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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단상

추억의 바릇 이야기

간천(澗泉) naganchun 2021. 6. 11. 04:52

추억의 바릇 이야기

보말잡이

   2십여 년 전 일이다. 어느 날 내자와 바람을 쐰다고 도두봉 밑 바닷가에 갔었다. 마침 썰물이 때가 맞아서 물이 많이 내렸었다. 내자가 물에 덤벼들더니 게를 잡기 시작하였다. 나도 그저 있을 수 없어 바다로 들어가 잔돌을 헤치며 게도 잡고, 게만이 아니라 썰물에 물이 빠져 가는 대로 바위에 기어 다니는 참보말을 주워 담는다. 뜻밖에 바릇으로 저녁상에는 참게장이며 참보말국이 돈을 많이 들여 사들인 반찬보다 더 융숭한 진미를 이루었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거나 보말(우렁이 종류)을 잡거나 해초를 캐는 일을 제주도에서는 바릇이라 한다. 바릇을 하려면 먼저 물때 곧 조수간만의 차를 잘 알아야 하는데 음력으로 초하루와 보름을 중심으로 조수간만의 차가 크므로 바릇하기에 좋은 물때가 되는 것이다. 물때를 세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 고장에서는 보통 음력으로 한 달을 30일을 기준으로 하여 스무 하루를 막물(열세물)이라 하고 스무 이틀을 한조기, 스무 사흘을 아끈조기, 스무 나흘을 한물이라고 세어서 그믐이 일곱물, 초하루가 여덟물이 되고, 초순에서부터 센다면 음력 초엿새가 막물(열세물)이 되고 초이레가 한조기, 초여드레가 아끈조기, 초아흐레가 한물이 되어 보름이면 일곱물이 된다. 여섯, 일곱, 여덟물을 물찌(사리)라 하여 조수간만의 차가 크므로 바릇하기에 좋은 시기가 된다. 조수간만의 시각은 지역에 따라 다른 것은 물론이다. 연중 삼월 보름과 여름철 음력 칠월 보름에는 가장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다수 바릇을 나간다.

 

  대체로 바다고기는 알을 낳아 수정하여 번식을 하지만 신기롭게도 개체를 바로 낳는 고기도 있다. 봄이 되어 4월 하순경이 되면 6〜7미터 정도의 바다의 골이 깊은 곳을 찾아 망치(망상어) 잡이를 한다. 두 사람이 그물을 치고 대여섯 사람이 7〜8미터의 긴 장대를 짚고 헤엄을 쳐서 망치를 그물로 몰아 잡는 것이다. 대부분의 바다고기는 알로써 번식하는데 이 망치는 개체를 직접 낳는다. 이 망치를 잡고 암놈의 배를 누르면 고기 새끼가 터져 나오는데 그 맛이란 어떤 회보다도 맛이 있다.

 

  어린 때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해 여름 한 철을 바다에서 보내었다. 바다로 낚시를 가거나 작살을 가지고 바다 속에 들어가 고기 쏘기를 했다. 객주리(쥐치), 망치, 우럭, 북바리, 볼락 같은 작은 고기류를 잡기도 하고 어쩌다 머정(재수가 좋음을 말한다.)이 맞으면 욍이, 물톳 같은 큰 고기를 쏘기도 한다. 한 번은 50센티 정도의 죽(상어)을 쏘았는데 도저히 그 상어를 끌어올리지 못하여 2미터 정도의 작살을 쏜 채로 두고 쫓다가 간신히 잡은 일이 있다.

  그해 가을 새벽에 누나와 같이 바다에 횃불잡이를 갔다. 썰물에 물이 내린 개(독살)안에 고기가 얼마나 많은지 큰 바위 둘레에 횃불을 비추면 고기가 움직이지 않고 얌전하게 있다. 숭어, 농어, 벤자리 같은 고기를 한 광주리나 잡았다. 집에는 아버지께서 오랜 병으로 누워 계셨는데 새벽에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의 상태가 위독해져서 일가와 동네 어른들이 많이 모였었다. 끝내 아버지는 그날 오후에 운명하시고 잡아온 고기는 제 빛을 내어 좋은 반찬이 되지 못하고 말았다.

 

  고향에는 딴여(떨어진 섬이라는 뜻)라고 해서 물이 썰물이 되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데 밀물이 되면 삽시간에 헤엄을 치지 않으면 나올 수 없게 되는 곳이 있었다. 한 해 여름 낚시질을 갔는데 마침 이 딴여에 들어가 낚시를 하였다. 고기가 얼마나 잘 물리는지 재미가 있었다. 광주리가 무거울 정도로 고기를 낚았는데 밀물이 되어 삽시간에 걸어서 나올 기회를 놓치고 헤엄을 쳐 나오게 되었다. 헤엄을 치는 바람에 낚아 올린 고기는 절반 정도를 물에 띄워 보내야 했다.

 

  눈앞의 즐거움에 도취되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 또한 인간이 아닌가?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한 번 그 일에 대하여 되새김질을 해야 하리라 생각하고 몸에 배인 버릇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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