워 평안을 찾을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지난 일을 탓하지 말고 오늘에 착실해지도록 하소서.

산 절로 수 절로 자연을 따라 새 옷을 갈아입듯이 겨우내 걸치고 있던 묵은 옷가지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태어나리라 다짐을 한다. 이 정기 넘치는 계절의 힘을 받아서

'단상 >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 힘내 !  (0) 2022.02.01
밤하늘의 별을 보라  (0) 2021.08.02
아! 1948년의 쓰라린 추억  (0) 2021.07.17
수즉다욕(壽則多辱)이라 하는데  (0) 2021.06.23
추억의 바릇 이야기  (0) 2021.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